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흔종(釁鐘)에 아파하는 마음과 정치
1a-7. 제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춘추시대의 패자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晋文公)의 사적에 관하여 잘 아시겠군요. 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문도들은 제환공과 진문공(晋文公)과 같은 패자의 사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에 전해진 것이 없어, 저는 여태까지 그런 것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만두지 말고 기어이 말하라 하신다면 저는 왕도를 말하고자 합니다.” 1a-7. 齊宣王問曰: “齊桓ㆍ晉文之事, 可得聞乎?” 孟子對曰: “仲尼之徒, 無道桓ㆍ文之事者, 是以後世無傳焉. 臣未之聞也. 無以, 則王乎?” 제선왕이 말하였다: “덕이 어떠해야 왕노릇을 할 수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백성을 보호하여 민생을 편안케 하면 자연스럽게 왕도를 구현하는 사람이 되지요. 그리하면 아무도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曰: “德何如, 則可以王矣?” 曰: “保民而王, 莫之能禦也.” 왕이 말하였다: “나 같은 사람도 백성을 보호하여 민생을 편안케 할 수가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암, 할 수 있구 말구요.” 왕이 말하였다: “무엇에 근거하여 그대는 내가 왕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曰: “若寡人者, 可以保民乎哉?” 曰: “可.” 曰: “何由知吾可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저는 임금님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 호흘(胡齕)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왕께서 당상(堂上)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당하(堂下)를 지나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왕께서 그것을 보시고는,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냐?’ 물으시니, 그자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흔종(釁鐘)【종정(鍾鼎)ㆍ군기(軍器)ㆍ묘사(廟社) 등 국가의 중요한 물건이 만들어졌을 때 희생의 동물을 죽여 그 피를 발라 재액이나 불상(不祥)을 액땜하는 신성한 의식. 여기서는 종이 만들어졌을 때 피로써 그 틈을 메운다는 뜻도 있으나 실상 피로써 틈이 메워질 리는 없다】하는데 쓰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자 왕께서, ‘놓아주어라! 나는 저 녀석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아무 죄도 없이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도다’ 하시니, 대답하여 아뢰기를, ‘그리하면 흔종이라는 제도를 폐지하오리이까’ 하니,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뇨? 양(羊)으로 바꾸어 쓰라’ 하셨다 하오니, 모르겠나이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이까?” 曰: “臣聞之胡齕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 曰: ‘牛何之?’ 對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廢釁鐘與?’ 曰: ‘何可廢也? 以羊易之!’ 不識有諸?” 제선왕이 말하였다: “아~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曰: “有之.”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바로 이 마음이면 임금님께서 충분히 왕도를 구현하실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끼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왕께서 차마 소를 죽이지 못하는 그 속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曰: “是心足以王矣. 百姓皆以王爲愛也, 臣固知王之不忍也.” 왕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진실로 백성 중에는 내가 재물을 아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겠구나! 그러나 제나라가 아무리 작다손 치더라도 그래 내가 어찌 소 한 마리를 아끼리오? 단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아무 죄도 없이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양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王曰: “然. 誠有百姓者. 齊國雖褊小, 吾何愛一牛? 卽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故以羊易之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우리 임금님이 재물을 아꼈다고 비난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지 마소서. 작은 양으로 큰 소를 대신했으니 그들은 물리적 가치만을 계산할 뿐, 임금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그 속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왕께서 희생이 죄없이 사지로 나아가는 것만을 애통하게 여기셨다고 말씀하신다 해도 그들에게는 소와 양이 무슨 구분이 있겠냐고 생각될 것입니다.” 曰: “王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 以小易大, 彼惡知之?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何擇焉?” 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아아~ 진실로 내가 뭔 마음을 먹었는지 알지 못하겠구나! 나는 진실로 재물을 아껴서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은 아니건마는, 당연히 백성들은 내가 재물을 아꼈기에 그렇게 했다고 말하겠구나! 이건 원 참!” 王笑曰: “是誠何心哉?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 宜乎百姓之謂我愛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상심하지 마옵소서. 왕의 마음씨야말로 인술(仁術)【인으로 가는 길】이올시다. 여기 문제의 핵심은 왕께서는 소는 현장에서 바로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를 않았다는 그 사실에 있습니다. 유덕한 군자는 새나 짐승에 대하여 갖는 마음이라는 것은, 일단 그 살아있는 것을 본 마당에는 그것이 죽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며, 그것이 우는 소리를 들은 마당에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曰: “無傷也, 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 不忍見其死; 聞其聲, 不忍食其肉. 是以君子遠庖廚也.” 그러자 왕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말하였다. “시(詩)【소아(小雅) 「교언(巧言)」】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어요: ‘타인의 마음을 내가 헤아린다.’ 이건 정말 맹선생께서나 부르실 수 있는 노래가사이지요. 내가 뭔가를 행하고 그것을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내 마음에 와닿는 설명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말씀해주시니까 갑자기 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훤히 뚫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마음이 왕도를 구현할 수 있는 인술에 합치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도대체 뭘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王說曰: “『詩』云: ‘他人有心, 予忖度之.’ 夫子之謂也. 夫我乃行之, 反而求之, 不得吾心. 夫子言之, 於我心有戚戚焉. 此心之所以合於王者, 何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왕께 아뢰는 자가 있어 다음과 같이 말했 다고 합시다: ‘제 완력은 족히 백균(百鈞, 삼천 근)은 들 수 있습니다만 지금 깃털 하나도 들 수가 없고, 제 시력은 추호(秋毫)【가을철의 가느다란 동물의 털, 아주 미세한 것】의 미세한 터럭 끝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만 지금 한 수레의 장작더미도 볼 수가 없군요.’ 왕께서는 이 말을 듣고 그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 而不足以擧一羽; 明足以察秋毫之末, 而不見輿薪,’ 則王許之乎?” 왕은 말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모순되는 쌩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인정할 수 있겠나!” 曰: “否.” “그러면 또 말씀드리죠. 지금 왕께서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은애(恩愛)의 정이 금수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판에, 그 치세의 공이 백성들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유독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그러니까 깃털 하나도 들지 못하겠다는 것은 완력을 쓰지 않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며, 한 수레의 장작더미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일 뿐이며, 백성들을 보호하여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은애(恩愛)의 마음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올시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도를 구현하지 못함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올시다.” “今恩足以及禽獸,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 然則一羽之不擧, 爲不用力焉; 輿薪之不見, 爲不用明焉, 百姓之不見保, 爲不用恩焉. 故王之不王, 不爲也, 非不能也.” 제선왕은 말한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구체적 모양새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曰: “不爲者與不能者之形, 何以異?” 말씀하신다: “태산(太山)을 겨드랑이에 끼고 발해를 냉큼 뛰어 건너라!라고 말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난 그런 짓은 못하겠슈’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진짜로 못하는 겁니다. 어른을 위하여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라!【어른을 위하여 어깨 안마 좀 해드려라! 조기의 해석: 맹자가 출생한 지역의 방언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관절을 꺾어 시원하게 해드린다는 뜻. 카이로프락틱(chiropractic)의 원조인 듯】라고 말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난 그런 짓은 못하겠슈’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진짜로 안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나는 왕도를 구현치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태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발해를 넝큼 뛰어 건너는 것은 못하겠다라는 류의 이야기가 아니올시다. 왕께서 나는 왕도를 구현치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나뭇가지를 꺾지 않겠다는 류의 이야기올시다. 曰: “挾太山以超北海, 語人曰, ‘我不能’, 是誠不能也. 爲長者折枝, 語人曰, ‘我不能’, 是不爲也, 非不能也. 故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 나의 집 노인을 노인대접 해드리는 마음으로 남의 집 노인에게 미치고, 나의 집 어린애를 어린애대접 해주는 마음으로 남의 집 어린애에게 미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루는 마음으로 인혜(仁惠)를 베풀면 천하를 통일하는 것도 천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굴리는 것처럼 쉬울 것입니다. 시(詩)【『시경』 대아 「사제(思齊)」】에 이르기를 ‘아내에게 모범을 보였고, 그 덕이 형제에 미쳐, 드디어 대소가와 나라를 다스리시었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까운 가족에 대한 마음을 확대하여 인민에게 그 헤아림이 미친다는 뜻이오니,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확대하면 천하 사해를 다 보전하여 편안케 할 수 있지만, 은혜를 미루어 확대하지 않으면 내 처자식조차도 보호하여 편안케 할 수 없다는 뜻이오이다. 고대의 성현이 보통사람에 비해 크게 뛰어난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가 하는 행동을 미루어 타인에게로 잘 확대해나갔다고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임금님의 차마 못하는 은혜의 마음이 금수에게까지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세의 공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유독 무슨 까닭이겠나이까?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詩』云: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言擧斯心加諸彼而已. 故推恩足以保四海, 不推恩無以保妻子. 古之人所以大過人者, 無他焉, 善推其所爲而已矣. 今恩足以及禽獸,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 추를 움직여 저울질을 해본 연후에나 경중(輕重, 무게)을 알며, 자로 재어본 연후에나 장단(長短, 길이)을 알 수 있습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만 특히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잘 헤아려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외다. 인민에 대한 임금님의 은혜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 경중장단을 잘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權, 然後知輕重; 度, 然後知長短. 物皆然, 心爲甚. 王請度之! 왕이시여! 당신은 군대를 일으키어 병졸과 신하들을 위태롭게 하고, 제후들과 원한을 맺은 연후에나 비로소 내 마음이 유쾌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실 것이오니이까?” 抑王興甲兵, 危士臣, 構怨於諸侯, 然後快於心與?” 왕이 말하였다: “천만에요! 내가 왜 그런 것을 유쾌하게 여기겠소? 나는 내가 크게 바라는 것을 성취하고 싶을 뿐이오.” 王曰: “否. 吾何快於是? 將以求吾所大欲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하~ 크게 바라다니요? 왕께서 크게 바라시는 것을 좀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曰: “王之所大欲, 可得聞與?” 왕은 화들짝 크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묻겠나이다. 크게 바라시는 것이라니, 기름지고 달 콤한 음식이 입에 부족하시겠습니까? 가볍고 따스한 옷이 몸에 부족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화려한 색깔이 눈에 부족하시겠습니까? 아름다운 음악이 귀에 부족하시겠습니까? 마음에 드시는 총신들이 시중을 드는 태도가 앞 전에 부족하시겠나이까? 임금님의 여러 신하들이 이런 것쯤이야 다 잘 제공하고 있겠지요. 왕께서 어찌 이런 것들 때문이시겠나이까?” 王笑而不言. 曰: “爲肥甘不足於口與? 輕煖不足於體與? 抑爲采色不足視於目與? 聲音不足聽於耳與? 便嬖不足使令於前與? 王之諸臣皆足以供之, 而王豈爲是哉?” 왕은 말한다: “물론이지요. 이런 것들 때문에 뭔가를 크게 바라는 것은 아니지요.” 曰: “否. 吾不爲是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면 왕께서 크게 바라시는 것은 제가 알 만합니다. 토지를 개간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진(秦)ㆍ초(楚)와 같은 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고, 중국(中國, 천하의 중심이라는 뜻)의 맹주가 되어 사방의 이적을 안무하고 싶다, 이 말씀이겠군요. 이와 같은 소위(所爲, 행위)로써 이와 같은 소욕(所欲, 욕망)을 구하신다면 그것은 나무에 기어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겠나이다.” 曰: “然則王之所大欲, 可知已. 欲辟土地, 朝秦楚, 莅中國而撫四夷也. 以若所爲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왕은 말하였다: “내가 바라는 것이 그토록 형편없단 말이요?” 王曰: “若是其甚與?”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암요. 그보다 더 형편없지요. 나무에 기어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는 것은,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할지라도 뒤에 재앙이 따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시는 소위로써 생각하시는 소욕을 구한다면, 심력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그것을 실천하셔도 후에 반드시 크나큰 재앙이 뒤따를 것이오이다.” 曰: “殆有甚焉.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 以若所爲, 求若所欲, 盡心力而爲之, 後必有災.” 왕은 말하였다: “무슨 재앙이 일어날지 더 좀 자세히 말해줄 수 있 겠소?” 曰: “可得聞與?”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추(鄒)나라 사람(소국)과 초(楚)나라 사람(대국)이 싸운다면 왕께서는 과연 누가 이기리라고 생각하십니까?” 曰: “鄒人與楚人戰, 則王以爲孰勝?” 왕은 말하였다: “아~ 그거야 물론 초나라 사람이 이기겠지요.” 曰: “楚人勝.”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잘 아시는군요. 작은 것(영토)으로는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인구)으로는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것(세력)으로는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하 구주(九州)의 일주(一州)를 사방천리라고 한다면, 지금 사방천리의 나라가 아홉 개가 있는 셈입니다. 제나라가 있는 영토를 다 모아보아도 사방천리, 그 하나밖에는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를 가지고 여덟을 복속시키려 하는 것이니 그것이 추나라를 가지고 초나라에 대항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이시여! 어찌하여 왕도의 근본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으시나이까? 曰: “然則小固不可以敵大, 寡固不可以敵衆, 弱固不可以敵彊. 海內之地方千里者九, 齊集有其一. 以一服八, 何以異於鄒敵楚哉? 蓋亦反其本矣. 한번 생각해보시죠. 지금 왕께서 정치를 개혁하여 인덕(仁德)을 백성에게 베푸시기만 한다면, 천하에 벼슬하고 싶어 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고 싶어 하게 만들 것이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영토 내의 들에서 농사짓고 싶어 하게 만들 것이오며, 상고(商賈, 상인)들로 하여금 모두 제나라의 시장에 물건을 저장하고 싶어 하게 만들 것이며, 여행객들로 하여금 모두 제 나라의 도로로 통행하는 것을 원하게 만들 것이며, 천하의 제국들 중에 그 임금의 폭정을 증오하는 지사들로 하여금 모두 왕께 달려와 그들의 통고(痛苦)를 호소케 만들 것이오니, 이렇게 되면 천하사람들이 모두 왕께 귀순하려고 하는 대세를 감히 그 누구가 막을 수 있겠사옵나이까?” 今王發政施仁, 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 耕者皆欲耕於王之野, 商賈皆欲藏於王之市, 行旅皆欲出於王之塗, 天下之欲疾其君者皆欲赴愬於王. 其若是, 孰能禦之?” 제선왕은 이 말에 감동하여 말하였다: “제가 좀 우매한 탓으로 나 아가 과감히 인정(仁政)을 행할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선생이시 여! 나의 뜻을 도와 밝게 나를 가르쳐 주소서. 내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시험삼아 선생의 말씀을 실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王曰: “吾惛, 不能進於是矣. 願夫子輔吾志, 明以敎我. 我雖不敏, 請嘗試之.”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항산(恒産,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서도 항심(恒心, 항상스러운 도덕적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선비【교양을 갖춘 사(士)】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 한 일반백성 대중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항심도 없어지고 맙니다. 항심이 없어지게 되면 방탕, 간사, 사악, 사치, 나쁜 짓은 무엇이든지 하게 되지요. 이렇게 백성들로 하여금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도록 한 다음에 속속 형벌을 주게 된다면, 이것은 법망으로 인민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그물이란 보이지 않아 속는 것이니 이것은 치자의 기만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찌 인인(仁人)의 지위에 있는 임금으로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그런 추저분한 짓을 할 수 있겠나이까? 曰: “無恆産而有恆心者, 惟士爲能. 若民, 則無恆産, 因無恆心. 苟無恆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 然後從而刑之, 是罔民也. 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爲也? 그러므로 영명한 군주는 인민의 생업을 안정시키되, 반드시 우러러 부모를 섬기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고 굽어 처자를 먹여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줍니다. 풍년이 계속되면 종신토록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며, 흉년이 계속되어도 굶어죽을 염려는 없게 됩니다. 게다가 더욱 인민들을 격려하여 선으로 이끌어주면, 그들이 왕도를 따르는 것이 너무도 쉬워집니다. 是故明君制民之産, 必使仰足以事父母, 俯足以畜妻子, 樂歲終身飽, 凶年免於死亡. 然後驅而之善, 故民之從之也輕.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은 백성의 생업을 안정시킨다고 겉으로만 떠들면서 우러러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굽어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합니다. 풍년이 계속되어도 종신토록 괴롭기만 하고, 흉년이 계속되면 사망을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정치는 겨우 죽음을 모면케 해주는 것만으로도 급급하여 여유가 없으니 어느 겨를에 예를 다스리겠다고 운운하겠나이까? 今也制民之産, 仰不足以事父母, 俯不足以畜妻子, 樂歲終身苦, 凶年不免於死亡. 此惟救死而恐不贍, 奚暇治禮義哉? 왕이시여 왕도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하여 그 근본으로 돌아가 지 않으십니까? 王欲行之, 則盍反其本矣. 다섯 묘 정도의 택지[五畝之宅]【930평 정도의 택지를 한 가호당 확보해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주변으로 삥 둘러 뽕나무를 심는다면 50세 이상의 사람들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 개(狗)【식용 황구】, 체(彘)【돼지는 돼지인데 일반 돼지[豚]와 구분되는 다른 종인 것 같다】를 기르면서 그들이 번식할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도록만 해주면 70세 이상의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호에 100묘의 전지를 지급하고 그들이 열심히 농사짓게 하며 징병ㆍ부역 등으로 그 때를 놓치지 않게만 해주면 여덟 식구의 한 가족이 굶주리는 일이 없이 안온한 살림을 계속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상서(庠序)와 같은 대중인민교육 기관을 보편화시켜서 잘 교육받게 하면 부모에게 효순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져 반백의 노인이 등에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고 길거리를 다니는 슬픈 광경이 없어지겠지요. 노인들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검은 머리 일반 백성이 굶거나 춥거나 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이리 하고서도 천하에 왕노릇하지 못하는 자는 있어본 적이 없나이다.” 五畝之宅, 樹之以桑, 五十者可以衣帛矣. 雞豚狗彘之畜, 無失其時, 七十者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八口之家可以無飢矣. 謹庠序之敎, 申之以孝悌之義,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 老者衣帛食肉, 黎民不飢不寒, 然而不王者, 未之有也.” |
참으로 위대한 대화라 아니할 수 없다. 우선 그 현장감이 생생하다. 오가는 문답이 논리적으로 허수가 없이 정확히 맞물리고 있을 뿐 아니라, 너무도 자세하다. 요즈음 신문에 나오는 인터뷰기사보다도 훨씬 더 정교하고 논리적 일관성이 있다고 평가하지 아니 할 수 없다.
이 대화는 맹자가 제선왕을 처음 만났을 때의 대화라고 볼 수는 없 다. 선왕의 총신 호흘의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이미 맹자가 제선왕의 통치집단 속으로 깊게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여튼 초기의 대화일 것이나, 양혜왕과의 대화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같은 왕도론의 주제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파편이 여기 편집되었을 것이다. 이 장만 해도 1,313자로써, 『맹자』 전체 중에서 가장 긴 대화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제선왕은 매우 성격이 신중하고 사려가 깊으며 교양 도 있고 시를 인용하는 등 맹자를 대하는 품격도 있다. 그러나 역시 맹 자의 관심과는 달리 제나라의 패자 환공이나 진나라의 패자 문공(공자중이公子重耳)의 이야기를 묻는다. 맹자는 『춘추』의 달인이며 환ㆍ문공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다. 『논어(論語)』에도 보면 공자는 환공에 대하여 많은 엇갈리는 평가를 내리고 있고, 또 문공에 대하여서도 분명한 평어를 발설하고 있다(14-16). 그러니까 공문에서 이 사람들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쌩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맹자는 자기의 논지를 끄집어내기 위해 모르는 체 연출한 것이다. 이 첫 마디의 입장의 차이는 결국 좁혀질 듯하다 가도 7년의 평행선을 달린다. 그것이 지식인의 비극이다. 그 비극이 오히려 맹자 같은 지식인을 위대하게 만드는 역사의 간교일지도 모른다.
“선왕 그대여! 너는 왕도를 실천할 수 있는 충분한 심성의 바탕이 있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왕도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 결코 못하는 것이 아니다.” ‘못한다[不能]’와 ‘안 한다[不爲]’의 논리는 동방인의 상식에 새겨져 있는 『맹자』라는 서물의 깊은 영향이다.
여기 이미 제선왕의 ‘불인(不忍)’을 말하는 것을 보면, 맹자의 논리가 단순한 정치적인 왕도론의 수준을 넘어서서 심성론적 바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까 ‘성선론(性善論)’의 주장은 제나라에 와서 비로소 발전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 성선론의 단초가 여기 제선왕의 ‘불인(不忍)’의 고사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맹자의 성선론이 선행하고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 그 반동으로 태동되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중국 사상사의 이해방식이다. 맹자의 시대에는 이미 성악의 시대였다. 성악론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후천적인 예의(禮儀)나 법도(法度)에 의한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성위지분(性僞之分)일 뿐이다. 따라서 제나라의 법가적 분위기에 이미 그런 사상은 깔려 있었다. 이러한 성악론적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맹자는 성선을 주장한 것이다. 순자는 직하의 전통을 나중에 포뮬레이션한 것이다
여기 아직 성선론의 분위기는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맹자가 인의설을 표방한다 해도 그 근본에는 ‘인(仁)’의 사상이 깔려 있다는 것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인(仁)을 구현하는 왕조의 ‘은(恩)’이라는 개념이 명료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리고 유가의 핵심사상이며 자사에게서 웅장한 철학으로 발전한 ‘서(恕)’ 즉 나중에 주희가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고 말한 혈구지도(絜矩之道)의 원형이 상술되어 있다. 국가의 기본은 인간이며, 인간의 기본은 가족윤리에 있다. 가족윤리는 한 가족의 이해만을 중시하는 편협한 패밀리즘(familism)의 이기주의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도덕심을 함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minimal moral unit)를 말하는 것이다. 이 기본이 무시되는 사회는 아무리 외관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맹자의 입장이다. 가족의 윤리를 통하여 국가의 질서와 윤리를 정립하고 자 하는 맹자의 도덕주의는 매우 아둔하게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국가의 기본으로서 생각하는 ‘민중(프롤레타리아라고 불러도 좋다)’의 간절한 소망도 민생이며, 민생의 기본은 한 가정의 안락한 삶이다.
여기 맹자가 제시하는 항산과 항심의 문제는 맑시즘이 말하는 하부 구조와 상부구조의 문제와 매우 유사하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있을 수 없다’라는 맹자의 명제는 너무도 유명한데 모두 이 명제만을 맹자의 사상으로 착각한다. 이 명제만을 가지고 맹자를 평가하면 맹자는 유물론자(materialist)처럼 들린다. 그러나 맹자는 선비에게 있어서는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도덕주의를 명료하게 견지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즉 항산과 항심의 정합(整合)관계는 일반대중문화를 생각할 때, 정치가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상식적 기준일 뿐이다. 정치의 일반이념은 항산과 항심의 정합관계이지만 그 실내용은 유물적 기저가 아니라 모든 상부구조의 도덕적 기저를 내포하는 것이다. 유물ㆍ유심이니 하는 서구적 개념 자체가 개똥만도 못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폐해를 가지고 어찌 맑시즘을 논하고 맹자를 논하리오!
맹자가 ‘권(權)’을 말하고 ‘탁(度)’을 말하는 것도 전국시대의 법가들의 상황주의적ㆍ공리주의적 언어이지만 맹자는 그것을 인간의 심성의 근원을 파악하는 언어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선추기소위(先推其所爲)’라는 말이고, ‘반기본(反其本)’이라는 말이다. 나의 행위를 잘 미루어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 그 근본은 무엇인가? 그 근본은 왕도의 근본이다. 왕도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한 가족 여덟 식구가 단란하게 살며 노인이 비단옷 입고 고기 먹으며 일반백성이 굶주림이나 추위에 떨지 않는 사회! 이 소박한 인민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맹자의 논리에 그 한계와 그 한계를 초극하는 영원한 이상성이 공재하는 것이다.
‘합(盍)’은 ‘하불(何不)’의 합음(合音)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기타 자세한 어의나 문의에 관해서는 나의 번역 그 자체를 잘 살펴보라. 나의 번역이 매우 자유분방한 의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어떠한 번역보다도 치열한 직역의 기초 위에서 변형ㆍ생성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맹자와 선왕의 대화의 기술은 긴박할 때는 그 긴박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앞의 화자지시가 생략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제선왕문왈(齊宣王問曰)’ ‘맹자대왈(孟子對曰)’ 했지만, 그 다음에는 ‘왕왈(王曰)’로 했다가 그 다음에는 그냥 ‘왈(曰)’로 했다가, 그 다음에는 ‘왈(曰)’도 없애버리는 수법을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활용하고 있다. 놀라운 편집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문장의 흐름을 명료히 나타내기 위해 화자를 다 지시해서 번역했다. 그리고 이 『맹자』라는 책은 맹자를 높이기 위해서, 맹자 사상의 가치를 선양하기 위해서 만든 서물이다. 그래서 맹자가 나올 때 만 ‘…께서 말씀하시었다’로 존칭하고 나머지는 모두 ‘…은 말하였다’로 하였다. 우리 말에서만 생기는 문제이지만, 전체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나는 그러한 수법을 썼다.
『맹자』라는 서물은 고전중국어, 즉 한문의 스탠다드 텍스트(the standard text of Classical Chinese)로 꼽힌다. 단어선택과 문법이 명료하여 한문의 스트럭쳐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준이 되는 텍스트로 꼽히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한문을 배우려면 반드시 『맹자』를 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 기억난다. 사서 중에서도 『맹자』가 한문을 배우는 데는 가장 중요한, 기초적 문장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살아 있는 당시의 말이며,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대화이며, 논리적으로 정확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맹자』를 통해 한문의 묘미를 만끽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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