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리 한시의 특질
① 조선의 풍물과 풍속을 담은 조선시
1. 한국 한시는 중국 한시를 닮으려 했다.
1) 중국 한시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누추하다 비난을 퍼부음.
2) 어떤 이들은 시가 뛰어나다는 뜻으로 ‘압록강 동쪽의 구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음.
2.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다
1) 조선 후기에 우리 시에 대한 인식이 생김.
2) 박지원(朴趾源)은 「영처고서(嬰處稿序)」에서 조선풍으로 불러야 될 것이라 함.
3. 정약용(丁若鏞)의 「노인일쾌사육수효향산체 기오(老人一快事六首效香山體 其五)」
老人一快事 縱筆寫狂詞 |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은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쓰는 것이다. |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 험운(險韻)하는 것에 굳이 구애될 게 없고 퇴고로 굳이 더딜 게 없다. |
興到卽運意 意到卽寫之 | 흥이 오르면 곧 뜻을 펴며 뜻이 이르면 곧 써재끼네. |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 나는 조선 사람으로, 달게 조선의 시를 짓겠노라. |
卿當用卿法 迂哉議者誰 |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의 법을 쓰라. 우원하구나, 말하는 이들은 누군가? |
區區格與律 遠人何得知 | 구구한 격조와 운율을 먼 지방의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
1) 한시의 압운이나 평측과 같은 형식적인 요건은 중국에서 먼 조선에서는 알기 어려우므로 굳이 따질 게 없고 흥과 뜻이 이르면 그대로 써 나가면 된다고 봄.
4. 우리의 산천과 풍물을 쓰면 조선시다
1) 이덕무(李德懋)와 정약용(丁若鏞)의 시를 조선풍이나 조선시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읽어보면 조선풍이나 조선시를 딱 잡아 말하기 어려움.
2) 근체시의 까다로운 형식에 메이지 말고 조선의 산천과 풍물을 자연스럽게 써 나가면 그것이 바로 조선풍이자 조선시임.
② 조선적 당풍
1. 당풍과 송풍의 차이
당풍 | 송풍 |
가슴으로 정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 | 머리로 뜻을 따지게 하는 스타일 |
그림을 지향하고 소리의 울림을 중시함 | 인위적인 것이 중심에 있음 |
감정이 자연스럽게 유로하는 것을 중시 | 생각이나 감정을 구도에 의해 안배하고 한 글자라도 안배에 힘씀 |
신라 말~ 고려 초 | 조선전기~ | ~조선 중기 |
만당풍(晩唐風) | 송풍(宋風) | |
강서시파(江西詩派) | ||
당풍(唐風) |
2. 조선후기 사단의 색다른 풍조
1) 중국의 한시는 당대와 송대를 거치며 시가 나아갈 두 전형을 확립했고 그 후엔 자신의 시대에 맞게 변화를 주었을 뿐이다.
2) 조선에선 당풍과 송풍을 조선의 풍토에 체화하는 방향으로 나감.
3) 조선 중기의 주도적인 스타일이던 당풍의 경우 창작방법과 미학에서는 당시의 전범을 따랐지만 소재나 정감 자체는 조선인의 것으로 채워 중국 당시와 다른 길을 찾음. 이게 바로 조선적 당풍이다.
3. 조선적 당풍의 작품들.
1) 이미의 「촌가잡영(村家雜詠)」
事到黃昏始方閒 | 일이 저물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가해지니, |
男前婦後荷鋤還 | 남편은 앞서고 아내는 뒤에서 호미 매고 돌아오네. |
白尨蒼犬齊搖尾 | 백구는 누렁이와 함께 꼬리를 흔들며 |
迎在疎籬暝色間 | 해진 울타리 응달쪽에서 맞이하네. |
靑裙女出木花田 | 청색 치마의 아낙 목화밭에서 나오다가 |
田客回身立路邊 | 밭 손님과 마주쳐 몸을 돌려 길 가에 서 있네. |
白犬遠隨黃犬去 | 백구는 멀리 누렁이 따라 갔다가 |
雙還更走主人前 | 두 마리 함께 다시 주인 앞으로 달려 오누나. |
-18세기 조선의 농촌으로 묘사했는데 풍광이 지극히 조선적이며 당풍의 시에서 그려 볼 수 있던 산수화 대신 순박한 사람이 중심에 있는 풍속화가 자리하긴 함.
4. 당풍과 송풍의 결합한 작품
荳殼堆邊細逕分 | 콩 껍질 쌓인 곁에 샛길 나눠지고 |
紅暾稍遍散牛群 | 노을 점점 퍼지니 소떼 흩어진다. |
娟靑欲染秋來岫 | 곱고도 푸른 가을이 소매로 들어와 물들이려하고, |
秀潔堪餐霽後雲 | 빼어나고도 깨끗한 비 갠 뒤 구름 먹을 만하네. |
葦影幡幡奴鴈駭 | 갈대 그림자 일렁이니 기러기들 놀라고 |
禾聲瑟瑟婢魚紛 | 벼 소리 쏴아악 일어나니 붕어 소란 떤다. |
山南欲遂誅茅計 | 산 남쪽에 마침내 초가집 지을 계책이 섰으니 |
願向田翁許半分 | 농부에게 반절만 나눠줄 수 있냐고 해봐야지. |
-회화적 심상이 매우 강한 감각적인 시를 제작했던 시인으로 위의 시가 이 특질을 잘 보여줌.
-당시의 특징인 색채 대비와 소리가 있음. 붉은 햇살, 푸른 풀밭, 파란 하늘, 붉은 단풍 등 선명한 색채의 나열과 흔들리는 갈대와 벼에서 나는 작은 소리로 음향효과가 살아 있음.
-송시의 특징인 ‘붕어’의 대로 ‘기러기’를 써서 정교한 꾸밈이 엿보임. 그리고 2연의 정밀한 풍경 묘사 역시 송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임.
-당풍의 향(響)과 송풍의 리(理)를 겸하여 조선의 풍광을 담아낸 조선풍이라 할 수 있음.
③ 조선적 당풍과 조선적 송풍
1. 조선적 당풍의 한계
1) 16세기 후반부터 거의 대부분의 시인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당시(唐詩)와 비슷해 보이려는 것이었음.
2) 송풍(宋風)의 난삽함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는 있지만 우리 한시만의 특질을 보여주는 데는 이르지 못함.
2. 조선적 송풍(宋風)의 차이점
1) 소재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선의 풍물과 세태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것은 송풍으로 제작된 한시였다.
2) 고려말 이색(李穡)은 고려의 언어와 풍속을 수용하여 중국인들이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시를 제작한 적이 있다.
3) 노수신(盧守愼) 역시 조선의 지명과 관명 등을 적극 시어로 끌어들여 중국 시와 다른 면모를 보임.
4) 조선적인 소재나 시어를 사용하여 특질을 구현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중국 한시보다 무엇이 나은 지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함.
5) 한문으로 시를 지어야 하기에 출발부터 불리한 싸움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의 유로와 아름다운 소리의 울림을 지향하는 당풍보다 머리로 짜내는 기발한 표현이 우리 시인이 잘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음.
6) 우리 한시 중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저들에겐 울림이 부족하다고 폄하를 받음.
④ 우리나라에 오랜 시간 읊어진 수작들
1. 최치원(崔致遠)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狂噴(奔)疊石吼重巒 | 첩첩한 바위에 무겁게 달려 겹겹한 산이 울려 |
人語難分咫尺間 |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 분간하기 어려워. |
常恐是非聲到耳 | 항상 시비의 소리 귀에 닿을까 두려워 |
故敎流水盡籠山 | 일부러 흐르는 물로 다 산을 둘렀네. |
1)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된 작품. 조선 시대에 롱수(籠水)라는 이름이 많았던 것은 바로 이 시구의 영향임.
2) 이 기발한 발상을 두고 나쁜 평가를 한 비평가도 있었지만, 굽이 굽이 도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로 세상의 시비소리를 차단했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한국 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임.
山僧貪月色 幷汲一甁中 | 산 속 스님이 달빛 탐내어 한 병 속에 함께 길어왔네. |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 | 절에 도착하면 곧바로 깨달을 걸. 병을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진다는 걸. |
1) 당풍의 보편적인 익숙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지만, 개성적인 송시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됨. 그는 신의(新意)를 최고의 조건으로 꼽음.
2) 이 작품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 때문임.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이치를 이렇게 참신하게 노래함.
3. 박순(朴淳)의 「송퇴계선생남환(送退溪先生南還)」
鄕心不斷若連環 | 고향생각 끊이질 않길 연이은 가락지 같고, |
一騎今朝出漢關 | 한 번 말 타고 오늘 아침에 한양의 관문을 나서네. |
寒勒嶺梅春未放 | 추위는 고개의 매화를 억눌러 봄에도 피질 않았으니, |
留花應待老仙還 | 꽃을 멈추게 한 것은 응당 늙은 신선이 돌아오길 기다려서겠지. |
1) 문경새재에 봄인데도 매화가 꽃을 피우지 않은 것은 매화를 사랑한 이황을 기다린 거이라 했다. 이황(李滉)의 고결한 인품을 매화와 동일시한 것이다.
2)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연 현상을 이렇게 비틀어 해석했기 때문에 이 시는 명편이 된 것임.
4. 이광려(李匡呂)의 「영매(咏梅)」
滿戶影交修竹枝 | 문에 가득 찬 그림자가 대나무 가지에 아롱지고, |
夜分南閣月生時 | 한밤 중 남쪽 누각에 달이 솟을 때에, |
此身定與香全化 | 이 몸은 정히 향기와 혼연일체 되어 |
與逼梅花寂不知 | 매화에 다가가도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네. |
1) 역대 매화를 두고 쓴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시로, 전형적인 정신의 시다.
2) 매화와 한 몸이 되었기에 매화에 아무리 코를 대어도 향기를 맡을 수 없다. 매화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기발하게 표현함.
⑤ 참신함, 생각을 다듬어 개성을 발휘하다
1. 참신함
1) 김택영(金澤榮)이 신위(申緯)의 시집에 써준 서문에서 “18세기 가장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용휴와 이가환 부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의 시 세계를 포괄하여, 어떤 이는 기궤(奇詭)를 주로 하고 어떤 이는 첨신(尖新)을 주로 한다[或主奇詭, 或主尖新, 其一代升降之跡, 方之古則猶盛晩唐焉].”고 말함.
2) 기궤(奇詭)나 첨신(尖新)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참신한 느낌이 드는 시를 지었다는 뜻으로, 송시적인 창작 방법에 의하여 발생한 미감이라 할 수 있음.
3) 공안파(公安派)의 문학 이론을 수용한 결과로 설명될 수도 있지만, 외국어로 시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 머리로 써야 하는 입장에서 잘 지을 수 있는 방편이라 할 수 있음.
4) 복고풍의 당풍이 퇴조한 18세기가 첨신과 기궤의 시풍이 대표되는 시기임.
我兄顔髮曾誰似 | 우리 형의 모습이 일찍이 누구와 비슷한가 |
每憶先君看我兄 | 매번 아버지 생각날 땐 우리 형 보았지. |
今日思兄何處見 | 오늘 형님 생각나는데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나 |
自將巾袂映溪上 | 스스로 옷매무새 고쳐 시냇가로 가서 비춰보네. |
1) 홍국영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개성 외곽에 있는 연암골에 있을 때 지은 작품.
2) 부자와 형제가 서로 닮은 것에 착안하여 형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기발한 작품임.
3. 노긍의 「치손(穉孫)」
人皆孫子有 如我思應無 | 사람들은 모두 손자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응당 없을 듯. |
爲父亦爲母 作翁兼作姑 | 아비도 되었다 어미도 되었다가, 할배도 되었다가 아울러 할매도 되었다가. |
1) 새로운 문학의 유행을 흡수하여 집권층의 눈에는 점잖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문체를 구사하다가 과거에 오르지 못하고 생계를 위하여 홍봉한(洪鳳漢) 집안에서 숙사(塾師)를 하기도 했고 과거장에 서성대면서 대리 시험을 치러 주기도 하여 유배의 고통을 맛보기도 함.
2) 일찍 부인이 죽었고 노년에는 자식과 며느리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음.
3) 남들처럼 평범한 손자를 두지 못했다고 한 아이디어만 존재함.
4) 첨신(尖新)과 기궤(奇詭)로 대표되는 18세기 한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이 작품 역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우리 한시의 장점을 보여줌.
那將月姥訟冥司 | 어찌 장차 월하노인에게 저승에서 말을 하여 |
來世夫妻易地爲 | 다음 생에서 나와 당신의 처지를 바꿔 |
我死君生千里外 | 내가 죽고 그대 천리 밖에 살아서 |
使君知我此心悲 | 그대에게 나의 이런 슬픈 마음 알게 하려나? |
1) 제주에 1840년에 유배되었는데 2년 후에 부인이 숨을 거둠.
2) 김정희는 제주도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여러 번 불평하는 편지를 보냈고 젓갈이며 옷가지를 보내달라는 투정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3) 그후 아내가 죽었다는 부고가 왔고 날짜를 헤아려 보니 자신은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반찬 투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대성통곡했다.
4) 혼인을 관장하는 신인 월하노인을 데리고 저승에 가서 하소연하여 내세에는 처지를 바꾸게 하겠다고 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함.
鳥獸哀鳴海岳嚬 | 날짐승과 들짐승도 슬퍼하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네. |
槿花世界已沈淪 | 우리나라는 이미 침몰했구나. |
秋燈掩卷懷千古 | 가을 등불에 책을 덮고 천 년을 회고해보니, |
難作人間識字人 | 인간 세상에 지식인으로 살기가 어렵구나. |
1) 시언지(詩言志)는 우리 한시의 정신인데, 위의 시는 그 정신을 잘 보여줌.
2)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이상용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향 땅의 종가 임청각을 팔아 만주로 떠나면서 공맹은 나라를 찾은 연후에 읽어도 된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정조가 느껴짐.
3) 황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나라 안의 지식인의 책임을 묻고자 했고, 이상용은 상해로 망명하여 해외에서 우리 문화사를 정리했음.
4) ‘인간 중 지식인으로 살기가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라는 명언을 남김.
6. 소리보다 정신을 택하다
1) 김득신(金得臣)의 「증구곡시서(贈龜谷詩序)」에서 “시는 이치와 음향이 중요한데 이 둘을 구비하면 좋지만 이치가 있되 음향이 없는 것은 이치는 없고 음향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함.
2) 우리 한시는 중국 한시의 아름다운 음향을 따르지 못할 바에야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3) 소리의 울림보다 높은 정신을 선택한 것이 우리 한시의 특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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