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 혀가 있느냐?②
부드러운 게 강한 걸 이긴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의 염려 때문에 입상(立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직설적 언어의 나열보다 전달면에서 더욱 훌륭한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허균(許筠)의 『한정록(閑情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를 내리 거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한 상용은 돌아누웠다.
이것이 입상진의(立象盡意)이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상용이 노자에게 준 가르침은 자신의 본바탕을 잊지 말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것이니,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며 지녀야 할 마음가짐의 모든 것을 다 말했다고 한 것이다. 언어란 본시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이것을 굳이 억지로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할 것이 아니다. 큰 가르침은 사람마다 일깨워 가르칠 수 없다. 본래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알아듣고, 모를 사람에게는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 준댔자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시를 통해 할 얘기를 남겨두다
허균(許筠)은 또 같은 책에서 이런 일화를 전하고 있다. 손님이 초당(草堂)을 지나다가 문을 두드리며 자연에 묻혀 사는 일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대답하기 귀찮아 고인(古人)의 시를 가지고 대답하고 만다.
“무엇 때문에 즐겨 숨어 사는가?”
得閒多事外 知足少年中 | 많은 일들 밖에서 한가함을 얻었고 젊은 시절에 만족함을 알았노라. |
“무슨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가?”
種花春掃雪 看書夜焚香 | 꽃 심느라 봄날에는 덮인 눈 쓸고 도서(道書)를 읽느라 밤에는 향을 피우네. |
“어찌해야 양생하여 늙음을 마칠 수 있는가?”
硏田無惡歲 酒國有長春 | 글 쓰는 일에는 흉년이 없고 술 나라에는 언제나 봄이라오. |
“어디를 다니면서 무료함을 지우는가?”
有客來相訪 通名是伏羲 | 날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통성명을 하고 보면 복희씨(농부를 말함)로다. |
옛 사람의 상쾌한 정신의 한 자락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야기다. 『암서유사(庵栖幽事)』란 책에 나온다고 허균(許筠)은 적고 있다.
인용
1. 싱거운 편지
2. 왜 사냐건 웃지요①
3. 왜 사냐건 웃지요②
6. 내 혀가 있느냐?①
7. 내 혀가 있느냐?②
10.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③
11.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