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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하 - 7. 장례에서만큼은 과해도 된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하 - 7. 장례에서만큼은 과해도 된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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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장례에서만큼은 과해도 된다

 

 

2b-7. 맹자는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가서 어머니의 장례를 거기서 치렀다. 장례를 다 마치고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제나라의 남쪽에 있는 영()무현(萊蕪縣) 서북 40리의 북쪽에 성이 남아있다 땅에 머물렀다. 이때 맹자의 제자로서 장례를 총괄지휘한 충우(充虞)가 아뢰었다: “일전에는 저의 불초함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잘 봐주셔서 저로 하여금 관곽(棺槨)을 짜는 일을 감독하도록 하여 주셨습니 다. 영광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때는 하도 한가한 틈이 없어, 궁금한 것을 다 여쭈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와서 좀 여쭙겠습니다. 관곽에 쓴 목재가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2b-7. 孟子自齊葬於魯, 反於齊, 止於嬴. 充虞請曰: “前日不知虞之不肖, 使虞敦匠事. , 虞不敢請. 今願竊有請也, 木若以美然.”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예로부터 관()과 곽()의 두께의 치수에 관한 확고한 규정은 없었다. 그런데 중고(中古)주공(周公)의 제례(祭禮)에 이르러, 관의 두께는 7, 그리고 곽의 두께는 관의 두께에 준하여 적당히 한다는 예법이 생겨났다. 이 예법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며 계층적 차별성은 없었다. 이렇게 두꺼운 재목을 써서 관곽을 짜는 것은 단지 외관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요,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자식된 자의 마음에 만족감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나라의 규정으로 안 된다고 하면 백성들의 마음은 기쁠 수가 없고, 또 된다고 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재력이 없으면 자식 된 자의 마음이 기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예법상으로도 걸리는 것이 없고, 또 그러한 화려한 목재를 살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경우에는, 예로부터 누구든지 다 최고품질의 관곽을 써온 것이다. 왜 나라고 그런 관곽을 써서 안 될까보냐?
: “古者棺槨無度, 中古棺七寸, 槨稱之. 自天子達於庶人. 非直爲觀美也, 然後盡於人心. 不得, 不可以爲悅; 無財, 不可以爲悅. 得之爲有財, 古之人皆用之, 吾何爲獨不然?
 
시신이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흙이 부모님의 피부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하고 싶은 그 정성은 자식 된 자의 효성스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아니 할까보냐? 부모님의 장례는 지극한 정성으로 치르는 것이 좋다. 내가 듣기로는, 당당한 군자라면 천하사람들의 이 목이 두려워 부모님의 장례를 검약하게 하지는 않는다.”
且比化者, 無使土親膚, 於人心獨無恔乎? 吾聞之君子: 不以天下儉其親.”

 

이미 양혜왕16에서 맹자가 노평공을 만나려고 했을 때, 그것을 훼방하는 폐인이 내건 명분이 맹자의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후장(厚葬)이었다. 맹자 엄마의 장례가 너무 거했다는 것은 당대의 비난의 대상 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근원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주제는 묵 자의 박장론에 대한 유가의 후장론(厚葬論)이다. 다시 말해서 맹자는 공자 이래의 공문의 후장 전통을 사회적으로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묵자(墨子)절장(節葬)편을 일한다면 당대의 후장의 폐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묵자는 후장구상(厚葬久喪)’은 인의(仁義)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현실적 목표인, 인민을 부유하게 만들고[], 인구를 증가시키고[], 국가를 전쟁 없는 질서 있는 나라로 만드는[] 3대 목표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정하게 인의(仁義)를 주장한다면 후장구상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신은 어차피 빨리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이니 얇은 판대기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두꺼운 관곽을 장만하느라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재정을 축낼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박한다. 묵자는 화려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극빈의 민중의 삶을 기준으로 평등사회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맹자의 답변은 여기 본장에 주어져 있다. 명말청초의 유로(遺老) 석도(石濤)의 화론에 태고무법(太古無法)’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 맹자도 같은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예법을 따지기 전에 자연스럽게 부모의 장례만은 있는 정성을 다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인정의 자연스러운 유로라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세에 꿈이 있고 도덕이 있고 예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편도 들고 싶지 않다. 맹자의 논의도 민중의 실상을 무시한 억지스러운 강변의 냄새가 난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는 항상 당당하다.

 

마지막은 이천하(以天下)’를 대강 천하를 위하여’ ‘천하사람들을 위하 여즉 물자를 아낀다는 뜻으로 새기는데, 나는 천하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라는 뜻으로 새기었다. 그리고 조기는 맹자의 엄마가 제나라에서 죽었다고 쓰고 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맹자가 주유천하(周遊天下)할 때, 그 많은 수레 중 어느 하나 속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닌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직하에서 살 때도 어머니를 모시었다. 그러나 유향의 열녀전에 나오는 추맹가모(鄒孟軻母)의 기사를 근거로 말한다면, 맹모는 제나라에서 맹자가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 맹자 곁을 떠나 추나라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보아야 한다. 열녀전의 맹모기사 마지막 부분인 자행호자의(子行乎子義), 오행호오례(吾行乎吾禮)’를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에 맹자는 어머니의 장례를 더욱 극진하게 모셨던 것이다. 맹자의 인격에 끼친 맹모의 교육적 위대함은 부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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