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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진심장구 상 - 2. 정명(正命)과 비정명(非正命)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진심장구 상 - 2. 정명(正命)과 비정명(非正命)

건방진방랑자 2022. 12. 3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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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정명(正命)과 비정명(非正命)

 

 

7a-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간의 길흉화복이 명()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그 바른 명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명을 아는 자는 곧 무너질 바위나 담 밑에 서있지 아니한다沃案: 곧 무너질 썩은 정권의 말기에 장관 한 자리를 탐내는 놈들, 주구 노릇하는 검찰, 정신 못 차리고 만세 부르는 언론, 그 얼마나 명을 모르는 자들이냐?.
7a-2. 孟子曰: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
 
정당한 도덕적인 삶의 길을 끝까지 충실히 걷다가 죽는 사람은 죽더라도 정명(正命)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비도덕적인 삶의 길을 걸어 질곡()()’은 발고랑, ‘()’은 손고랑, 모두 죄인의 형구에 빠져 죽는 사람은 죽더라도 더럽게 죽는 것이니 정명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死者, 非正命也.”

 

여기 쓰인 것은 ()’이라는 한 글자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 ()’에 대하여 정당치 못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서양말의 ‘Destiny‘에 해당되는 운명으로서 해석하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뉘앙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의 데스티니는 필연을 전제로 한 것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방인의 이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으로서 동사적인 것이며, 하늘이 끊임없이 인간의 성()에 품부(稟賦)하는 상호교섭을 의미한다. 길흉화복이 명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필연으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길흉화복이 명이라는 것은 이미 그 속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초순은 조기와 주희 주를 다 비판하고 첫 구절을 비명(非命)에 죽지 말라로 해석하고 비명(非命)을 정명(正名)과 대비시켰는데, 매우 생각이 모자라는 졸렬한 주석이다.

 

전체적인 논조가 결정론(determinism)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히 드러난다. ()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일방적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불운한 죽음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명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인간의 진정한 구원(Salvation)이다.

 

기독교의 폐해는 인간의 운명론적 사유를 우주론적으로 뻥튀기 하여 종말론(eschatology)을 날조하여 인간의 개별적 자유의지나 실존적 선택의 순수성을 오염시키고 말살시켰다는 데에 있다. 기독교가 종말론을 고집하는 한 기독교라는 종교 그 자체가 인류사의 죄악으로 남을 길밖에는 없다. 불트만은 종말론을 실존주의적 사유 속에서 재해석하지만 다 부질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우리가 서구적 종교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다. 오직 그 폐해를 어떻게 줄이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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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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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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