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백리해, 자기를 팔아서 벼슬자리를 구했나?
萬章問曰: “或曰: ‘百里奚自鬻於秦養牲者, 五羊之皮, 食牛, 以要秦穆公.’ 信乎?”
食, 音嗣. 好, 去聲, 下同,
○ 百里奚, 虞之賢臣. 人言其自賣於秦養牲者之家, 得五羊之皮而爲之食牛, 因以干秦穆公也.
孟子曰: “否, 不然. 好事者爲之也. 百里奚, 虞人也. 晉人以垂棘之璧與屈産之乘, 假道於虞以伐虢. 宮之奇諫, 百里奚不諫.
屈, 求勿反. 乘, 去聲.
○ 虞虢, 皆國名. 垂棘之璧, 垂棘之地所出之璧也. 屈産之乘, 屈地所生之良馬也. 乘, 四匹也. 晉欲伐虢, 道經於虞, 故以此物借道, 其實欲幷取虞. 宮之奇, 亦虞之賢臣. 諫虞公令勿許, 虞公不用, 遂爲晉所滅. 百里奚知其不可諫, 故不諫而去之.
知虞公之不可諫而去之秦, 年已七十矣, 曾不知以食牛干秦穆公之爲汙也, 可謂智乎? 不可諫而不諫, 可謂不智乎? 知虞公之將亡而先去之, 不可謂不智也. 時擧於秦, 知穆公之可與有行也而相之, 可謂不智乎? 相秦而顯其君於天下, 可傳於後世, 不賢而能之乎? 自鬻以成其君, 鄕黨自好者不爲, 而謂賢者爲之乎?”
相, 去聲.
○ 自好, 自愛其身之人也. 孟子言百里奚之智如此, 必知食牛以干主之爲汙. 其賢又如此, 必不肯自鬻以成其君也. 然此事當孟子時, 已無所據. 孟子直以事理反覆推之, 而知其必不然耳.
○ 范氏曰: “古之聖賢未遇之時, 鄙賤之事, 不恥爲之. 如百里奚爲人養牛, 無足怪也. 惟是人君不致敬盡禮, 則不可得而見. 豈有先自汙辱以要其君哉?
莊周曰: ‘百里奚爵祿不入於心, 故飯牛而牛肥, 使穆公忘其賤而與之政.’ 亦可謂知百里奚矣. 伊尹ㆍ百里奚之事, 皆聖賢出處之大節, 故孟子不得不辯.”
尹氏曰: “當時好事者之論, 大率類此. 蓋以其不正之心度聖賢也.”
해석
萬章問曰: “或曰: ‘百里奚自鬻於秦養牲者, 五羊之皮, 食牛, 以要秦穆公.’ 信乎?”
만장이 “어떤 이가 ‘백리해가 스스로 진나라에서 희생 가축을 기르는 사람에게 5장의 양 가죽의 값으로 자신을 팔아 소를 기르며 진목공에게 벼슬을 요구했다’고 하던데, 진실입니까?”라고 여쭈니,
食, 音嗣. 好, 去聲, 下同,
○ 百里奚, 虞之賢臣.
백리해는 우나라의 어진 신하다.
人言其自賣於秦養牲者之家,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를 희생가축을 기르는 집안에 팔아
得五羊之皮而爲之食牛,
5장의 양가죽을 얻어 그를 위해 소를 기르며
因以干秦穆公也.
진목공에게 벼슬길을 구하였다’
孟子曰: “否, 不然. 好事者爲之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말 만들길 좋아하는 이들이 하는 짓이다.
百里奚, 虞人也. 晉人以垂棘之璧與屈産之乘, 假道於虞以伐虢. 宮之奇諫, 百里奚不諫.
백리해는 우(虞)나라 사람이다. 진나라 사람이 수극(垂棘)의 구슬과 굴(屈)에서 태어난 말 4필로 우나라에 주어 우나라의 길을 빌려서 괵(虢)나라를 정벌하려 했었다. 우나라의 어진 신하인 궁지기는 “그래선 아니 되옵니다”라고 간하였고, 백리해는 간하지 않았다.
屈, 求勿反. 乘, 去聲.
○ 虞虢, 皆國名.
우나라와 괵나라는 다 나라 이름이다.
垂棘之璧, 垂棘之地所出之璧也.
수극지벽(垂棘之璧)이란 수극의 땅에서 나온 구슬이다.
屈産之乘, 屈地所生之良馬也.
굴산지승(屈産之乘)이란 굴이란 땅에서 태어난 좋은 말이다.
乘, 四匹也.
승(乘)은 4필을 말한다.
晉欲伐虢, 道經於虞,
진나라가 괵나라를 정벌하려 하였는데, 그러려면 우나라의 길을 경유해야 했다.
故以此物借道,
그렇기 때문에 이 물건들로 길을 빌려야 했었는데,
其實欲幷取虞.
실제론 우나라를 취해 병합하려 했던 것이다.
宮之奇, 亦虞之賢臣.
궁지기는 우나라의 어진 신하다.
諫虞公令勿許,
우공에게 간하며 ‘허락해선 아니 되옵니다’라고 했지만,
虞公不用, 遂爲晉所滅.
우공은 듣질 않았고, 마침내 진나라에게 멸망당했다.
百里奚知其不可諫, 故不諫而去之.
백리해는 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간하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知虞公之不可諫而去之秦, 年已七十矣, 曾不知以食牛干秦穆公之爲汙也, 可謂智乎? 不可諫而不諫, 可謂不智乎? 知虞公之將亡而先去之, 不可謂不智也.
우공이 간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떠나 진나라에 갔을 때 나이가 이미 70살이었다. 일찍이 소를 기르면서 진목공에게 벼슬자리를 구하는 것이 더러운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간하지 않은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 장차 멸망할 줄 알고 먼저 떠났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時擧於秦, 知穆公之可與有行也而相之, 可謂不智乎? 相秦而顯其君於天下, 可傳於後世, 不賢而能之乎?
그때에 진나라에서 등용되어 목공과 함께 정사를 행하고 그를 도왔으니 지혜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를 도와 그 임금을 천하에 드러내 후세에 명성이 전하여지게 하였으니 어질지 않다면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相, 去聲.
自鬻以成其君, 鄕黨自好者不爲, 而謂賢者爲之乎?”
스스로를 팔아 그 임금을 성공시키는 것은 뭘 모르는 마을의 지조 있는 이들도 하지 않는 일인데, 현자라고 일컬어지는 이가 그것을 했겠는가?”
自好, 自愛其身之人也.
자호(自好)란 스스로 그 몸을 아끼는 사람을 말한다.
孟子言百里奚之智如此,
맹자가 백리해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必知食牛以干主之爲汙.
반드시 소를 먹이며 임금에게 벼슬을 구하는 짓이 더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其賢又如此,
어질다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면
必不肯自鬻以成其君也.
반드시 기꺼이 자신을 팔아 그 임금을 성공시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然此事當孟子時, 已無所據.
그러나 이 일은 맹자 때에도 이미 근거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孟子直以事理反覆推之,
그래서 맹자는 곧장 일의 이치로 반복하며 확대하여
而知其必不然耳.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했을 뿐이다.
○ 范氏曰: “古之聖賢未遇之時,
범조우(范祖禹)가 말했다. “옛 성현이 불우하던 때에
鄙賤之事, 不恥爲之.
비천한 일을 하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如百里奚爲人養牛, 無足怪也.
그러니 백리해가 남을 위해 양을 길렀다 한들 괴이할 게 없다.
惟是人君不致敬盡禮, 則不可得而見.
그러나 오직 공경을 다하고 예를 극진히 하지 않으면 임금을 만나 볼 수 없는 것이니,
豈有先自汙辱以要其君哉?
어찌 먼저 스스로를 더럽히고 욕되게 하면서 그 임금에게 요구할 수 있겠는가?
莊周曰: ‘百里奚爵祿不入於心,
장주가 말했다. ‘백리해는 벼슬과 녹봉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故飯牛而牛肥,
소를 먹였고 소가 살찌자
使穆公忘其賤而與之政.’
목공이 그가 비천하단 사실을 잊고 그와 더불어 정치를 하셨다’라고 말했으니,
亦可謂知百里奚矣.
또한 백리해를 아는 이라 할 만하다.
伊尹ㆍ百里奚之事, 皆聖賢出處之大節,
이윤과 백리해의 일은 다 성현의 출처에 있어서의 큰 절개이니,
故孟子不得不辯.”
맹자가 부득불 변론했던 것이다.”
尹氏曰: “當時好事者之論,
윤순(尹淳)이 말했다. “당시에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大率類此.
대체로 이와 같은 방식이었다.
蓋以其不正之心度聖賢也.”
대개 그 부정한 마음으로 성현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었고, 진효공에게 상앙이 있었다면, 오패 중의 한 사람인 진목공에게는 백리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백리해가 진나라를 부강하게, 그리고 질서 있게 만든 현인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자 피곤해도 수레를 타지 않았으며, 더위도 수레덮개를 씌우지 않았다. 국중에서 행차할 때도 뒤따르는 수레가 없었고, 무기를 지닌 호위병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공로와 명예는 역사의 창고에 숨겨두었고, 덕행만을 후세에 남기었다. 오고대부(五羖大夫) 백리해가 죽자 진나라의 남녀들은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며, 절구질 할 때도 음탕한 민요인 저가(杵歌)를 부르지 않았다. -『맹자, 사람의 길』, 553쪽
「진본기(秦本紀)」엔 ‘속금(贖金)’으로 표현됨 | 「맹자(孟子)」ㆍ「상군열전(商君列傳)」 등은 ‘매가(賣價)’로 표현됨 |
진헌공(晉獻公)이 우(虞)와 괵(虢)을 멸망시키고 우(虞)의 대부인 백리해를 포로로 잡아옴 → 진헌공의 딸이 진목공(秦穆公)에게 시집갈 때 딸을 시중드는 노복으로 딸려 보냄 → 그때 백리해는 도망쳤으나 초(楚) 나라 변경에서 붙잡힘 → 진목공이 백리해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뇌물로 데려오고 싶었으나 주지 않을까 걱정함 → 그래서 ‘나의 잉신(媵臣) 백리해가 귀국에 있는데 검은 숫양 가죽 다섯장으로 그의 몸값을 치르고자 한다[吾媵臣百里傒在焉, 請以五羖羊皮贖之]’란 소문을 퍼뜨렸고 초나라 사람들이 응낙하므로, 데려옴. | 상앙이 재상이 된 지 10년이 되어 원망하는 자가 많이 생겨남 → 현인 조양(趙良)이 상앙을 만나 옛 이야기를 하던 도중 백리해에 대한 이야기를 함 → ‘오고대부(五羖大夫)는 荊(楚의 다른 이름)땅 사람으로 보잘 것 없는 이다 → 그가 진목공이 현명한 군주임을 알고서 보고 싶었으나 떠날 여비도 없었다 → 그는 자신을 나그네에게 팔아 남루한 갈포를 걸치고 소를 쳤다 → 1년이 지나서 목공이 그를 알게 됐다 → 목공이 그를 최고의 자리에 등용했으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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