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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상 - 1.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긴 쉽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긴 쉽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상 - 1.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긴 쉽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긴 쉽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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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

 

 

1.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긴 쉽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긴 쉽다

 

 

2a-1. 맹자가 제나라에 간 초기에 있던 일이다. 제나라에서 입문한 제나라 사람 제자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여쭈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만약 제나라에서 국정의 권좌에 앉으신다면, 제나라의 찬란했던 명신 관중(管仲)제환공(齊桓公)의 재상과 안자(晏子)제경공의 재상. 1b-4에 기출의 공업(功業)을 다시 한 번 흥륭시킬 수 있겠군요?”
2a-1. 公孫丑問曰: “夫子當路於齊, 管仲晏子之功, 可復許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너는 정말 지독한 제나라 사람이구나, 겨 우 안다는 게 고작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뿐이냐? 일찍이 누군가 증자의 아드님인 증서(曾西)증서를 증자의 손자로 본 조기나 주희의 견해는 적합하지 않다에게 물었다고 한다: ‘증서 당신과 자로를 비교한다면 누가 더 현명합니까?’ 증서는 황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로 선생은나의 돌아가신 아버지 증삼(曾參)께서도 외경스럽게 여겼던 분이시다. 어찌 감히 나를 자로 선생께 비교한단 말인고!’
孟子曰: “子誠齊人也, 知管仲, 晏子而已矣. 或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曾西衛然曰: ‘吾先子之所畏也.’
 
그러자 그 사람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과 관중과는 누가 더 현명하오?’ 증서는 발끈 얼굴을 붉히며 기분 나쁜듯이 말했다: ‘여보게! 그대는 왜 하필 나를 관중에게 비교하는가? 관중은 제환공(齊桓公)의 신뢰를 그토록 독점하였으며, 또 국정을 전횡한 것이 그토록 오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이룩한 공로라는 것은 왕도가 아닌 패도를 행한 저열한 것일 뿐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하필이런 자에게 비교하는가?’
: ‘然則吾子與管仲孰賢?’ 曾西艴然不悅, : ‘爾何曾比予於管仲? 管仲得君, 如彼其專也; 行乎國政, 如彼其久也; 功烈, 如彼其卑也. 爾何曾比予於是?’”
 
그러니 나는 말하노라! 관중은 증서 같은 인물도 상대하지 않는 수준의 인간이다. 그대는 나의 제자로서 어찌하여 나보고 관중처럼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 “管仲曾西之所不爲也, 而子爲我願之乎?”
 
공손추는 말하였다: “선생님! 발끈하지 마시고 제 말씀 좀 차분히 들어보십시오. 관중은 어찌되었든 그가 섬긴 임금을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안자는 그가 섬긴 임금을 그 이름이 천하에 현 창(顯彰)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만만치 않은 관중과 안자, 두 인물에 관하여 전혀 배울 건덕지가 없다는 것입니까?”
: “管仲以其君霸, 晏子以其君顯. 管仲晏子猶不足爲與?”
 
말씀하시었다: “이 녀석아! 지금 그런 게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제 나라의 국력을 기반으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왕도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 “以齊王, 由反手也.”
 
말하였다: “아이쿠 선생님!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이 제자의 의혹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요. 관중(管仲)이나 안영(晏嬰)은 잠깐 제켜놓고 문왕 같은 분을 생각해봅시다요. 문왕은 그토록 위대한 덕의 소유자였으며 또 한 백년 가까이 장수를 누린 후에야 승하하시었습니다전설에 의하면 97 세에 붕().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는 미흡했습니다그 덕이 천하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과 주공(周公) 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왕도가 크게 행하여졌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천하를 통일하는 왕도의 구현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그토록 쉬운 일이라고 한다면, 문왕은 본받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겠네요?”
: “若是, 則弟子之惑滋甚. 且以文王之德, 百年而後崩, 猶未洽於天下; 武王周公繼之, 然後大行. 今言王若易然, 則文王不足法與?”
 
말씀하신다: “허허~ 이 사람아! 어찌 문왕 같으신 위대한 분을 끌 어다가 여기에 비교한단 말인가! 내가 얘기해줌세! 문왕께서 천하를 통일하시지 못한 것은 그 나름대로 피치못할 역사적 사정이 있는 것일세. 은나라의 시조이신 탕임금으로부터 중흥의 영주(英主)인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현명한 군주가 67명이나 일어났고, 천하의 민심이 은 나라에 귀복(歸復)된 것이 매우 오래되었다네 민심이 오래 안정될수록 혁명이라는 것은 지난한 사업이 되는 것이지 중흥의 명군 무정(武丁)은 주변의 제후를 모두 조공케 하였고 천하를 장악하는 것이 장중(掌中)에 주무르듯이 쉬웠던 것일세. 은나라의 마지막 폭군인 주()임금의 시대라 해봐야 찬란했던 무정의 시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아. 대대로 유서 깊은 집안들의 훌륭한 풍속이 남아있었고 훌륭한 군주들이 인민에게 끼친 감화의 류풍(流風)이나 선정(善政)의 은택이 아직 상존해있었지.
: “文王何可當也? 由湯至於武丁, 賢聖之君六七作. 天下歸殷久矣, 久則難變也. 武丁朝諸侯有天下, 猶運之掌也. 紂之去武丁未久也, 其故家遺俗, 流風善政, 猶有存者;
 
그리고 또 미자(微子)주임금의 이모형(異母兄). 혹은 친형. 이름은 계()ㆍ미중(微仲)미자의 동생. 이름은 연()ㆍ왕자비간(王子比干)주의 숙부(叔父)ㆍ기자(箕子)주의 친척인 현인ㆍ교격(膠鬲)주의 현신(賢臣)과 같은 현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모두 같이 협력해가면서 주임금을 보좌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임금의 폭정은 오랜 세월을 견디어내다가 뒤늦게 천하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야. 주임금의 때만 해도 한 척()의 땅이라도 주임금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었고, 한 명의 백성이라도 주임금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었네. 그러니 단지 사방백리의 작은 땅을 기반으로 일어난 문왕(文王)의 입지는 곤란한 처지가 한둘이 아니었다네.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皆賢人也, 相與輔相之, 故久而後失之也. 尺地莫非其有也, 一民莫非其臣也, 然而文王猶方百里起, 是以難也.
 
제나라 사람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지혜가 있을지라도 바른 때의 세()를 타느니만 못하고, 아무리 좋은 쟁기가 있어도 농사의 제철을 기다리느니만 못하니라.’ 지금 이때야말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왕도를 구현하기가 너무도 쉬운 적기란 말이다. 하ㆍ은ㆍ주 삼대의 전성기에도 제왕의 직할지가 천리사방을 넘는 것이라고는 있어본 적이 없다. 제나라는 지금 천리사방을 넘는 영토를 가지고 있다. 하ㆍ은ㆍ주삼대의 전성시기에는 인구가 많아 도시에 꽉 들어찬 집에서 닭이 울고 개가 짖으면 그 소리가 서로 들려 사방의 국경에까지 시끄럽게 미쳤다. 지금 제나라 또한 그처럼 많은 인구를 확보하고 있다.
齊人有言曰: 雖有智慧, 不如乘勢; 雖有鎡基, 不如待時. 今時則易然也. 夏后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 而齊有其地矣; 雞鳴狗吠相聞, 而達乎四境, 而齊有其民矣.
 
땅을 새롭게 개간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인구를 늘이느라고 타국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으니, 단지 인정(仁政)만을 실천한다면 곧 천하를 통일하는 왕도를 구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감히 누가 그 대세를 막을 수 있으리오! 또한 진정한 왕자(王者)가 출현하지 않은 지가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된 유례가 없으며,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려 초췌(憔悴)하고 황폐하게 된 것이 오늘처럼 이토록 심한 시대는 없었다. 굶주린 자는 맹렬하게 먹으려고 할 것이며, 목마른 자는 맹렬하게 마시려고 할 것이다.
地不改辟矣, 民不改聚矣, 行仁政而王, 莫之能禦也. 且王者之不作, 未有疏於此時者也; 民之憔悴於虐政, 未有甚於此時者也. 飢者易爲食, 渴者易爲飮.
 
내가 존경하는 공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단다: ‘()이 흘러가는 것은 역참을 건너뛰며 파발마로 명령을 전하는 것보다도 빠르다.’ 지금 바로 이 시점에 만승의 대국인 제나라가 인정(仁政)을 행한다면 인민들은 기뻐 날뛸 것이며, 고문당하는 사람이 천정에 거꾸로 매달린 쇠사슬에서 풀려난 것처럼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왕도의 혁명이란 옛 성인들의 절반의 수고만 들여도 그 공은 반드시 두 배가 넘을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바로 그때로다!”
孔子曰: ‘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 當今之時, 萬乘之國行仁政, 民之悅之, 猶解倒懸也. 故事半古之人, 功必倍之, 惟此時爲然.”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젊은, 패기찬 맹자의 절규를 듣는다. 그의 이상주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며, 그의 왕도의 혁명론은 시중(時中)’의 타이밍을 가지고 있다는 절박한 호소, 그것을 이해 못해주는 권력자들 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의 가슴은 불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대화는 분명 맹자가 제나라에 왔을 때, 아주 초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양혜왕7에서 맹자가 제왕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대화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제선왕의 첫 질문은, ‘제환진문지사(齊桓晋文之事), 가득문호(可得聞乎)?’였던 것이다. 제선왕을 대하는 것보다는 그의 제자 공손추의 질문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역사적이고 교훈적인 디테일을 담고 있다. 교육자로서의 맹자의 면모가 돋보인다.

 

공손추 역시 맹자의 제자이면서도 맹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맹자가 살았던 시대의 대세였던 것이다. ‘너 참 지독한 제나라 놈이구나!’ 공손추는 제나라 사람이 었고, 제나라의 갈망을 대변하고 있다. 그 갈망은 항상 제환공(齊桓公)의 패업을 회복하는 것이다. 혹자는 공손추가 우문을 계속 던지는 못난 제자인 것처럼 말하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공손추는 진지하고 진실한 인간이며 배움의 열정이 있는 인간이다. 공손추는 공손(公孫)’이라는 성이 말해주듯이, 공실과 관계된 뿌리 있는 집안의 자손일 것이며 당대 직하에서 많은 선생의 훈도를 받은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맹자를 만나는 동시에 맹자에게 필이 꽂혔던 것이다. 공손추는 솔직한 질문을 던지며 맹자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줄곧 그의 곁을 지킨 충직한 제자라고 보여진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질문을 통하여 맹자의 속마음을 접하게 된다. 맹자에 관한 상당 부분의 기록이 공손추에 의하여 기술된 것이다. 공손추는 무벌선(無伐善), 무시로(無施勞)’하는 안회의 모습과 겹친다(5-25), 맹자에게 있어서는 안회와도 같은 인물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훌륭한 정책의 실현의 타이밍, 사반공배(事半功倍)의 적기를 말하는 맹자의 논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한국의 민생(民生)은 남북화해의 전제가 없이는 확보될 길이 없다. 남북대결을 빌미로 주변 강대국이 우리를 가지고 농간을 부리지 못하게 만들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는 안정될 길이 없다. 남북화해를 위해서는 이념의 질곡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이념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과거의 역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일변도의 강대국 종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매우 쉬운 것이다. 실천하려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못하고 있다! 얼마나 우매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냐? 한민족은 지금 가위에 짓눌려 있다. 뜀박질을 뛰고자 하면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가위에서만 풀려나면 질풍같이 달려갈 수 있으련만, 그 얼마나 치졸한 망상인고! 맹자와 더불어 오늘 이 시를 통곡하노라!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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