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2. 자연을 망치지 말고 화육(化育)에 참여하라
‘능진물지성 즉가이찬천지지화육(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란 것은 뭐냐? 전에는 감(感)으로만 근사하게 잡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은 에콜로지(ecology)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 존재한다는 방식은 문명의 방식입니다. 야생 곡식만 가지고는 우리가 살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논을 만들고 쌀을 길러야 하죠. 쌀을 기르는 것은, ‘능진물지성(能盡物之性)’할 때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양사상은 문명의 형태가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서구문명은 실수한 거예요. 서구문명은 이런 동양문명의 기본자세를 우습게 알았거든요.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씨를 뿌린다든가 관개(灌漑)라든가 불을 피워서 취사를 하는 것 등이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돕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금(現今), 인류역사상 가장 큰 위기로 등장한 에콜로지의 문제는, 천지(天地)와 천하(天下)의 조화가 어긋나버렸다는 데에 문제의 근원이 있습니다.
『대화』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라는 것은, 어차피 문명에 사는 인간이지만 그 문명을 천지자연의 순환체계 안에서 운영하라는 생각이 동양사상에는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천지자연이라는 체계, 스스로 그러한 천지의 체계를 하나의 원금, 캐피탈(Capital, 자본)로 계산한다면 이 원금은 순환하는 체계예요. 천지자연 자체는 순환하며, 순환하니까 순환과정에서 소출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란,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원금에 대해서 이자가 생기는, 이 이자 속에서만 문명을 운영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자를 먹고 살던 놈들이 20세기 현대문명에 이르러서 드디어 원금을 깎아 먹기 시작했죠? 원금을 깎아 먹으면 이자 소출이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몽땅 뒈지는 거예요. 모든 게 끝나버립니다. 원금에 대한 이자의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삼의(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여기 ‘삼(參)’이라는 글자는 동참한다는 ‘참’도 될 수 있고 주자 주(註)에서처럼 석 ‘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면 구조가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은 『주역(周易)』의 「계사(繫辭)」사상과 동시대의 패러다임입니다. ‘천(天)’과 ‘지(地)’와 ‘인(人)’이 합해서 삼(동시에 참)이 된다는 거예요. 천(天)·지(地)·인(人)이 하나의 트라이아드(triad, 삼발이)로서 고정된 안정적 구조를 형성하는 그러한 문명의 구조를 벗어나지 말자는 것입니다. 재생들 중에서 지난번에 내 집에 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집도 중용(中庸)의 사상을 가지고 설계를 한 거예요. 중간 층 ‘인(人)의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자고, 아래 층 ‘지(地)의 공간’에서는 먹고, 맨 윗 층 ‘천(天)의 공간’에서는 내가 집필하고 또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고, 이런 천(天)·지(地)·인(人)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내 집, 이게 문명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천(天)·지(地)·인(人)의 구조 속에서 동양문명을 생각해야 해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점입니다.
‘유천하지성 ··· 가이여천지삼의(惟天下至誠 ··· 可以與天地參矣)’
이 글은, 대학교 다닐 때 맨 처음 읽으면서 명쾌하게 다가선 것은 아니었지만, 나로선 감흥이 참으로 컸었습니다. 왠지 그렇게 큰 감흥이 일렁였어요!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영원히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숙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데, 참 큰 일이예요. 무슨 개지랄을 해도 문명을 운영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문명은 에너지이다! 전기, 난방, 수도 등등이 이게 모두 문명이고 에너지 아닙니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문명의 형성과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동력원은 궁극적으로 태양 에너지의 변형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무슨 육갑을 떤다고 해도 천지의 구조, 중용(中庸)은 깨지지 않아요. 우리가 연료 또는 여러 가지 재료로 쓰고 있는 나무, 석탄, 석유 등도 태양에너지가 동화작용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또는 그 변형이잖아요? 나무는 곧 태양인 거죠. 다 태양이 변한 것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모든 생명은 존재가능하지 않다! 모든 생명은 태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천(天)·지(地)·인(人)이라는 구조는 절대로 변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단 하나인 지구! 이 위에 우리는 살고 있고, 단 하나뿐인 태양! 이것이 모든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 인간은 함부로 까불고 있어요. 지구를 다 써먹고 다 해쳐먹고 난 다음에는 인공위성을 만들어가지고 지구를 탈출해서 어디 다른 행성에 가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놈들, 이런 놈들은 참 웃기는 자식들입니다. 제아무리 갤럭시(Galaxy)가 존재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에게 말짱 헛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그곳으로 가냐, 이 빌어먹을 놈들아! 그건 넌센스다! 도대체 수십억만년 위대한 진화의 결정체인 이 아름다운 천지를 두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이 망할 자식들아!
인간은 어디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이 지구만큼, 이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구조만큼 아름다운 자연은 그 어디에도 다시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전자오락 게임 속의 현란함처럼 마구 이 세상이 굴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X세대라면 이것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착각도 너무 심한 황당한 착각이예요. 이런 현상은 순전히 자본주의, 상업주의 전자산업에 꼴린 놈들, 황당한 환상을 심어 줌으로써 자기들 장사를 해쳐먹으려는 나쁜 놈들이 장난질을 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 나쁜 놈들의 장난질이 세상을 망쳐먹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천(天)·지(地)·인(人)의 구조를 떠나선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구조를 떠나서는 자멸의 길밖에는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삼의(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라는 이 메시지는 그야말로 영원할 수밖에 없는 진리인 겁니다. 이걸 모르고 함부로 까불고들 있는데, 이런 인류의 방종은 내 몸을 망쳐버리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있는 만대(萬代)의 가능성을 흉칙스럽게 변질시키거나 깡그리 지워버리게 되는, 실로 섬뜩하고 가공할 현상(내 몸의 오염에 의한 DNA 변형이나 또는 직접적으로 겪는 죽음)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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