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오패와 지금의 대부는 죄인이다
6b-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춘추시대의 오패(五霸)【오패(五霸)를 세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맹자의 감각을 중심으로 말하면 제환공(齊桓公)ㆍ진문공(晋文公)ㆍ진목공(秦穆公)ㆍ송양공(宋襄公)ㆍ초장왕(楚莊王)의 설이 제일 적합하다. 『백호통』 「호(號)」편, 조기 주의 설】라는 것은 고대의 삼왕(三王)【하우(夏禹)ㆍ상탕(商湯ㆍ주문왕무왕(周文王武王). 4b-20에 기출】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제후는 또 춘추시대의 오패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대부는 또 오늘날의 제후들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6b-7. 孟子曰: “五霸者, 三王之罪人也; 今之諸侯, 五霸之罪人也; 今之大夫, 今之諸侯之罪人也. 천자가 제후의 영지를 시찰하러 다니는 것을 순수(巡狩)라 말하며【1b-4에 기출】, 천자가 봉토에 당도했을 때 그곳 제후가 천자에게 참조(參朝)하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말한다【1b-4에서 내가 해석한 의미를 여기서도 적용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래야 제후조어천자(諸侯朝於天子) … 로부터 추성렴이조불급(秋省斂而助不給)까지를 연문으로서 제거해야 한다는 주석가들의 잡설이 사라진다】. 천자의 순수라는 것은 봄에는 파종과 경작의 상태를 잘 살피어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태주고, 가을에는 수확의 상태를 잘 살피어 보급이 안 되는 인력이나 기타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다. 天子適諸侯曰巡狩, 諸侯朝於天子曰述職. 春省耕而補不足, 秋省斂而助不給. 천자가 순수할 때, 우선 한 제후의 강역에 들어가게 되면, 토지가 잘 개간되어 풍요롭고, 전야(田野)가 잘 경작되어 기름지고, 노인을 잘 봉양하고 현자를 존중하여 대접할 줄 알며, 걸출한 준재(俊才)들이 고위관직에 있는 모습을 목도할 경우에는 반드시 상을 내린다【‘경(慶)’=‘상(賞)’】. 그런데 상은 토지를 주는 것으로써 한다. 入其疆, 土地辟, 田野治, 養老尊賢, 俊傑在位, 則有慶, 慶以地. 그런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한 제후의 강역(疆域)에 들어가보니, 토지가 내팽개쳐지어 황무(荒蕪)하고, 노인을 돌보는 자 없고 현자는 사라지고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사악한 자들이 고위관직에 있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면 반드시 철저히 견책(譴責)한다. 入其疆, 土地荒蕪, 遺老失賢, 掊克在位, 則有讓. 정기적으로 하는 내용이 도에 합당치 아니 하면, 처음에는 그 작위를 강등시키고, 두 번째는 그 토지를 삭감하며, 세 번째는 육사(六師)【천자의 군대 ‘육사(六師)’는 ‘육군(六軍)’과 같다】를 이동시켜 제후를 추방시켜 버린다【沃案: 나의 해석은 기존의 어떤 해석과도 다르다. 이상은 모두 ‘순수(巡狩)’라는 하나의 주제 속에서 논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는 징벌의 의미를 갖는 토(討)는 할 수 있지만 대등한 싸움의 의미를 갖는 벌(伐)은 하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후는 본시 벌(伐)은 할 수 있지만 토(討)는 할 수 없는 것이다. 一不朝, 則貶其爵; 再不朝, 則削其地; 三不朝, 則六師移之. 是故天子討而不伐, 諸侯伐而不討. 그런데 춘추의 오패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천자처럼 한 제후의 군대를 끌어다가 타 제후를 벌(伐)하는 짓을 했으니 이것은 실상 천자가 행하는 토(討)를 한 것이다【여기 쓰인 ‘루(摟)’라는 동사는 6b-1에 기출】.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오패라고 하는 것은 고대 삼왕(三王)의 법도에서 보면 죄인(罪人)이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五霸者, 摟諸侯以伐諸侯者也, 故曰: 五霸者, 三王之罪人也. 또 오패(五霸)는 제나라 환공(桓公)【1a-7에 기출】의 업적에 이르러 그 절정에 달했다. 환공은 노나라의 희공(僖公) 9년(BC 651)에 당대의 내노라하는 제후들을 규구(葵丘)【춘추시대에는 송(宋)나라에 속했다. 현재 하남성(河南省) 고성현(考城縣) 동쪽 30리에 있다. 지금도 ‘맹대향(盟臺鄕)’이라고 이름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에 모두 소집시켜 성대한 국제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제후들은 생인 소를 제단에 묶어만 두고 맹약의 문장을 그 소 위에 실어만 놓았다. 그 소를 죽여 피를 내어 군주들의 입가에 칠하는 삽혈(歃血)【피를 조금 마셔 입가에 묻는 예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의 예식절차는 생략하고 하지 않았다. 五霸, 桓公爲盛. 葵丘之會諸侯, 束牲, 載書而不歃血. 맹약의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불효한 자식을 주벌(誅罰)하라. 한번 세운 태자(太子)는 갈아치울 수 없다【‘수자(樹子)’는 수립된 태자의 의미. 세사(世嗣)를 변경할 수 없다는 규정. 당시 이 문제로 인해 국내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또 이로 인하여 국제분규가 심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첩(妾)으로써 본처를 바꿔칠 수 없다【우리나라 숙종조 ‘장희빈’의 문제와 같은 사태가 당시도 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국내문제로써 국제분규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初命曰: 誅不孝, 無易樹子, 無以妾爲妻. 맹약의 제2조는 다음과 같다: 현자를 존중하고 영재를 육성하여, 유덕자를 표창하라. 再命曰: 尊賢育才, 以彰有德. 맹약의 제3조는 다음과 같다: 노인을 공경하고 유약자를 자애로운 마음으로 대하라. 손님이나 여행객을 홀대하지 마라. 三命曰: 敬老慈幼, 無忘賓旅. 맹약의 제4조는 다음과 같다: 사(士)는 관직을 세습하지 못한다【沃 案: 옛날에도 봉록은 세습하는 일은 있어도 관직은 세습의 대상이 아니었다. 관직이 세습되면 공평성을 잃고, 인재등용의 기회가 적어지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士)가 어느 관직에 앉으면 그 일에만 전념케 하며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관직에는 청렴하고 뛰어난 인재를 앉혀라. 그리고 사감(私感)으로 마음대로 대부를 죽여서는 아니 된다. 四命曰: 士無世官, 官事無攝, 取士必得, 無專殺大夫. 맹약의 제5조는 다음과 같다: 한 나라에서 너무 많이 제방을 쌓아 수리(水利)를 독점하여 타국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한 나라가 흉작이 들어 타국에서 곡식을 구매할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절대로 그러한 구매를 막아서는 아니 된다. 신하에게 영지를 분봉했을 때에는 그것을 맹주에게 보고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五命曰: 無曲防, 無遏糴, 無有封而不告. 그리고 회맹에 참가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약속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동맹한 우리들은 맹약이 성립한 이상 서로 사이좋게 지낼지어다. 曰: 凡我同盟之人, 旣盟之後, 言歸于好. 생각해보라! 요즈음의 제후들은 모두 이러한 오패시대 수준의 오 개조의 맹약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말한 것이다.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의 법도에서 바라보아도 죄인들이다. 今之諸侯, 皆犯此五禁, 故曰: 今之諸侯, 五霸之罪人也. 요즈음의 대부들은 국군의 나쁜 행동을 하기는커녕 조장하기만 한다. 이 정도만 해도 대부들의 죄가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국군의 나쁜 행동을 유발시키고 그것에 논리를 제공하며 무기탄(無忌憚)하게 행동하도록 확대시킨다. 이러한 대부들의 죄질은 정말 사악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요즈음의 대부들은 모두 후자의 죄질에 해당되는 짓들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금의 대부는 지금의 제후의 법도에서 보아도 모두 죄인이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長君之惡, 其罪小, 逢君之惡, 其罪大. 今之大夫, 皆逢君之惡, 故曰: 今之大夫, 今之諸侯之罪人也.” |
실로 역사적 인간 맹자의 역사학도로서의 해박함과 정보의 정확성을 과시하는 장으로서 그 사료적 가치가 드높은 유명한 장이다. 관중(管仲)의 규구회맹(葵丘會盟)은 그 역사적 사실이 『춘추』경전에 명문화되어 있다. 공자도 일찍이 「헌문」 17ㆍ18장에서 환공이 제후들을 아홉 번이나 규합시키면서도 병거를 쓰지 않았으며, 이러한 회맹의 브레인 노릇을 한 관중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상투 없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좌임(左衽)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환공의 회맹의 성격이 중원의 문명의 수준을 격상시킨 문화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했다.
『춘추』 경전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좌전』 『공양전』 『곡량전』에 그 내용이 실려있을 법 하지만 『좌전』과 『공양전』에는 그 회맹 내용에 관하여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단지 『곡량전(穀梁傳)』에 그 내용이 소략하게 보도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곡량전』의 보도내용과 맹자의 로기온자료가 완벽하게 그 내용이 일치할 뿐만 아니라 『곡량전』의 보도내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맹자의 보도내용이 상세하다는 것이다.
우선 희생을 묶어놓기만 하고 죽이지 않았다는 회맹절차에 관한 내용이 일치한다. 그리고 『곡량전』의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샘을 폐쇄하거나 물줄기를 전용하지 말 것[毋雍泉].
2. 인도주의적인 곡물 매입을 막지 말 것[毋訖糴].
3. 일단 세운 태자를 갈아치우지 말 것[毋易樹子].
4. 첩으로써 정처를 대신하지 말 것[毋以妾爲妻].
5. 부인들로 하여금 국사에 관여케 하지 말 것[毋使婦人與國事].
맹자가 보도하는 회맹의 내용은 제1조로부터 제4조까지는 국내문제이며, 제5조만이 국제문제이다. 그리고 국내문제가 되었든 국제문제가 되었든 모두 사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윤리적 약속들이다. 국내문제가 국제회맹에서 중요한 잇슈로 등장한 것은 이미 본문의 옥안을 통해 밝혔듯이 국제분규의 대부분의 오리진(origin)이 국내문제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분쟁을 방지하는 것이 무력에 의거한 방법이 우선시될 수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각국 내부의 윤리적 생활을 잘 지키고 개선하는 것이 평화적 국제관계를 위한 첩경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G7이니, G20니, G2니 하는 회합들이 모두 자국의 이익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약소국을 어떻게 묵살하고 쥐어짜는가 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에 비한다면 참으로 의젓하고 도덕적인 회맹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맹자는 1a-7에서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晋文公)과 같은 패자의 사적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시치미를 뚝 떼었는데, 그것은 제선왕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특수한 상황에서의 수사적 기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여기서 뚜렷이 밝혀지고 있다. 맹자는 패자의 사적에 관해서도 너무도 소상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맹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하여 춘추시대의 생활상에 관하여 너무도 리얼한 사실들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춘추의 패자들을 바라보는 맹자의 비판적 시각에는 유교적 진리의 근원적 도덕성을 가지고 말한다면, 오늘의 제후들보다는 그들에게 그래도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진심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윤리적 삶의 복원을 통하여 국제간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구극적 진리에의 갈망이야말로 맹자의 염원이며 유교의 본령이라 말할 수 있다. 21세기의 국가들이 배워야 할 큰 교훈이 이 장에 들어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을 새롭게 인지하면서 맹자가 말하고 있는 회맹의 내용이 20세기에 발굴된 폼페이(Pompeii)의 모습이 AD 79년에 베수비우스화산(Mt. Vesuvius)의 분출 그 당시의 폼페이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전해주는 그러한 생생함과도 같은 어떤 신선한 감동을 전달받았다. 그만큼 『맹자』라는 문헌의 진실성을 강화시켜주는 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토(討)’와 ‘벌(伐)’에 관한 논의는 7b-2도 같이 참조하는 것이 좋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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