3. 청컨대 임금께선 용맹을 크게 키우십시오
1b-3. 제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이웃나라와 사귐에 원칙 같은 것이 있습니까?” 1b-3. 齊宣王問曰: “交鄰國有道乎?” 맹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암 있고말고요. 서로 대등한 관계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국가간에 실력차이가 날 적에는, 오직 인(仁)한 자만이 대국을 가지고서 소국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은나라의 탕왕(湯王)이 작은 나라인 갈(葛) 나라를 섬긴 것이나【「등문공」 하5에 자 세한 내용이 있다】,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작은 나라인 곤이(昆夷)【주나라가 일어날 초기에 대적하였던 서융(西戎)의 나라이름인데 문왕이 복속시켰다. 그 자세한 시말은 지금 상고할 수가 없다】를 섬긴 것이 그 예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지혜로운 자만이 소국을 가지고서 대국을 섬길 수 있습니다. 주나라의 개조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적인(狄人)인 훈육(獯鬻)【북방의 맹렬한 민족. 본편 15장에 나오는 적인(狄人)이 바로 훈육이다】을 섬긴 것이나 월왕 구천(句踐) 오(吳) 나라를 섬긴 것은【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夫差)에게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물러나 모든 예의를 갖추어 청죄하고 용서를 구한 일. 후에 구천은 결국 부차를 사지로 몰았고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국어(國語)』 「오어(吳語)」,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등에 기재됨】 모두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孟子對曰: “有. 惟仁者爲能以大事小, 是故湯事葛, 文王事昆夷; 惟智者爲能以小事大, 故大王事獯鬻, 句踐事吳. 대국으로써 소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을 즐길 줄 아는 자요, 소국으로써 대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입니다. 하늘을 즐길 줄 아는 자는 천하를 보전할 수 있고,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는 나라를 보전할 수 있습니다. 시(詩)【주송 「아장(我將)」】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지요: ‘내가 하느님의 위엄을 두려워하며 근신하니 비로소 이 나라를 보전해나갈 수 있도다!’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保天下, 畏天者保其國. 『詩』云: ‘畏天之威, 于時保之.’” 왕이 말하였다: “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고명하오이다. 그런데 과인에게는 좀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과인이 혈기가 지나쳐 용맹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인자(仁者)와 지자(智者)의 덕성에는 도무지 못 미치지 않겠나이까?” 王曰: “大哉言矣! 寡人有疾, 寡人好勇.” 맹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왕께서 용맹을 좋아하시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청컨대 작은 용맹을 좋아하지 마시옵소서. 한 손으로는 자기 허리에 찬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상대방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말하기를, ‘네놈이 감히 나를 당해낼 수 있으랴!’ 하고 구라치는 것은 필부의 용맹이올시다. 이것은 겨우 한 사람을 대적하는 용맹이올시다. 왕이시여! 거대한 용맹을 가지소서! 對曰: “王請無好小勇. 夫撫劍疾視曰: ‘彼惡敢當我哉!’此匹夫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 시(詩)【대아 「황의(皇矣)」편】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밀(密)나라 사 람들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니 우리 문왕께서는 혁연(赫然)히 대노(大怒)하시었다. 이에 군대를 정비하고 친히 거느리어 거(莒)나라【『시경』에는 ‘여(旅)’나라로 되어있다】로 가는 밀나라 군대를 막아버리니, 신흥국가 주(周) 나라의 복을 돈독히 하였으며, 평화를 갈망하는 천하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시었도다.’ 바로 이런 것이 문왕의 용기올습니다. 문왕께서 한 번 대노하시니 천하의 백성이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詩』云: ‘王赫斯怒, 爰整其旅, 以遏徂莒, 以篤周祜, 以對于天下.’此文王之勇也. 文王一怒而安天下之民. 또 서(書)에【현재의 『서경』 주서 「태서」 상7에 있다. 조기의 주는 이것을 『상서(尙書)』의 일편(逸篇)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존하는 텍스트는 조기가 못 본 위서가 되는 셈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후대에 첨가된 텍스트라 하여 다 위서로 규정할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사람을 내실 적에 오직 한 사람을 선택하시어 백성의 임금으로, 또 백성의 스승으로 삼으셨느니라. 그것은 그로 하여금 하느님을 도와 만 백성을 사랑케 하려 함이니라【주희의 구독방식과 나의 구독방식이 다르다. 조기 주를 따랐다】. 사방의 죄 있는 자는 벌하고, 죄 없는 자는 편안케 해주는 것은 오직 나 발(發, 무왕) 한 사람의 책임이로다. 천하의 그 누구가 감히 이러한 나의 의지를 방해할 수 있으리오!’ 당시 어느 한 사람이라도【주(紂)와 같은 사람】 천도에 순응하지 않고 세간에서 패도를 전횡하면 무왕께서는 그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여겨 부끄럽게 생각하시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왕의 용맹이올습니다. 문왕처럼 무왕도 한번 크게 노하여 천하의 인민을 평안케 만들었습니다. 『書』曰: ‘天降下民, 作之君, 作之師. 惟曰其助上帝, 寵之四方. 有罪無罪, 惟我在, 天下曷敢有越厥志?’一人衡行於天下, 武王恥之. 此武王之勇也. 而武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지금 왕께서도 한번 크게 노하시어 천하의 인민을 평안케 만드는 용기를 보이소서. 백성들은 단지 왕께서 용맹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걱정할 따름이외다.” 今王亦一怒而安天下之民, 民惟恐王之不好勇也.” |
맹자는 제선왕의 변해(辯解)를 역이용하여 아주 교묘하게 설득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지(智)ㆍ인(仁)ㆍ용(勇)의 주제는 『논어(論語)』에서 이미 개념화되었고, 그것이 『중용(中庸)』의 메인 테마가 되었으며, 여기 『맹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공자 - 자사 - 맹자로 이어지는 사상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으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맹자』라는 문헌 속에서 맹자는 증자(曾子)나 자사(子思)에 대하여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과의 특별한 관계나 존경심을 표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방식을 매우 쿨하게 기술할 뿐이다. 맹자를 증자ㆍ자사에 예속시키는 것은 모두 후대의 기술이다. 맹자는 오직 공자를 직접 사숙(私淑)하였다는 의식만 있다.
『맹자』에는 시(詩)ㆍ서(書)가 매우 자주 인용된다. 그런데 『논어』에는 의 중요성은 부각되어 있지만, 서는 거의 부각되어 있지 않다. 추상적 개념으로 쓸 뿐이며, 직접 문헌으로 인용하는 경우는 오직 두 케이스(2-21, 14-43) 밖에는 없다. 그 내용도 매우 소략하며 전혀 정치적 의미맥락을 띠고 있지 않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자와 맹자의 근원적인 입장차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공자는 혁명을 말하지 않는다. 군주를 갈아치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상서(尙書)』는 기본적으로 혁명을 말하는 책이다. 『상서』의 핵심부분은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 같은 혁명주체세력의 혁명 메니페스토(manifesto)이며 또 혁명기에 태동한 포고문들이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공자의 구미에 잘 맞지를 않는다. 그러나 맹자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논리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맹자가 특별히 『서(書)』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말하는 ‘낙천(樂天)’과 ‘외천(畏天)’의 선린관계는 21세기에도 통용되어야만 할 정치외교철학의 대원칙이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대국이 소국을 깔보게 되면 그것은 낙천의 기본이념을 저버리는 것이요, 한국 같은 소국의 우파ㆍ보수파들이 미국이 발길질하는 뒷다리만 꼭 붙잡고 있어도 살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없는 우파가 어찌 우파일 수 있으며, 오직 하나의 대국만을 두려워하는 것이 어찌 외천(畏天)의 정도(正道)일 수 있으리오! 한국의 정치인 들은 반성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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