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내가 노평공을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다
1b-16. 노평공이 맹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외출 행렬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이때 노나라의 세세로 내려오는 권신이며 노평공이 총애하고 있었던 폐인(嬖人) 장창(臧倉)이라는 자가 공을 저지하면서 말하였다: “평일에는 임금께서 외출을 하시려면 반드시 담당관리에게 가실 곳을 미리 말하여 준비케 하셨는데 오늘은 웬일이시오니이까? 지금 임금님의 수레에 말까지 매달아 놓았는데 담당관리가 가시는 곳을 알지 못하오이다. 알려주시옵소서.” 1b-16. 魯平公將出. 嬖人臧倉者請曰: “他日君出, 則必命有司所之. 今乘輿已駕矣, 有司未知所之. 敢請.”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러 가노라.” 公曰: “將見孟子.” 장창이 말하였다: “임금께서 웬일이시오니이까? 임금의 신분으로서 가볍게 맹자와 같은 필부에게 먼저 찾아가신다니 그가 현자(賢者)이기 때문이오니이까? 예의(禮儀)는 현자에게서 나온다고 들었습니다만 맹자는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보다 나중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아주 성대히 치렀으니 예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현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임금께서는 그를 만나지 마시옵소서!” 曰: “何哉? 君所爲輕身以先於匹夫者, 以爲賢乎? 禮義由賢者出. 而孟子之後喪踰前喪. 君無見焉!” 평공은 말하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하겠다.” 公曰: “諾.” 맹자의 제자인 악정자(樂正子)가 입궐하여 노평공을 알현하여 말하였다: “어찌하여 맹가(孟軻)를 만나지 아니 하시나이까?” 樂正子入見, 曰: “君奚爲不見孟軻也?” 평공은 말하였다: “혹자가 과인에게 이르기를 맹자의 후상(後喪)이 전상(前喪)을 참월하였다고 이르기에 나는 그를 만나러 가지 않았노라.” 曰: “或告寡人曰, ‘孟子之後喪踰前喪’, 是以不往見也.” 악정자가 말하였다: “뭔 말씀이시오니이까? 임금께서 참월이라고 말씀하시는 그것이 뭘 두고 한 말입니까? 아버지 장례는 사(士)의 예로써 하고, 어머니의 장례는 대부(大夫)의 예로써 했기 때문입니까? 아버지 장례에는 삼정(三鼎)의 공물(돼지ㆍ생선ㆍ육포)을 쓰고 어머니의 장례에는 오정(五鼎)의 공물(양ㆍ돼지ㆍ절육ㆍ생선ㆍ육포)을 썼기 때문입니까? 이것은 다 예에 합당한 것이 아니오니이까?” 曰: “何哉君所謂踰者? 前以士, 後以大夫; 前以三鼎, 而後以五鼎與?” 평공이 말하였다: “아니다. 관곽(棺槨)과 의금(衣衾)【시신을 싸는 장렴(裝殮)의 옷과 기물】이 지나치게 화려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曰: “否. 謂棺槨衣衾之美也.” 악정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참월이 아닙니다. 예의에 합당한 범위 내에서 아버지 장례 때와 어머니 장례 때의 빈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曰: “非所謂踰也, 貧富不同也.” 악정자가 돌아와서 맹자를 뵈옵고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선생님 에 관한 것을 잘 말씀드렸기 때문에 임금께서 직접 마중 나와서 선생님을 뵈오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간신 같은 폐인인 장창이라는 놈이 임금을 저지하였습니다. 결국 임금은 아니 오는 것으로 결말이 나고 말았습니다.” 樂正子見孟子, 曰: “克告於君, 君爲來見也. 嬖人有臧倉者沮君, 君是以不果來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가는 것도 가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멈추는 것도 멈추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가고 멈추는 것이 어찌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일까보냐! 내가 지금 노나라의 제후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하늘의 뜻일 뿐이다! 일개 장가놈이 어찌 나로 하여금 평공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曰: “行或使之, 止或尼之. 行止, 非人所能也. 吾之不遇魯侯, 天也. 臧氏之子焉能使予不遇哉?” |
여기서 맹자의 여로는 끝난다. 맹자가 이 긴 여로를 출발한 것이 BC 320년, 53세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 긴 여로를 마감한 것이 BC 305년, 68세의 시기였다. 「양혜왕」편은 이 긴 15년간의 여로를 너무도 간결하면서도 동시에 모두 서술되어야만 하는 분위기를 자세히 전달해주고 있다. 이 15년의 여로의 첫 순간은 ‘어찌하여 리(利)를 말하는가?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하고 호통치는 패기찬 젊은 맹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은 ‘하늘의 뜻이로다!’ 체관(諦觀)의 달자(達者)의 모습이다. 시대의 추이와, 사상의 성숙, 그리고 한 사상가의 좌절과 동시에 새로운 은거의 시작을 알려주는 위대한 전기를 여운 있게 기록해놓고 있다.
장가놈의 농간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위대한 맹자는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체념이 결국 맹자가 제자들과 자기의 생애를 담은 저술에 전념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인류사의 전기라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악정자는 맹자의 제자로서 당시 노나라의 집정(執政)이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평공과 맹자의 해후를 성사시키려고 노력했다. 맹자가 고개를 숙이고 평공을 찾아갈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악정자는 감언으로 평공으로 하여금 맹자를 찾아가 뵙게 만들었다. 처음, 평공이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악정자의 사려깊은 계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간신 장창에게 들켜 파토가 나고 말았다. 평공은 무덤덤하게 또 녕신(佞臣) 장창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기 판단이 없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맹자가 자기 엄마 장례와 묘소를 과하게 쓴 것은 이미 당시에 유명한 이야기인 모 양이다. 그리고 폐인 장창이 지적한 것은 과히 틀리지는 않다. 『중용(中庸)』 18장에 보면, 장례는 죽은 자의 위로써 하고 제사는 받드는 자손의 위(位)로써 한다는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나의 『중용한글역주』를 참고하라). 장례 자체를 받드는 자의 위에 따라 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악정자는 그 범 위가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며 단지 빈부라는 경제적 여건의 문제였기 때문에 결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에 맹자를 찾아온 악정자의 분위기는 다 성사된 끝판이 깨진 것을 분개하는 어투이다. 그 분개에 대하여 맹자의 체관(諦觀)이 서리고 있다. 맹자는 이미 15년의 공생애를 거쳤다. 그리고 군주들의 실태도 다 파악하였다. 그리고 노나라가 이미 국운이 다한 것도 간파하고 있다. 더 이상 기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북돋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천명(天命)일 뿐이다! 어찌 일개 간신의 농 간에 나의 운명이 놀아날 수 있겠는가!
나 도올도 최근까지 사회참여의 권유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제 내 갈 곳은 오직 나의 사유로 침잠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체관이 감돈다. 맹자의 나이와 나의 나이가 비슷하다. 이제 나도 내 인생에서 『맹자』라는 서물을 뛰어넘을 작품을 남기는 새로운 꿈을 모색하리라! 미련 없이 수레를 돌려라! 저 영원한 진리의 세계로 떠나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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