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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 3. 왜 사냐건 웃지요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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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立象盡意論) - 3. 왜 사냐건 웃지요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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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사냐건 웃지요

 

 

왜 산에 사냐고 물으니, 그냥 산다 하지요

 

問余何事棲碧山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고 대답 아니 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 가거니
別有天地非人間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산속에 묻혀 사는 나에게, 왜 답답하게 산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묵묵부답(黙黙不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한들 그가 내 마음을 어이 헤아릴 것이랴. 또 낸들 무슨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왜 사냐 건 웃지요밖에는. 복사꽃이 물 위로 떠가니, 상류 어디엔가 무릉의 도원이 있지나 않을런지.

 

 

 

잠자다 일어나니, 분별하려는 기심조차 사라져 버렸네

 

다음은 고려 때 최유청(崔惟淸)잡흥(雜興)시 연작 가운데 한 수이다.

 

春草忽已綠 滿園蝴蝶飛 봄풀 어느덧 저리 푸르러 동산 가득 나비가 날아다닌다.
東風欺人垂 吹起床上衣 봄바람 잠든 나를 속여 깨우려 침상 위 옷깃을 불어 흔드네.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깨고 보면 고요히 아무 일 없고 숲밖엔 저녁 해만 비치고 있다.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다 고요히 이미 기심(機心) 잊었네.

 

연초록 푸르른 동산에 나비 떼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꿈같은 봄날의 스케치이다. 감미로운 햇살에 곤한 봄잠이 깊어 있던 그를, 짓궂은 봄바람은 자꾸만 일어나라고 옷자락을 흔든다. 이 아름다운 봄날을 잠으로만 보내서야 되겠느냐는 점잖은 충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시시 일어나보면, 여전히 나비 떼는 날아다니고, 동산은 싱그럽고, 어느덧 햇살만이 뉘엿해 있을 뿐이다. 기운 햇살의 빗긴 볕을 받아 반짝이는 물상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하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입술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입안을 맴돌다 고요히 사라지고, 어느덧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고 말았다는 것이다.

 

시인이 보여주는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시인 대신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잠을 깨어 바라보는 봄날 해질녘 광경의 황홀함 속에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느낌조차 무화(無化)시켜 버리고, 기심(機心) 즉 분별하고 헤아리는 마음마저 앗아가 버린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시는 이렇듯 모든 것이 기화(氣化)해 버리고 남은, 순수한 결정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래서 내가 봄 동산이 되고, 그 동산의 나비가 되어 봄날의 석양 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리는 느낌을 노래한다. 필설로 옮기려 하는 순간 증발해 버리듯 사라져 버린 기심, 사물과의 순간적인 만남이 가져다주는 이러한 생취(生趣)를 설명적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는 얼마나 허망한가. 그러고 보면 언어는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싱거운 편지

2. 왜 사냐건 웃지요

3. 왜 사냐건 웃지요

4.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5.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6. 내 혀가 있느냐?

7. 내 혀가 있느냐?

8.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9.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10.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11.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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