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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하 - 9. 허물에 관한 군자들의 방식 차이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하 - 9. 허물에 관한 군자들의 방식 차이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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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허물에 관한 군자들의 방식 차이

 

 

2b-9. 제나라는 연나라를 병합하려고 무리하게 2년을 끌었다. 그러 나 연나라의 인민들은 태자 평()을 왕으로 옹립하고 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제선왕은 말했다: “내가 맹자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맹자를 볼 면목이 없구나!”
2b-9, 燕人畔. 王曰: “吾甚慚於孟子.”
 
제나라의 대부 진가(陳賈)가 왕을 위로하면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는 걱정하실 것까지 없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주공(周公)에 비교하여 과연 누가 더 인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陳賈曰: “王無患焉. 王自以爲與周公, 孰仁且智?”
 
왕이 말하였다: “데끼! 그게 뭔 말인고! 주공 같은 위대한 인물을 나에게 비교하다니!”
王曰: “! 是何言也?”
 
진가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주공(周公)은 관숙(管叔)을 시켜 은()나라 유민(遺民)을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관숙은 은나라 유민을 이끌고 주나라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관숙(管叔)의 이름은 선()이다. 관이라는 땅에 봉하여졌기 때문에 관숙이라고 이른다. 무왕(武王)과 같은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들이 모두 10명이다. 무왕이 두 번째 아들이고 세 번째 아들이 관숙이며 네 번째 아들이 주공 단()이다. 그러니까 관숙은 주공의 형이다. 무왕이 은()을 멸망시키면서 주()의 아들인 무경(武庚)을 세워, 관숙과 채숙(蔡叔) 두 형제로 하여금 무경을 도와 은나라 유민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 성왕이 대를 이었는데 성왕이 나이가 어리자 주공이 섭정하였다. 관숙과 채숙은 주공이 말로만 섭정한다 하면서 실제로 나라를 말아먹을 놈이라고 비난하면서 무경(武庚)을 옹립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성왕의 명령을 받들어 무경을 살해하고 관숙도 죽였으며 채숙은 멀리 귀양 보냈다. 조선 초 왕자의 난 비슷한 사건이다. 문헌에 따라 관숙이 주공의 동생이 되기도 한다.
: “周公使管叔監殷, 管叔以畔.
 
주공이 만약 관숙이 반란을 일으킬 만한 위인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로 하여금 은 유민을 감독케 하였다면 그것은 주공이 불인(不仁)한 것이며(감각이 모자라다), 그런 일이 있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렇게 하였다면 그것은 주공이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과 지()에 있어서 주공조차 완전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임금님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제가 맹자를 따로 만나서 설득하고 오해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知而使之, 是不仁也; 不知而使之, 是不智也. 仁智, 周公未之盡也, 而況於王乎? 賈請見而解之.”
 
진가는 우쭐대며 맹자를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주공은 어떤 사 람이지요?” 맹자는 말씀하시었다: “옛 성인이시다.” 물었다: “주공이 관숙으로 하여금 은 유민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말씀하시었다: “있었다.”
見孟子問曰: “周公何人也?” : “古聖人也.” : “使管叔監殷, 管叔以殷畔也, 有諸?” : “.”
 
물었다: “주공이 관숙이 배반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을까요?” 말씀하시었다: “그건 내가 알 수가 없다.”
: “周公知其將畔而使之與?” : “不知也.”
 
물었다: “그렇다면 성인 또한 과실을 범하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말씀하시었다: “주공은 동생이고, 관숙은 주공의 형님이시다. 형제라는 것은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이이므로 주공이 과실을 범하는 것도 오히려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런 과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옛 군자들은 과실이 있으면 바로 그것 을 고치었다. 그런데 지금의 군자는 과실을 범하고서도 그것을 계속 뭉개면서 밀고 나간다. 옛 군자들이 과실을 범했을 때는 그것이 마치 일식ㆍ월식과도 같아서 사람들이 모두 명백하게 놀란 심정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군자가 과실을 반성하고 고치면 어두웠던 해 와 달이 다시 밝아지는 것과도 같이 인민들이 모두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지금의 군자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의 과실을 뭉개면서 계속 밀고 나가려고 하는가! 게다가 지저분한 변명의 말까지 개칠하고 있지 아니 한가!”
然則聖人且有過與?” : “周公, 弟也; 管叔, 兄也. 周公之過, 不亦宜乎? 且古之君子, 過則改之; 今之君子, 過則順之. 古之君子, 其過也, 如日月之食, 民皆見之; 及其更也, 民皆仰之. 今之君子, 豈徒順之, 又從爲之辭.”

 

오랜만에 통렬한 맹자의 꾸짖음을 듣는다. 진가의 논리는 매우 교묘하고 반박하기가 어려운 듯이 보인다. 그러한 교묘한 논리를 정면으로 돌파해버리는 맹자의 논리는 수사학이 아닌 광명정대한 진심의 발로이다. 수사의 교묘함을 진실의 우직함으로 이겨내는 맹자의 담대함의 배경에 깔려있는 것은 명명백백한 공개성(openness)’의 천명이다. 정치는 일식과 월식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도 공개적이어야 하며, 반성과 개선도 공개적이어야 한다. 꼼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논어(論語)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논어1-8, 9-24)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전승하고 있다. 공자는 말한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허물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15-29), 미국도 일본도 제국주의의 허물을 깨달았으면 곧바로 시정해야 마땅하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객들도 허물을 탓하지 말고, 허물을 고치지 못함을 탓해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권좌의 끝날까지 해처먹을 꼼수만을 궁리하는가?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과즉순지(過則順之)’ 아니겠는가?

 

1. 공손추8 2. 양혜왕10
심동(沈同)이 제() 나라 정벌을 맹자에게 묻는다. () 나라 사람이 연() 나라를 쳐서 승리했다.
3. 양혜왕11 4. 공손추9
제후들이 장차 연() 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다. () 사람이 배반하자 제선왕이 맹자를 뵐 면목이 없어지다.

 

 

다음 장에 나오는 기사는 이 앞의 공손추2의 기사, 그러니까 제선왕을 참조(參朝)하려는데 마침 왕의 사신이 오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사태가 복잡하게 꼬이게 된 미묘한 심정을 그린 기사, 그 기사에 연접되는 것으로 읽어야 마땅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앞에 이미 제나라의 벌연(伐燕) 사건이 있었고, 그것은 2년이나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그 국제적 사건을 두고 제선왕과 맹자 사이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곧바로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사건은 시간을 두고 전개되었으며 돌발적인 사태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맹자가 이미 직하에서 7년을 머물렀고, 그것은 경()의 지위에서 국정의 왕도적 방향을 위해 힘쓴 세월이었으나 맹자 스스로 그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자기 삶의 새로운 전기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맹자의 나이가 61(60), 환갑의 나이였다. 맹자는 제나라에서 환갑을 맞이하고 제나라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맹자를 읽는 사람들은 맹자와 제선왕과의 관계를 대적 적으로, 그리고 제선왕을 왕도를 실현 못하는 불만한 캐릭터로서만 그 리고 있으나, 실상 제선왕의 맹자에 대한 태도는 매우 지극한 것이며, 그 속마음에 맹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이별은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 못지않게 기나긴 우정의 살가운 정감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맹자를 이념적으로만, 그리고 추상적인 논리로써만 읽은 과거 조선향유들의 좁은 소견이나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번역자들의 오류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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