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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고자장구 하 - 16. 거절로 전하는 가르침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고자장구 하 - 16. 거절로 전하는 가르침

건방진방랑자 2022. 12. 3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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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거절로 전하는 가르침

 

 

6b-1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교육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가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명료하게 거절하는 것도 또한 그를 반성케 하는 교육의 한 방법이다.”
6b-16. 孟子曰: “敎亦多術矣, 不屑之敎誨也者, 是亦敎誨之而已矣.”

 

논어(論語)(17-20)에 보면 공자가 유비(孺悲)라는 인물을 매우 철저하게 거절하는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장의 맹자의 말과 오버랩시켜 읽으면 그 장면의 의미가 매우 명료해진다. 그리고 7a-43에도 한 예가 나온다.

 

이상으로 고자편 주해를 마친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고자역주는 무서운 고난의 역정이었다는 것을 고백치 아니 할 수 없다. 넘어도 넘어도 또 산, 내가 어렸을 때 불국사에서 새벽 토함산 일출을 보기 위하여 부모님 손을 잡고 산을 넘고 또 넘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석굴암까지 너무도 많은 버거운 고갯길이 나에게 끊임없이 밀어닥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때 불과 일곱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 뒤로 내가 가장 극심하게 겪은 고난의 장정(長征)이 이 고자라는 암흑 길의 통과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한다. 연안 장정을 겪은 병사가 내 말을 들으면 웃기는 이야기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서금(瑞金)으로부터 오기(吳旗)에 이르는 25천 리의 험난한 길보다 더 험준한 길이었다고 독백하고 싶다. 우선 아침마다 청소하던 걸레자루를 비틀다가 내 손목에 무리가 와서 라미펜으로 원고지를 긁어대는 나의 손이 무척 수고스러웠다. 게다가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짧은 시간에 탈고하려는 중압감이 겹쳐 온전 신의 관절이 굳어왔다. 왼쪽 어깨관절, 오른쪽 무릎관절, 왼쪽 복사뼈 관절, 오른쪽 엉치관절이 심하게 굳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눈은 하루하루 침침해져만 갔다.

 

이러한 신체적 고통을 가져온 것은 고자편이 내 인생 40여 년의 무지 속에 차지하고 있었던 비중 때문이었다. 그 몽롱한 안개를 걷어내는 것은 실로 무진의 거리의 안개를 다 걷어내는 것보다 더 무지막지한 모험이었다.

 

피상적으로 나의 저술을 일견(一見)하는 자들, 그리고 자신의 성견을 괄호 속에 넣을 자신이나 용기가 없는 자들은 물론 나의 작업을 평범한 주석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감언컨대, 나의 고자주해는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느 인간도 감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벤쳐의 역정이었다. 현재의 주석가는 물론 조선왕조의 그 어느 누구도 맹자를 나만큼 이해하지 못했다.

 

일례를 들면, 성론(性論)에 관한 형이상학적 담론은 견해의 차이라고 쳐도, 오늘의 양신(良臣)이야말로 민적(民賊)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의 선비들이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걸주(桀紂)를 일부(一夫)라 말하는 이야기를 왕 앞에서 할 수 있어도 양신이 민적이라는 얘기는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해야만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대부의 양심에 걸리는 이런 이야기는 자연히 말살되고 만다. 자신을 민적이라 고백하는 동시에 자기가 모시고 있는 왕을 걸()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서일표(二書一表)를 쓴 다산도 민적(民賊)의 대목에서는 그냥 슬쩍 지나쳐버리고 만다.

 

맹자는 선택되어 읽혔다. 어느 누구도 그 전부를 읽지 않았다. 어려 서부터 암송을 한 자일수록 맹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맹자를 삼천독 했다는 이완용맹자를 알지 못했다. 그냥 편의대로 읽었을 뿐이다. 나는 맹자라는 텍스트 그 전체를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 문자만이 아니라, 그 문자에 얽힌 모든 사람들의 삶을 다 읽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매우 무모한 짓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땀 한땀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래서 한 치를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너무도 힘겨웠다. 그러나 나의 무지를 깨는 이 역정이 이 땅의 후학들에게 새로운 맹자, 새로운 유교, 새로운 종교, 새로운 철학, 새로운 윤리적 삶을 가져다주리라는 희망 때문에 신체적 고통을 타협 없이 감내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진심편이다. 진심은 보통 맹자의 논어(論語)라고 일컬어진다. 짧은 로기온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성격이 이루편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루편에 비해 진심편은 더 형이상학적이고 더 심오하며 더 개체 내부의 정신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심편은 은퇴 후의 달관한 맹자의 어록모음이라고 말한다. 나도 진심편을 맹자의 은퇴 후의 달관된 심경 토로된 어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된 성격을 말하는 것이며 그 전체의 세부적 성격이 그 말로 다 도배질 될 수는 없다.

 

진심편은 전체적으로 이루편과 달리 매우 체계적으로 편집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진심편 그 자체가 하나의 축약된 맹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맹자의 인생 전체의 그림이 짧은 로기온 모음 양식으로 진심편에 투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견해일 것이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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