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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첨 - 수선전(守禪傳) 본문

한문놀이터/인물

이첨 - 수선전(守禪傳)

건방진방랑자 2019. 5. 1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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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서 유교로 귀의한 수선

수선전(守禪傳)

 

이첨(李詹)

 

 

釋有守禪其名者, 玄風縣, 代居其邑, 至父堅, 族徙于海平生焉.

始年十二三時, 從弘福寺僧學文, 魯鈍, 師講訓則應誦而已, 師止, 嘿不下口. 佗日使誦其所學, 但記一兩句, 皆忘之, 所記者亦不甚分朗. 怒曰: “汝上二兄, 俱已無能起我家者, 吾惟汝之望, 汝如是耶?” 遂杖之, 仍居其僧剃之, 行弟子禮.

年二十, 學佛書如前書, 於是冠服旣具. 起浮雲遐想, 涉洛水, 出太伯山下, 登楓岳以望回浸, 繇關東, 踰嶺, 歷訪東方名山. 所覽愈奇而識益闇, 凡寓寺院也, 例以不勤職見詆. 頎然至四佛山大乘寺, 與十三僧結夏, 面壁三月. 而觀所謂: ‘我性者, 謂之作用是性乎.’ 氣也非性也. ‘含靈皆有乎.’ 我與物有不同也. 求之而未之得, 得之而未之見而卒無功也. 又恐所與處者心或妄動而性有所未瑩也.

欲屛靜處而觀焉, 與同志惠明, 寓於雞林南山內養庵, 每明出乞米, 或獨處. 夜則猛虎䦨門而吼, 其聲訇然, 憾頓四壁. 能不畏怖, 堅坐自若, 其隣僧悉證, 是非學力有以制其中, 知其無可奈何而矯肆耳. 累歷囏危, 枯槁生澁, 漸不喜爲僧, 因知世所謂見性成佛者盡爲誕妄.

乃習放達, 樂與文士游, 其聞聖人仁義之說, 詩書之敎, 怡然若有所見, 充然若有所得. 雖其舊習未盡除去, 其志可尙已. 代之游民, 學文未達, 則假浮屠形以自高, 其學浮屠未卒, 則托文章流於自放, 同條於者衆矣. 焉得擧數而悉誅之? 從僕學孟軻氏之書, 不孝有三, 無後爲大, 三復嘆息曰: “此語誠然矣, 余爲天下之罪人也.” ! 其有得於聖賢之言者深矣, 悟前日之非者審矣, 此吾立傳意也. 夫子: “有敎無類.” 孟子: “歸斯受之而已.” 孔孟豈欺我哉? 雙梅堂先生篋藏文集卷之二十三

 

 

 

 

해석

釋有守禪其名者, 玄風縣, 代居其邑, 至父堅, 族徙于海平生焉.

스님으로 수선(守禪)이란 이름을 지닌 이는 현풍현(玄風縣)현풍현(玄風縣): 대구 달성군 지방의 고려 때 행정구역 사람으로 대대로 그 읍에 살며 아버지 견()에 이르러 일가가 해평(海平)해평(海平): 경상북도 구미지역의 옛 지명에 이사했고 선이 태어났다.

 

始年十二三時, 從弘福寺僧學文, 魯鈍, 師講訓則應誦而已, 師止, 嘿不下口.

수선(守禪)이 막 12~3이 되었을 때 홍복사(弘福寺)의 스님을 따라 문장을 배웠는데 성품이 노둔하여 스승이 뜻을 강의하면 응하여 욀 뿐이었고 스승이 멈추면 침묵한 채 입을 떼지 않았다.

 

佗日使誦其所學, 但記一兩句, 皆忘之, 所記者亦不甚分朗.

다른 날에 견()이 배웠던 것을 외게 하니 다만 한두 구절만 기억했고 다른 건 모두 잊어버렸고 기억한 것도 또한 매우 분명하고 또랑또랑하지 않았다.

 

怒曰: “汝上二兄, 俱已無能起我家者, 吾惟汝之望, 汝如是耶?” 遂杖之, 仍居其僧剃之, 行弟子禮.

견이 너의 윗 2명의 형은 다만 이미 우리 집을 일으킬 수 없는 이들로 나는 너를 희망이라 생각했는데 니가 이럴 줄이야.”라고 화내며 마침내 그를 매질하니 곧이어 스님에게 거처하며 머리를 자르고 제자의 예를 행하였다.

 

年二十, 學佛書如前書, 於是冠服旣具.

수선의 나이 스물에 수선은 유교책처럼 불교책을 배워 이에 갓과 옷을 이미 구비했다.

 

起浮雲遐想, 涉洛水, 出太伯山下, 登楓岳以望回浸, 繇關東, 踰嶺, 歷訪東方名山.

뜬 구름 같은 아득한 상상이 일어나 낙동강을 건너고 태백산 아래를 나가 풍악산에 올라 회오리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관동을 거쳐서 대관령을 넘고 우리나라의 명산을 일일이 방문했다.

 

所覽愈奇而識益闇, 凡寓寺院也, 例以不勤職見詆.

본 것들은 더욱 기이했지만 식견은 더욱 어두워져 대체로 사원(寺院)에서 머무를 적엔 대개 직분에 근면치 못함으로 꾸짖음을 당했다.

 

頎然至四佛山大乘寺, 與十三僧結夏, 面壁三月.

당당하게 사불산 대승사에 이르러 13명의 스님과 하안거(夏安居)하며 벽만 보며 3개월을 보냈다.

 

而觀所謂: ‘我性者, 謂之作用是性乎.’ 氣也非性也.

그러나 비파샤나(Vipaśyanā)에서 나의 본성은 작용하는 것, 이것이 본성이다.’라고 하는데 그건 기()이지 본성이 아니다.

 

含靈皆有乎.’ 我與物有不同也.

영을 머금은 이는 모두 있다라고 하는데 나와 사물은 같지 않음이 있다.

 

求之而未之得, 得之而未之見而卒無功也.

구하여도 얻지 못하기도 하고 얻어도 보지 못하기도 하니 마침내 공효(功效)가 없었다.

 

又恐所與處者心或妄動而性有所未瑩也.

또한 아마도 함께 거처하던 이들도 마음은 망령되이 움직이기도 하고 본성은 밝지 않기도 했다.

 

欲屛靜處而觀焉, 與同志惠明, 寓於雞林南山內養庵, 每明出乞米, 或獨處.

물리치려 고요하게 앉아 비파샤나(Vipaśyanā)함에 동지인 혜명(惠明)이란 이와 계림의 남산 내양암(內養庵)에서 우거하는데 매일 날이 새고 쌀을 빌러가면 수선은 홀로 거처해야했다.

 

夜則猛虎䦨門而吼, 其聲訇然, 憾頓四壁.

밤이면 사나운 범이 가로막혀 울부짖는데 그 소리가 울려대니 사방의 벽을 흔들어댔다.

 

能不畏怖, 堅坐自若, 其隣僧悉證, 是非學力有以制其中, 知其無可奈何而矯肆耳.

수선은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고 늘 그러하듯 굳세게 앉아 있었으니 이웃 스님이 모두 증명한 것으로 이것은 배움의 힘이 중심을 제어한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어 방자한 것을 억제했다고 알 뿐이다.

 

累歷囏危, 枯槁生澁, 漸不喜爲僧, 因知世所謂見性成佛者盡爲誕妄.

수선은 여러 번 어려움과 위험을 거치며 마르고 삶이 버거워져 점점 스님됨이 기쁘지 않았고 더불어 세상에서 말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게 모두 궤탄(詭誕)하고 허망함을 알게 됐다.

 

乃習放達, 樂與文士游, 其聞聖人仁義之說, 詩書之敎, 怡然若有所見, 充然若有所得.

곧이어 방탈함을 익혀 즐거이 문사들과 유람하며 성인의 인의(仁義)의 말과 시경과 서경의 가르침을 듣고 즐겁기가 본 것 같았고 채워지기가 터득한 것 같았다.

 

雖其舊習未盡除去, 其志可尙已.

비록 예전의 습속이 모두 제거된 건 아니지만 그 뜻만은 숭상할 만하다.

 

代之游民, 學文未達, 則假浮屠形以自高, 其學浮屠未卒, 則托文章流於自放, 同條於者衆矣. 焉得擧數而悉誅之?

대대로 노는 백성들이 문장을 배우다가 통달하지 못하면 불자의 모습을 빌려 스스로 고상한 체하고 불교를 배우다 마치지 못하면 문장을 의탁하여 스스로 방탕한 데로 흐르니 수선에 같은 경우인 이가 많으니 어찌 숫자를 열거하여 모두 꾸짖을 수 있겠는가?

 

從僕學孟軻氏之書, 不孝有三, 無後爲大, 三復嘆息曰: “此語誠然矣, 余爲天下之罪人也.”

수선이 나를 따라 맹자의 책을 배우다 불효엔 세 가지가 있지만 후손이 없는 게 가장 크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이 말이 진실하니 나는 천하의 죄인이 되었구나.”라고 말하며 세 번 탄식했다.

 

! 其有得於聖賢之言者深矣, 悟前日之非者審矣, 此吾立傳意也.

! 성현의 말을 터득함이 심오하며 전날의 잘못을 깨달음이 분명하니 이것이 내가 입전한 뜻이다.

 

夫子: “有敎無類.” 孟子: “歸斯受之而已.” 孔孟豈欺我哉? 雙梅堂先生篋藏文集卷之二十三

부자께선 가르침에 부류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고 맹자께선 돌아오면 이에 그를 수용할 뿐이다.’라고 했으니 공자와 맹자께서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인용

작가 / 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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