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원유(遠遊)를 통한 호방한 시
1. 정몽주(鄭夢周)의 「정주중구 한상명부(定州重九 韓相命賦)」
定州重九登高處 | 정주의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오르니, |
依舊黃花照眼明 | 노란 국화는 예스러워 눈을 밝게 비추네. |
浦敍南連宣德鎭 | 개펄은 남쪽으로 선덕진에 이어져 있고 |
峯巒北倚女眞城 | 봉우리는 북쪽으로 여진성에 기대었구나. |
百年戰國興亡事 | 백년 전쟁의 흥망사 속에 |
萬里征夫慷慨情 | 만 리로 원정을 떠난 사내의 강개스런 정. |
酒罷元戎扶上馬 | 술자리 끝나 장군의 부축으로 말에 오르니, |
淺山斜日照紅旌 | 산은 낮아 비낀 해는 붉은 정기를 비치네. |
1) 타고난 높은 기상에 변방으로의 원유(遠遊)가 더해져 시를 더욱 호방하게 함.
2) 정포(鄭誧)의 「계미중구(癸未重九)」과 완전히 대조적인 기상을 보이며 정몽주에겐 변방에서도 국화가 보인다고 함.
定州重九登高處 | 정몽주(鄭夢周), 「정주중구 한상명부(定州重九 韓相命賦)」 |
依舊黃花照眼明 | |
地僻秋將盡 山寒菊未花 | 정포(鄭誧), 「계미중구(癸未重九)」 |
3) 예전부터 싸움이 계속된 곳으로 원정 나온 사람의 정이 강개로울 수밖에 없음.
4) 2연의 시각적 심상을 표현할 때는 서술어를 억제하여 ‘연(連)’과 ‘의(倚)’만 씀. 일반적으론 감정 표현에선 서술어를 많이 넣어 유장한 맛을 주지만 이 시에선 그러지 않았음.
5) 3연엔 서사적인 장면을 복합적으로 연출하여 짧은 구절에 많은 내용을 담음.
6) 4연에선 호기롭게 술기운도 돌고 말에도 오르니, 북방의 산도 나지막해지고 해도 발 아래에 있다는 오만함을 보임. 오만함과 호방함은 매 한가지임.
7) 오상렴(吳尙濂)의 「등죽령(登竹嶺)」에서 ‘달리는 물길이 골짜기를 물어뜯어 바람과 우레가 다투는 듯, 끊어진 협곡에는 허공에 해와 달이 낮다[奔流囓壑風霆鬪 絶硤半空日月低]’라고 하여 죽령이 높아 해와 달이 밑에 있도록 그려 호방한 맛을 살렸다.
2. 인명과 지명의 사용으로 호방해지다: 성당(盛唐)의 시를 배우려는 방법으로 모색.
1) 고려중기~조선초기까지 이지(理智)적인 송시가 주류를 이룸.
2) 16세기 후반에 당시(唐詩)로 이행되었으나 만당(晩唐)의 시체로 호방함이 적다는 한계가 있음.
3) 성당(盛唐)의 호방한 시를 배우자는 명나라 복고파의 논리가 수용되었고 성당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인명과 지명을 적극 사용함. (아래 「등마천령(登磨千嶺)」 4구의 ‘개내북해운(蓋乃北海云)’는 「흉노전(匈奴傳)」에 ‘엄찰(奄蔡)이라는 땅이 끝없는 대택(大澤)에 임해 있는데 곧 북해(北海)라고 한다’라는 것을 그대로 가져와 시의 기세를 높임)
4) 위의 정몽주 시에 고유명사를 사용했고 ‘백년’과 ‘천리’와 같은 스케일 큰 시어, 술어를 억제한 명사구 형태의 활용으로 호방함을 극대화함.
千仞岡頭石徑橫 | 천 길 산등성 돌계단 비껴 있고 |
登臨使我不勝情 | 높은 곳에 이르니 나에게 정을 이기지 못하게 하누나. |
靑山隱約扶餘國 | 푸른 산에 부여국이 어슴푸레, |
黃葉繽粉百濟城 | 노란 잎사귀가 백제성에 어지러이. |
九月高風愁客子 | 9월의 싸늘한 바람은 나그네 시름겹게 하고, |
百年豪氣誤書生 | 백년 호기는 서생을 그르쳤지. |
天涯日沒浮雲合 | 하늘가에 해가 지고 뜬 구름이 모여드니, |
惆帳無由望玉京 | 슬프구나. 한양 바라보질 못하게 하니, |
1) 2연과 3연이 「정주(定州)」와 미감이 유사함.
2) 고유명사를 쓰고 9월과 백 년이라는 숫자로 대구를 하면서 흥망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나그네의 강개한 정을 말하고 있음.
3) 이에 따라 호방한 기상이 드러남.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