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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상 - 7. 이윤은 출세지향형 인물인가?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상 - 7. 이윤은 출세지향형 인물인가?

건방진방랑자 2022. 12. 28.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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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윤은 출세지향형 인물인가?

 

 

5a-7. 만장이 여쭈었다 요즈음 사람들이 보통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이윤은 요리사 자격으로 탕왕에게 빌붙어 크게 벼슬 해먹었다.’ 이게 정말일까요?”
5a-7. 萬章問曰: “人有言 伊尹以割烹要湯有諸?”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윤은 요리사가 아니었고 유신(有莘)이라는 나라유신(有莘)’()’는 명사 앞에 그냥 붙는 허사이며 존재를 나타낸다. 5a-3유비(有庳)’도 마찬가지다. 옛 신국(莘國)은 변주(汴州) 진류현(陳留縣) 5리에 있는 옛 신성(莘城)이다. 현재는 하남성(河南省) 진류현(陳留縣) 동북에 있다의 들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요ㆍ순의 도를 즐길 줄 아는 초연한 선비였다. 의에 합당치 아니 하고, 도에 벗어나는 일이라면, 봉록으로서 천하를 준다 해도 돌아보지도 않았고, 사육용의 좋은 말 4천 마리를 준다 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의에 합당치 아니 하고, 도에 벗어나는 일이라면, 지푸라기 한 낱일개(一介)’라는 말이 여기 쓰였는데 우리말의 한 낱의 뜻이다. 초개도 같은 뜻이라도 타인에게 주지 않았으며, 지푸라기 한 낱이라도 타인으로부터 받지 않았다. 그토록 청렴한 인물이었다.
孟子曰: “, 不然. 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 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弗顧也; 繫馬千駟, 弗視也. 非其義也, 非其道也, 一介不以與人, 一介不以取諸人,
 
탕임금이 사신을 보내어 비단예물을 바치고 그를 초빙하려 하자, 그는 효효연(囂囂然)하게무욕자득(無欲自得)하여 하고 싶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모습 말했다: ‘내가 탕임금의 폐백예물로써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어찌 논두렁 밭두렁 한가운데서견묘지중(畎畝之中)’이라는 표현은 5a-1에 기출 요ㆍ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같을까보냐!’
湯使人以幣聘之, 囂囂然曰: ‘我何以湯之聘幣爲哉? 我豈若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哉?’
 
이에 탕임금은 진실로 이윤을 모시고 싶었기에 성의를 다하여 세 번이나 사신을 보내 예를 갖추어 이윤을 초빙하였다여기 탕삼사왕빙지(湯三使往聘之)’는 나중에 유비(劉備)삼고초려(三顧草廬) 고사의 원형이 되었다. 여기 ()’은 그냥 여러 번의 뜻을 내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지함에 감동받아 이윤도 번연히(幡然, 뒤집는 모습) 생각을 고쳐먹고 다음과 같은 결의를 표명하였다: ‘내가 논두렁 밭두렁 한가운데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이, 어찌 이 임금 탕왕을 요ㆍ순과 같은 명군으로 만드는 것만 같으리오? 이 백성을 요ㆍ순의 백성과 같이 편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더 시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 몸으로 친히 요ㆍ순의 시대와 같은 세상을 보는 것이야말로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하느님께서 이 백성 을 세상에 내실 때에는 선지(先知, 먼저 안 자)로 하여금 후지(後知, 나중에 아는 자)를 깨닫게 하시고, 선각으로 하여금 후각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나야말로 하느님께서 내신 백성 중에서 먼저 깨달은 선각자(先覺者)이다. 나는 사도(斯道)요ㆍ순의 선왕지도(先王之道)이며 인의(仁義)의 도이다. 나중에는 공자의 가르침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로써 사민(斯民)이 백성의 뜻인데, 항상 ()’라는 의미에는 적통성(authenticity)의 의미가 배어있다을 깨우쳐야 할 사명이 있는 자로다! 내가 이 백성을 깨우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들을 깨우치리오?’
湯三使往聘之, 旣而幡然改曰: ‘與我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 吾豈若使是君爲堯舜之君哉? 吾豈若使是民爲堯舜之民哉? 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 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 天民之先覺者也; 予將以斯道覺斯民也. 非予覺之, 而誰也?’
 
결국 이윤은 천하의 백성, 이름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라도 요ㆍ순의 은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게 되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 사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도록 만든 것처럼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천하라고 하는 막중한 책임을 나 홀로 걸머진 듯하였기에, 탕왕에게 나아가 포역한 하나라의 걸왕을 정벌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할 것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 若己推而內之溝中. 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 故就湯而說之以伐夏救民.
 
나는 자기를 굽혀서 타인을 바르게 한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물며 자신을 욕되게 하여 천하를 바르게 한다는 것이 어찌 가()할 수 있으리오! 성인의 행동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때는 권좌를 멀리할 수도 있고, 권좌를 가까이서 복무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조정을 미련없이 떠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떠나기를 아쉬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 몸을 정결하게 한다는 하나의 원칙으로 귀결된다.
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 況辱己以正天下者乎? 聖人之行不同也, 或遠或近, 或去或不去, 歸潔其身而已矣.
 
나는 탕()의 명신(名臣)인 이윤(伊尹)이 요ㆍ순의 도()로써 탕왕(湯王)을 설복시켰다는 말은 들었어도 할팽(割烹)의 요리술로써 탕왕에게 빌붙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상서(尙書)』 「이훈(伊訓)편에도 다음과 같은 이윤의 말이 있다: ‘하늘이 명하시는 주벌(誅伐)을 받을 만한 죄업은 목궁(牧宮)에 사는 걸왕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나는 탕왕을 돕는 역사를 그 서울 박()에서부터 시작하였노라.’ 내 말을 논증키에 충분하지 아니 한가?”
吾聞其以堯舜之道要湯, 末聞以割烹也. 伊訓: ‘天誅造攻, 自牧宮, 朕載自亳.’”

 

여기 제자 만장은 또 하나의 거대한 당대의 이슈를 건드린다. 이미 앞장에서 맹자가 이윤(伊尹)’을 언급하였기에, 이윤설화의 진상에 관해 만장은 맹자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다. 나의 번역이 일반 여타 번역과 다른 것은 문자의 배면에 있는 감정까지 같이 번역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윤을 특별히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것은 공자가 주공(周公)을 꿈에 그리도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비슷하다(논어7-5). 주나라 초기의 주공의 역할이나 은나라 초기의 이윤의 역할은 거의 동일하다고 보 아도 무방하다. 둘다 신왕조 개창의 혁명의 주체세력이다. 그러나 본인이 왕이 되지 않고, 왕을 도와 혁명이 잘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후견인 노릇을 했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는 지식인의 처지에 있는 공자나 맹자에게 그 아이덴티티의 상()으로서는 보다 적합한 인물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의 패러곤은 주공이었고, 맹자의 패러곤은 이윤이었다. 그리고 기질적으로도 이윤은 맹자의 위인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전국시대에 떠돌아다니는 이윤설화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즉 이윤의 이름이 아형(阿衡)이었는데, 아형은 당대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탕임금을 만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탕임금에 발탁되기 위한 수단으로 탕임금에게 시집가는 유신씨(有莘氏)의 딸의 잉신(媵臣)’여자가 시집갈 때 데리고 가는 남자 노복(奴僕)이 되기를 자청한다. 그리하여 요리기구인 정()과 조()를 둘러메고 따라가 결국 탕에게 접근하는 기회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요리에 관한 이야기로써 탕임금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것을 확대해석하여 맛의 본질이 자신의 몸의 닦음에 있으며, 맛은 왕업(王業)을 성취할 때, 비로소 구비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일단이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 실려있고, 여씨춘추(呂氏春秋)』 「본미(本味)편에 매우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미(本味)2에는 이윤이 뽕나무에서 태어났으며, 유선씨(有侁氏)의 나라의 여자가 뽕나무에서 이 아이를 발견하여 임금에게 바쳤는데, 임금은 이 아이를 요리사에게 양육시키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를 실어놓고 있다. 그러니까 이윤이 비굴하게 요리사 자격의 잉신으로 자청한 것이 아니라 원래 어려서부터 요리사로서 성장했다는 이야기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묵자(墨子)상현(尙賢)() 5에도 옛날에 이윤은 신씨녀(莘氏女) 사복(師僕)이 되어 따라갔고, 탕임금의 궁궐에서 요리사가 되었다. 탕임금이 그를 발견하여 천거하여 곧 삼공(三公)의 지위를 허락하고 천하의 정치를 자기와 함께 도맡아 하도록 하여 천하의 인민을 다스렸다[, 伊尹爲莘氏女師僕, 使爲庖人, 湯得而擧之, 立爲三公, 使接天下之政, 治天下之民].’라고 쓰여져 있다. 하여튼 전국시대에는 이윤이 자신의 지위를 요리사의 신분으로까지 낮추어서 적극적으로 탕임금에게 접근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담론의 형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소불소지신(所不召之臣)’을 자처하는 맹자의 프라이드를 몹시 실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왕 쪽에서 부르지 않으면, 자신이 자청해서 벼슬길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맹자의 신념에 몹시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맹자의 논변은 그러한 자신의 신념체계를 이윤에게 덮어씌워서 재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맹자의 디펜스의 강렬함을 독자들은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결국 이윤의 설화에 맹자 본인의 삶의 철학과 갈망을 구현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주제는 만장하에서도 자세히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선지ㆍ선각이 후지. 후각을 깨우쳐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4b-7에 어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윤에 관한 이야기는 2a-2, 2b-2, 5a-6, 5b-1, 6b-6, 7a-31, 7b-38 등에 보인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2는 우리가 이 장에서 논의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놓고 있다.

 

 

이윤의 이름은 아형(阿衡)이다. 아형이 탕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친하게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유신씨(有莘氏) 잉신(媵臣)이 되어 정(, )과 조()도마 혹은 그릇. ‘정조(鼎俎는 요리기구의 통칭를 둘러메고 탕에게 가서, 음식의 맛을 예로 들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탕으로 하여금왕도(王道)를 실천하게끔 만들었다(천하를 제패하게끔 만들었다). 혹자는 이윤은 요리사가 아닌 은둔의 처사(處士)였는데, 탕이 사람을 시켜서 그를 초빙하여 맞아들이고자 하였으나, 다섯 번이나 거절한 뒤에나 비로소 탕에게 가서 그의 신하가 되어, 옛날의 태소상황(太素上皇)의 이야기와 아홉 가지 유형의 군주인 구주(九主)법군(法君)ㆍ전군(專君)ㆍ수군(授君)ㆍ노군(勞君)ㆍ등군(等君)ㆍ기군(寄君)ㆍ파군(破君)ㆍ고군(固君)ㆍ삼세사군(三歲社君)의 일을 설파하였다. 탕은 그를 등용하여 그에게 국정을 일임케 하였다.

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 以滋味說湯, 致于王道. 或曰, 伊尹處士, 湯使人聘迎之, 五反然後肯往從湯, 言素王及九主之事. 湯擧任以國政.

 

 

사마천은 만장이 제기한 전국시대의 설화유형으로써 일단 이윤을 규정해놓고 있으며, 맹자가 말한 유형의 설화를 혹왈(或曰)’이라는 형식으로 인용하여 방류(傍流)로서 처리해놓고 있다. 당시 이윤설화의 본류는 역시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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