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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양혜왕장구 하 - 10. 적국의 군대를 반기는 이유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양혜왕장구 하 - 10. 적국의 군대를 반기는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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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적국의 군대를 반기는 이유

 

 

1b-10. 제나라 사람들이 그북방에 있는 연()나라를 정벌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제선왕이 의기양양해서 맹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연나라를 쳐서 일단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 나라를 취()할 것인지 취하지 않을 것인지에 관해서는 나도 고민이 많소.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취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권유하고 있소.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나라나 연나라나 같은 만승지국(萬乘之國)인데, 만승지국으로써 만승지국과 싸워서 불과 50일만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것은 단지 인간의 힘으로 여기까지 이르렀다고는 생각되기 어려운 일이요. 천의(天意)에 힘입은 것이라 생각되오. 그러니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미칠 것이라고 염려되오. 연나라를 취해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b-10. 齊人伐燕, 勝之.宣王問曰: “或謂寡人勿取, 或謂寡人取之. 以萬乘之國伐萬乘之國, 五旬而擧之, 人力不至於此. 不取, 必有天殃. 取之, 何如?”
 
맹자께서 이에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천의(天意)를 핑계 댈 문제가 아니올시다. 연나라를 취해서 당사자인 연나라의 인민들이 기뻐한다면 취하소서. 옛 사람 중에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분이 있습니다. 은나라의 민심이 완전히 이반되어 은을 취한 주나라 무왕(武王)이 바로 그런 분이시죠. 연나라를 취해서 당사자인 연나라 인민들이 기뻐하지 아니 한다면 취하지 마소서. 옛 사람 중에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분이 있습니다. 천하의 3분의 2를 다 차지하는 권세를 얻고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여전히 은나라를 섬긴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바로 그런 분이시죠(논어(論語)8-20).
孟子對曰: “取之而燕民悅, 則取之. 古之人有行之者, 武王是也. 取之而燕民不悅, 則勿取. 古之人有行之者, 文王是也.
 
제나라라는 만승지국이 연나라라는 만승지국을 정벌하는데, 연나라의 인민들이 바구니에 밥을 담고 호로병에 마실 것을 담아 제나라 의 군대를 환영한다면, 그게 뭔 이유이겠습니까? 딴 이유가 아니죠. 오직 물난리ㆍ불난리와 같은 연나라의 폭정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나라의 연나라 점령정책이 오히려 물난리ㆍ불난리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인민들은 단지 제나라를 피해 타국에 원조를 요청하거나 도망가 버릴 것이오이다.”
以萬乘之國伐萬乘之國, 簞食壺漿, 以迎王師. 豈有他哉? 避水火也. 如水益深, 如火益熱, 亦運而已矣.”

 

이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한 사건은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 연 왕쾌기립(燕王噲旣立)사기(史記)』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연대가 심하게 혼란되어 있다. 이것이 소진(蘇秦)이 제나라에서 피살된 이후의 사건으로 기술되며, 전국책에는 제선왕 때의 사건으로, 사기에는 제민왕 때의 사건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맹자라는 문헌의 기술이 타 기록에 우선하여 신빙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대문제(chronology problem)는 특별히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 문제 되고 있는 해프닝은 연왕 쾌()가 연로하고 착한 사람인데 재상인 자지(子之)가 소진의 동생 소대(蘇代)와 짜고 농간을 부려 연왕 쾌()로 하여금 왕위를 재상인 자지에게 물려주도록 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연왕 쾌()는 초()ㆍ조()ㆍ한()ㆍ위() 네 나라와 더불어 진() 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승리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연왕 쾌()는 그 실패를 자인하고 재상 자지에게 정치의 재량권을 맡긴다. 그런데 자지와 소대의 패거리들이 요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양도하였으나 허유가 거절하여 실제로 양도되지 않았고, 위대한 명성만을 얻은 예를 들어 상국(相國) 자지(子之)에게 나라를 양도하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한 자지는 또다시 다른 놈을 시켜, 우임금이 자신의 아들 계()에게 천하를 넘겨주지 않고 익()에게 천하를 맡겼지만 결국 아들 계가 익을 쳐서 천하를 빼앗은 사례를 들어 쾌왕에게 그의 아들 태자 평을 제거할 것을 종용한다. 위기를 감지한 연왕 쾌는 자지에게 왕위를 들어 바치고 자기가 오히려 신하노릇을 한다. 쾌는 어진 사람이었다.

 

물론 쾌의 아들 평이 가만있을 리 없다. 평은 장군 시피(市被)와 함께 자지를 칠 준비를 서둘렀다. 자지가 국정을 장악한 뒤 연나라에서는 대란이 일어나 백성들이 비통과 원한에 빠졌던 것이다. 그래서 장군 시피와 태자 평이 연합하여 자지를 쳤는데, 장군 시피는 자지의 궁전을 공격하였으나 이겨내지 못하고 곤궁에 빠지자 오히려 같은 편인 태자 평을 공격하였다. 결국 시피는 죽음을 당하고 말았지만 이 싸움이 수개월을 끌면서 수만 명이 죽었고, 이에 연나라 백성들은 원망 끝에 태자에게까지 배반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나라가 연을 정벌하는 당위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때 제선왕이 맹자에게 자문을 구하였을 때, 맹자라는 문헌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평화주의자인 맹자를 매파로 만드는 것은 어색했을 것이다), 전국책(戰國策)에는 맹자가 제선왕에게 적극적으로 정벌을 권유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 연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마치 주나라의 문왕ㆍ무왕(武王)이 주와 같은 폭군을 칠 기회를 만난 것과도 같습니다. 실기하지 마십시오[今伐燕, 此文武之時, 不可失也].” 나는 맹자가 이런 권유를 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도덕적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이 장의 기록상으로 ‘50일만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라고 쓰 여 있는데, 이것은 연나라 자지의 군사들은 싸움에 지쳐 대항을 포기하였고 성문도 잠그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연왕 쾌는 죽었고, 제나라는 대승을 거두었고, 자지도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士卒不戰, 城門不閉, 燕王噲死. 齊大勝燕, 子之亡.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비도덕적인 자지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실의 정통을 회복한다는 명분은 좋았지만, 연나라를 점령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였다. 연나라를 정복하여 대승을 거둔 제나라 군대의 약탈행위가 속출하였고, 연나라 백성들의 항거가 시작되었으며 국제여론이 악화된 것이다.

 

지금 이 문제는 꼭 최근 미국이 이라크를 쳐서 사담 후세인(자지에 해당된다)을 제거한 이후의 상황과 거의 흡사하다. 제선왕은 부시처럼 계속 주둔하여 특별한 이권을 따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주변국가들의 여론의 악화를 고려하면서 약탈한 연나라의 보물을 반환하고 연국의 왕자를 즉위시키고 빨리 제나라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제선왕은 맹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맹자는 어디까지 나 왕도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사유를 하지 않는다. 점령이냐? 철수냐? 하는 문제는 연나라 인민대중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연나라 인민이 항거하는 판에 점령하는 것은 제나라의 곤욕만 증가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맹자의 생애를 기술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한 제선왕과 맹자의 견해의 상이(相異) 때문에 맹자가 제나라를 떠난 것으로 간단히 얘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선 연대의 불확실성 문제가 있다. 그리고 맹자가 제선왕을 떠나게 되는 상황에는 보다 복잡한 인간적 정감들이 얽혀 있다고 생각된다. 그 문제는 공손추하편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제인벌연(齊人伐燕)’의 사건에 관한 기사는 양혜왕하에 두장, 공손추하에 두 장이 나오는데, 4개의 기사는 원래 연속되어 있던 한 덩어리의 기사였다고 사료된다. 공손추는 제나라 사람으로 맹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문하로 들어온 제자인 것 같은데, 따라서 맹자의 제나라 기사는 맹자가 제나라에 머물렀던 기간(BC 318~312로 추정) 동안에 공손추가 현지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양혜왕하의 이 두 기사는 원래 공손추하편에 속해있던 것이다. 그 정당한 사건의 시퀀스는 다음과 같다.

 

1. 공손추8 2. 양혜왕10
심동(沈同)이 제() 나라 정벌을 맹자에게 묻는다. () 나라 사람이 연() 나라를 쳐서 승리했다.
3. 양혜왕11 4. 공손추9
제후들이 장차 연() 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다. () 사람이 배반하자 제선왕이 맹자를 뵐 면목이 없어지다.

 

공손추기사에는 ()’으로만 되어있고, ‘제선왕(齊宣王)’이라는 말이 없다. 그러니까 23 부분을 양혜왕편으로 옮기면서 그 사건이 퉁명스럽게 튀어나오니까 제선왕이라는 구체적 인물의 상황을 지시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양혜왕의 기사는 이와 같이 뒷 부분에 소속되어 있던 것을 앞으로 끄집어내어 맹자의 주유역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목적으로 편집된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문제를 다 고려해가면서 맹자를 읽어야 한다. 즉 신약성서의 공관복음서에 내재하는 유사한 문제들이 중국 고전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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