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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19. 선시, 깨달음의 바다 - 1. 산은 산, 물은 물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19. 선시, 깨달음의 바다 - 1. 산은 산, 물은 물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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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선시(禪詩), 깨달음의 바다

 

 

1. 산은 산, 물은 물

 

 

노승(老僧)30년 전 참선(參禪)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뿐이로다.

 

 

성철(性澈) 스님의 법어(法語)로 해서 유명해진 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의 공안(公案)이다. 선사(禪師)30년간의 수행 끝에 처음 본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30년의 공력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고초일뿐이었다. 한때 눈앞이 번쩍 열리는 깨달음의 빛 속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 다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 사이의 소식을 알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깨달음의 경계에 진입한 자일 터이다.

 

이 뜻을 받아 고려 때 혜심(慧諶)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이라.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중은 속인이요, 속인이 중이로다. 이 이치를 이미 깨닫는다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중은 중이고 속인은 속인일러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 깨달음의 경지를 그는 다시 부연한다.

 

 

깨달은 자는 포의준자(布袋尊者)가 똥덩이를 들고서 이것이 극락세계다라 하고, 마른 생선 조각을 들고서 이것이 도솔천의 궁전 밑이다.”라 한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은 자는 절굿대에 꽃이 피고, 부처의 얼굴이 온통 추함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은 자는 빈손에 호미를 쥐고 머리로 걸어가며, 물소를 타고서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선가(禪家)의 깨달음은 미묘하여 말로 세워 전할 수가 없다. 초조(初祖) 달마(達摩)가 동쪽으로 건너 와 말로도 세울 수 없고 가르침으로도 전할 수 없는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법을 전한 이래, 새로운 사유의 방식을 제시한 선풍(禪風)이 중국에서 크게 진작되었다.

 

()이란 무엇인가. 범어(梵語)댜나(Dhyāna)를 옮긴 이 말은 원래는 명상(瞑想)’의 의미를 지녔다. ()은 달리 정려(靜慮)’ 또는 사유수(思惟修)’라 옮기기도 하나, ‘정혜(定慧)’와 같은 뜻으로 보기도 한다. 규봉(圭峯) 종밀(宗密)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에서 근심과 기쁨을 마음에서 잊는 것, 이것이 바로 선(, 憂喜心忘便是禪).”이라 하였다. 남천축국보리달마선사관문(南天竺國菩提達摩禪師觀門)이란 불경에 보면, 달마와 제자 사이에 선()의 의미를 두고 다음과 같은 문답이 보인다.

 

 

묻기를,

무엇을 이름하여 선정(禪定)이라 합니까?”

대답하기를,

()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하나니,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 선정(禪定)이니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도 없고 멸()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선정(禪定)이라 하느니라. 말을 비우고 생각을 정히 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고요 속에 침잠하여, 갈 때나 머물 때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언제나 고요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에 선정(禪定)이라 하느니라.”

 

 

내가 나를 잊어, 나도 없고 물()도 없는 자리, 일체의 경계가 모두 허물어지고 난 그 텅 빈 허공, 이것이 선()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증심상조(證心相照), 통연자득(洞然自得)의 깨달음이 있을 뿐, 언어와 사변으로서는 도달할 길이 없다.

 

 

혜심(慧諶)은 위 같은 글에서 회양선사(懷讓禪師)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懷州牛喫草 益州馬腹脹 회주(懷州) 땅의 소가 풀을 뜯는데 익주(益州)의 말이 배가 터졌네.
天下覓醫人 炙猪左膊上 천하에 의원을 찾아가 보니 돼지의 어깨 위에 뜸질을 하네.

 

말 그대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풀은 회주(懷州)의 소가 먹었는데, 수 천리 떨어진 익주(益州)의 말이 배가 터진다. 고쳐 달라고 의원을 찾아가니 엉뚱하게 돼지의 어깨에다 뜸질을 한다.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니 혜심(慧諶)은 아예 갈피를 잡을 생각은 버리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이언절려(離言絶慮)’,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어진 곳, 그곳의 소식은 언어로 설명하려 하면 이렇듯 헛김이 샌다. 언어의 집착에서 벗어나라. 분별하는 생각을 끊어라.

 

海底燕巢鹿胞卵 바다 밑 제비 둥지에 사슴이 알을 품고
火中蛛室魚煎茶 불 속 거미집선 고기가 차 달이네.
此家消息誰能識 이 집안 소식을 뉘 능히 알리
白雲西飛月東走 흰 구름 서편으로, 달은 동으로.

 

근대의 선객(禪客) 효봉선사(曉峯禪師)의 오도송(悟道頌)이다. 말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허공을 나는 제비의 집이 어째 바다 밑바닥에 있으며, 태생동물인 사슴은 어쩐 일로 바다 속 제비 둥지에 들어와 알을 품고 있는가. 불 속에 거미집이나, 거기에 올라와 차를 달이는 물고기에 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은 서편에 떨어지는 것인데, 어찌 동으로 달려가는 이치가 있는가. 꼬집어내려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이 집안 소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曉峯) 스님의 다음 법어(法語)에서도 이러한 반상(反常)’은 계속된다.

 

若人欲越四相山 누구든 사상산(四相山)을 건너랴거든
也要須杖兎角杖 토끼 뿔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若人欲渡生死海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너려 하면
也要須駕無底船 밑 빠진 배를 타야 하리라.

 

토끼에게 무슨 뿔이 있으며, 설사 있다 한들 상아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지팡이로 만들 수 있으랴. 밑 빠진 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읽을수록 알쏭달쏭하고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사상산(四相山)과 생사해(生死海)를 건널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 행간의 뜻은 찾을수록 첩첩산중이다.

 

斫來無影樹 燋盡水中漚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와서는 물속의 거품에다 태워 버린다.
可笑騎牛者 騎牛更覓牛 우습구나, 소를 타고 있는 이 소 타고서 다시금 소를 찾다니.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고제(高弟) 소요(逍遙) 태능선사(太能禪師)에게 내린 게송(偈頌) 가운데 한 수이다. 이번에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물속에서 태워 버린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그래도 34구는 좀 알아들을 법하다. 소를 타고 있는 이가 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말이다. 불가에서 멱우(覓牛)’는 구도(求道)와 같다. ()의 실체를 붙들고 있으면서도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자꾸만 몸 밖에서 소를 찾는다는 말이다.

 

百千經卷如標指 온갖 경전의 말 표지와 같아
因指當觀月在天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지.
月落指忘無一事 달 지고 손가락 잊어 아무 일 없거니
飢來喫飯困來眠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네.

 

소요(逍遙) 태능(太能)의 시이다. 온갖 경전에 쓰여진 불법(佛法)의 말씀들은 모두 깨달음의 바다로 이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전 탐구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어늘 어디에서 티끌 생각이 일어난단 말인가. 달도 지고 손가락도 잊은 그곳, 분별하고 사량(思量)하는 마음조차 끊어진 그곳에서 하는 일이란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는 것뿐이다. 언어를 버려라. 생각을 버려라. 그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마저 버려라. 그때 깨달음의 세계가 통쾌하게 열리리라.

 

김석신(金碩臣), 고승한담도(高僧閑談圖), 18세기, 36X31cm, 개인소장.

감도 없고 옴도 없다. 텅 비었고 꽉 찼다. 나는 누군가? 너는 누구냐!

 

 

 

인용

목차

1. 산은 산, 물은 물

2. 선기와 시취

3. 설선작시 본무차별

4.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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