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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 만장 상 - 7. 이윤은 탕왕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등용되길 구했을까? 본문

고전/맹자

맹자 만장 상 - 7. 이윤은 탕왕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등용되길 구했을까?

건방진방랑자 2021. 10. 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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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윤은 탕왕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며 등용되길 구했을까?

 

 

萬章問曰: “人有言 伊尹以割烹要有諸?”

, 平聲, 下同.

, 求也. 史記伊尹欲行道以致君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以滋味說, 致於王道”. 蓋戰國時有爲此說者.

 

孟子: “, 不然. 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 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弗顧也; 繫馬千駟, 弗視也. 非其義也, 非其道也, 一介不以與人, 一介不以取諸人,

, 音洛.

, 國名. 樂堯舜之道者, 誦其詩, 讀其書, 而欣慕愛樂之也. , 四匹也. 介與草芥之芥同. 言其辭受取與, 無大無細, 一以道義而不苟也.

 

使人以幣聘之, 囂囂然曰: ‘我何以之聘幣爲哉? 我豈若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哉?’

, 五高反, 又戶驕反.

囂囂, 無欲自得之貌.

 

三使往聘之, 旣而幡然改曰: ‘與我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 吾豈若使是君爲堯舜之君哉? 吾豈若使是民爲堯舜之民哉? 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

幡然, 變動之貌. 於吾身親見之, 言於我之身親見其道之行, 不徒誦說向慕之而已也.

 

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 天民之先覺者也; 予將以斯道覺斯民也. 非予覺之, 而誰也?‘

此亦伊尹之言也. , 謂識其事之所當然. , 謂悟其理之所以然. 覺後知後覺, 如呼寐者而使之寤也. 言天使者, 天理當然, 若使之也.

程子: “予天民之先覺, 謂我乃天生此民中, 盡得民道而先覺者也. 旣爲先覺之民, 豈可不覺其未覺者. 及彼之覺, 亦非分我所有以予之也. 皆彼自有此理, 我但能覺之而已.”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 若己推而內之溝中. 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 故就而說之以伐救民.

, 吐回反. , 音納. , 音稅.

○ 『: “昔先正保衡作我先王, , ‘予弗克俾厥后爲堯舜, 其心愧恥, 若撻于市’. 一夫不獲, 則曰 時予之辜’.”

孟子之言蓋取諸此. 夏桀無道, 暴虐其民, 故欲使以救之.

氏曰: “伊尹堯舜之道. 堯舜揖遜, 伊尹以伐, 時之不同, 義則一也.”

 

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 況辱己以正天下者乎? 聖人之行不同也, 或遠或近, 或去或不去, 歸潔其身而已矣.

, 去聲.

辱己甚於枉己, 正天下難於正人. 伊尹以割烹要, 辱己甚矣, 何以正天下乎? , 謂隱遁也. , 謂仕近君也. 言聖人之行雖不必同, 然其要歸, 在潔其身而已. 伊尹豈肯以割烹要湯哉?

 

吾聞其以堯舜之道要, 末聞以割烹也.

氏曰: “堯舜之道要, 非實以是要之也, 道在此而之聘自來耳. 子貢夫子之求之, 異乎人之求之也

愚謂此語亦猶前章所論父不得而子之意.

 

伊訓: ‘天誅造攻, 自牧宮, 朕載自.’”

伊訓, 商書篇名. 孟子引以證伐救民之事也. 牧宮作鳴條. , , 皆始也. 伊尹言始攻無道, 由我始其事於亳也.

 

 

 

 

 

 

해석

萬章問曰: “人有言 伊尹以割烹要有諸?”

만장이 사람들이 이윤은 고기를 자르고 삶으며 탕왕에게 등용되길 요구했다.’라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 平聲, 下同.

, 求也.

()는 구한다는 것이다.

 

史記伊尹欲行道以致君而無由,

사기』 「은본기(殷本紀)를 살펴보면 쓰여 있다. “이윤이 도를 행하여 임금을 만들려 했지만 할 도리가 없자,

 

乃爲有莘氏媵臣,

마침내 유소씨의 잉신여자가 시집갈 때 데리고 가는 남자 노복(奴僕)을 말한다이 되어

 

負鼎俎以滋味說, 致於王道”.

솥과 제기를 짊어지고 가서 맛 좋은 음식으로 탕왕을 설득하여 왕도에 이르게 했다

 

蓋戰國時有爲此說者.

대체로 전국시기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孟子: “, 不然. 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 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弗顧也; 繫馬千駟, 弗視也. 非其義也, 非其道也, 一介不以與人, 一介不以取諸人,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윤은 유소(有莘)의 들에서 밭 갈며 요순의 도를 즐겼다. ()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천하를 봉록으로 주더라도 돌아보지 않았고 말이 천 사마여도 보지 않았다.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한 개의 풀이라도 남에게 주지 않고, 한 개의 풀이라도 남에게 취하지 않았다.

, 音洛.

, 國名.

()는 국명이다.

 

樂堯舜之道者, 誦其詩,

낙요순지도(樂堯舜之道)’라는 것은 시를 외고

 

讀其書, 而欣慕愛樂之也.

책을 읽어 기뻐하고 사모하며 아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 四匹也. 介與草芥之芥同.

()는 말이 네 필이다. ()는 초개(草芥)의 개()와 같다.

 

言其辭受取與, 無大無細,

사양하고 받고 취하고 줌에 크고 작음도 상관없이

 

一以道義而不苟也.

도의에 한결같이 하여 구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使人以幣聘之, 囂囂然曰: ‘我何以之聘幣爲哉? 我豈若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哉?’

탕왕이 사람을 시켜 폐백으로 그를 초빙하자 자득한 듯이 내가 어디에 탕왕이 초빙한 폐백을 쓰겠는가? 내가 어찌 밭두둑 가운에 있으며 이로 인해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 五高反, 又戶驕反.

囂囂, 無欲自得之貌.

효효(囂囂)는 욕심 없이 자득한 모양이다.

 

三使往聘之, 旣而幡然改曰: ‘與我處畎畝之中, 由是以樂堯舜之道, 吾豈若使是君爲堯舜之君哉? 吾豈若使是民爲堯舜之民哉? 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

탕왕이 세 번 사람을 보내 초빙하니 이윽고 급작스레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밭두둑 가운데 있으며 이로 인해 요순의 도를 즐기기보다 내가 어찌 이 임금으로 요순의 임금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으며, 내가 어찌 이 백성으로 요순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으며, 내가 어찌 몸에 친히 도를 보이는 것만 하겠는가?

幡然, 變動之貌.

번연(幡然)은 변동스런 모양이다.

 

於吾身親見之, 言於我之身親見其道之行,

어오신친견지(於吾身親見之)’는 나의 몸으로 친히 도의 행해짐을 드러내니

 

不徒誦說向慕之而已也.

다만 외우고 흠모할 뿐만이 아닌 것이다.

 

天之生此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 天民之先覺者也; 予將以斯道覺斯民也. 非予覺之, 而誰也?‘

하늘이 이 백성을 태어나게 함에 선지자로 후지자를 깨우치며 선각자로 후각자를 깨우치게 했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의 선각자로 내가 장차 이 도로 이 백성을 깨우쳐야 하니, 내가 깨우치지 않으면 누가 하리오?’라고 생각했다.

此亦伊尹之言也.

이것은 또한 이윤의 말이다.

 

, 謂識其事之所當然.

()는 일의 당연한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 謂悟其理之所以然.

()은 이치의 그렇게 된 까닭을 깨우친 것을 말한다.

 

覺後知後覺, 如呼寐者而使之寤也.

후지(後知)와 후각(後覺)을 깨우친다는 것은 자는 사람을 불러 그로 하여금 깨우는 것과 같다.

 

言天使者, 天理當然, 若使之也.

하늘이 시켰다는 것은 천리(天理)의 당연함이 그에게 시킨 것과 같다는 말이다.

 

程子: “予天民之先覺, 謂我乃天生此民中,

정명도(程明道)가 말했다. “‘여천민지선각(予天民之先覺)’은 나는 곧 하늘이 낸 이 백성 중에

 

盡得民道而先覺者也.

백성의 도를 다 얻어 먼저 깨우친 사람이라는 말이다.

 

旣爲先覺之民,

이미 먼저 깨친 백성이 됐으니

 

豈可不覺其未覺者.

어찌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을 깨우치지 않게 할 수 있으리오.

 

及彼之覺, 亦非分我所有以予之也.

저들이 깨우침에 이르러선 또한 내가 소유한 것을 그들에게 주어 나눠준 게 아니라,

 

皆彼自有此理,

다 저들이 스스로 이 이치가 있는 것이니,

 

我但能覺之而已.”

나는 다만 그들을 깨우치기만 할 뿐이다.”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 若己推而內之溝中. 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 故就而說之以伐救民.

이윤은 천하 백성이 필부필부라도 요순의 은택을 입지 않으면 자기가 밀어 도랑 속으로 넣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천하의 중한 것으로 자임한 것이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탕왕에게 나가 설득하여 하나라를 정벌하고서 백성들을 구제했다.

, 吐回反. , 音納. , 音稅.

○ 『: “昔先正保衡作我先王,

서경에서 말했다. “옛날 선정 보형(이윤)이 우리의 선왕을 진작시켜,

 

, ‘予弗克俾厥后爲堯舜,

내가 그 임금을 도와 요순이 되도록 할 수 없다면

 

其心愧恥, 若撻于市’.

그 마음은 부끄러워 시장에서 매 맞는 것과 같으리라.’라고 말했고,

 

一夫不獲, 則曰 時予之辜’.”

한 아비라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이것은 나의 허물이다.’라고 말했다.”

 

孟子之言蓋取諸此.

맹자의 말은 대체로 여기에서 취한 것이다.

 

夏桀無道, 暴虐其民,

이때에 하나라 걸왕이 무도하여 그 백성에게 포학하였기 때문에

 

故欲使以救之.

탕임금으로 하여금 하나라를 정벌하여 구제하도록 한 것이다.

 

氏曰: “伊尹堯舜之道. 堯舜揖遜,

서도(徐度)가 말했다. “이윤은 요순을 도를 즐겼지만 요순은 읍하고 사양하였고,

 

伊尹以伐,

이윤은 탕왕을 설득하여 하나라를 정벌하게 했으니,

 

時之不同, 義則一也.”

시기는 같지 않았지만 뜻은 하나다.”

 

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 況辱己以正天下者乎? 聖人之行不同也, 或遠或近, 或去或不去, 歸潔其身而已矣.

나는 자기를 굽혀 남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듣지 못했는데 하물며 자기를 욕되게 하여 천하를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성인의 행실은 같지 않으니, 혹 멀리 가기도 혹 임금에 가까이 가기도, 혹 떠나기도 혹 떠나지 않기도 하니, 그럼에도 귀의하는 곳은 자기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 去聲.

辱己甚於枉己,

자기를 욕되게 함은 자기를 굽히는 것보다 심하니

 

正天下難於正人.

천하를 바르게 함은 사람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어렵다.

 

伊尹以割烹要,

만약 이윤이 고기를 자르고 삶으며 탕왕에게 등용되길 요구했다면

 

辱己甚矣,

욕됨이 이미 심한 것이니,

 

何以正天下乎?

어찌 천하를 바르게 하랴.

 

, 謂隱遁也.

()은 은둔한 것을 말한다.

 

, 謂仕近君也.

()은 벼슬하여 임금에 가까운 것을 말한다.

 

言聖人之行雖不必同, 然其要歸,

성인의 행실이 비록 반드시 같질 않지만 귀의하는 곳은

 

在潔其身而已.

그 몸을 깨끗이 하는 데에 있으니

 

伊尹豈肯以割烹要湯哉?

이윤이 어찌 고기 자르며 삶는 것으로 탕왕에게 등용되길 즐겼겠는가라는 말이다.

 

吾聞其以堯舜之道要, 末聞以割烹也.

나는 요순의 도()로 탕왕에게 요구했다는 것은 들었지만, 고기를 자르고 삶으며 요구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氏曰: “堯舜之道要,

임지기(林之奇)가 말했다. “요순의 도()로 탕왕에게 요구했다는 것은

 

非實以是要之也,

실제로 이것으로 요구했다는 것은 아니고,

 

道在此而之聘自來耳.

()가 여기에 있어 탕왕의 초빙함이 절로 왔을 뿐이다.

 

子貢夫子之求之, 異乎人之求之也

자공이 부자의 구하심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 다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愚謂此語亦猶前章所論父不得而子之意.

내가 생각하기로 이 말은 또한 만장4부부득이자(父不得而子)’의 뜻과 같다.

 

伊訓: ‘天誅造攻, 自牧宮, 朕載自.’”

이훈에서 말했다. ‘하늘의 토벌로 처음 공격함은 목궁(牧宮)으로부터였으니 나는 탕왕을 돕는 과업을 수도인 박읍에서 시작한다.’”

伊訓, 商書篇名.

이훈상서의 편명이다.

 

孟子引以證伐救民之事也.

맹자는 인용하여 하나라를 정벌하여 백성을 구제한 일을 증명했다.

 

牧宮作鳴條.

이제 서경에는 목궁이 명조로 되어 있다.

 

, , 皆始也.

()와 재()는 모두 시작한다는 것이다.

 

伊尹言始攻無道, 由我始其事於亳也.

이윤은 말했다. “처음에 걸왕의 무도함을 공격함은 내가 그 일을 박읍에서 시작함으로 비롯됐다.”

 

맹자는 이윤을 특별히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것은 공자가 주공을 꿈에 그리도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나라 초기의 주공의 역할이나 은나라 초기의 이윤의 역할은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둘다 신왕조 개창의 혁명의 주체세력이다. 그러나 본인이 왕이 되지 않고, 왕을 도와 혁명이 잘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후견인 노릇을 했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는 지식인의 처지에 있는 공자나 맹자에게 그 아이덴티티의 상()으로서는 보다 적합한 인물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의 패러곤(paragon, 표본)은 주공이었고, 맹자의 패러곤은 이윤이었다. 그리고 기질적으로도 이윤은 맹자의 위인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전국시대에 떠돌아다니는 이윤설화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즉 이윤의 이름이 아형(阿衡)이었는데, 아형은 당시에 떠오르는 별이었던 탕임금을 만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탕임금에 발탁되기 위한 수단으로 탕임금에게 시집가는 유신씨(有莘氏)의 딸의 잉신(媵臣)이 되기를 자청한다. 그리하여 요리기구인 정()과 조()를 둘러메고 따라가 결국 탕에게 접근하는 기회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요리에 관한 이야기로써 탕임금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것을 확대해석하여 맛의 본질이 자신의 몸의 닦음에 있으며, 맛은 왕업(王業)을 성취할 때, 비로소 구비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중략) 하여튼 전국시대에는 이윤이 자신의 지위를 요리사의 신분으로까지 낮추어서 적극적으로 탕임금에게 접근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담론의 형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소불소지신(所不召之臣)’을 자처하는 맹자의 프라이드를 몹시 실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왕 쪽에서 부르지 않으면, 자신이 자청해서 벼슬길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맹자의 신념에 몹시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하의 맹자의 논변은 그러한 자신의 신념체계를 이윤에게 덮어씌워서 재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맹자, 사람의 길, 545~546

 

 

인용

목차 / 전문 / 역주

삼천지교 / 생애 / 孟子題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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