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리석은 질문이라도 양단의 논리로 세밀히 설명해주다
9-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세인들이 나보고 박식하다고들 하는데, 과연 내가 뭘 좀 아는가?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비천한 아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 단(端)의 논리를 다 꺼내어 그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 자세히 말해 준다. 이래서 내가 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9-7.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
이에 대한 구구한 주석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나의 번역을 자세히 살펴보라. 내가 살면서 공자에게 배우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장에서 나 역시 배우는 학인으로서 가장 크게 배운다. 내가 사람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하는 것이, 모두 이 장에서 공자에게 배운 방법론과 그 성실한 삶의 자세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골빈 듯한[空空如] 질문이라도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답해 주되, 그 ‘양단을 두드린다.’ ‘고기양단(叩其兩端)’이란 과연 무슨 뜻인가? 여기서 바로 자사(子思)의 중용사상이 나온 것이다. 양단이란 한 사태에 대하여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의 양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양단은 직선의 양단일 뿐 아니라, 원의 중심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자로 하여금 모든 주변상황을 동시에 고려케 만드는 것이다.
中庸 | ||
兩 Thesis |
端 Antithes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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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namic Equilibrium | ||
‘갈(竭)’이란 있는 성의를 다한다는 도덕적 자세를 의미함과 동시에 모든 가능한 논리를 다 제시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러한 진지한 삶에 대한 자세 때문에 박식한 사람처럼 비쳐졌을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어떠한 고정적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겸사를 발한다. 공자에게 지식이란 사람들의 질문을 해결해 나가면서 배우는 동적인 과정(Dynamic Process)이었을 뿐이다.
‘叩’는 구(口)라고 발음한다. ○ 이 장의 말씀은 공자의 겸언(謙言)이다. 당신에게 지식이 없다고 잘라 말씀하신 것이다. 단지 지식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에는 비록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성의를 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고(叩)’는 깨달음을 발동시켜 주는 것이다. ‘양단(兩端)’은 ‘양두(兩頭)’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끝과 시작, 근본과 말엽,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대강의 아웃라인과 세부적 자세함, 이러한 양면을 모두 동시에 다 궁구(窮究)하는 것이다.
叩, 音口. ○ 孔子謙言己無知識, 但其告人, 雖於至愚, 不敢不盡耳. 叩, 發動也. 兩端, 猶言兩頭. 言終始, 本末, 上下, 精粗, 無所不盡.
○ 정이천이 말하였다: “성인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심에 사람들에게 당신을 낮추고 그들과 더불어서 섞이는 자세가 이와 같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뭇 사람들 이 당신을 높고 멀다고 생각하고 친근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것이다. 성인의 도는 반드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하지 아니 하면 사람들이 소원하게 느끼고 마는 것이다. 성인이 아닌 현명한 자[賢人]들의 말은 항상 자기를 끌어올려서 스스로를 높이니, 자기라도 스스로 높이지 않으면 도(道)가 존엄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를 비교해보면 이러한 차이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程子曰: “聖人之敎人, 俯就之若此, 猶恐衆人以爲高遠而不親也. 聖人之道, 必降而自卑, 不如此則人不親; 賢人之言, 則引而自高, 不如此則道不尊. 觀於孔子ㆍ孟子, 則可見矣.”
정이천이 공자와 맹자를 비교하여 말한 것은 매우 솔직한 담론이다.
윤언명이 말하였다: “성인의 말씀은 항상 형이상학적 세계와 형이하학적 세계를 동시에 다 말하고 있다. 그 비근한 측면에 접근하면 보통사람들도 다 같이 더 불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오묘하고 지극한 측면에 이르게 되면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에 더할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단을 다 두드린다’하는 경지인 것이다. 번지가 인(仁)과 (智)를 묻는 것(6-20, 12~22)에 대답하시는 공자의 말씀을 살펴보라! 그 양단을 다 갈진(竭盡)시켜 남은 찌꺼기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만약 형이상만 말하고 형이하를 빠뜨리며, 리(理)만 말하고 구체적 물(物)을 흘려 내버리면, 어찌 그것을 성인의 말씀이라 할 수 있으랴!”
尹氏曰: “聖人之言, 上下兼盡. 卽其近, 衆人皆可與知; 極其至, 則雖聖人亦無以加焉, 是之謂兩端. 如答樊遲之問仁知, 兩端竭盡, 無餘蘊矣. 若夫語上而遺下, 語理而遺物, 則豈聖人之言哉?”
윤씨의 해석도 좋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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