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궁사(宮詞), 한숨으로 짠 역사②
허균(許筠)도 1610년(광해 2)에 벼슬에서 물러나 수표교에 있던 종의 집에서 요양하던 중, 종의 이모로 그 집에 얹혀 살던 76세의 은퇴한 궁인(宮人)을 만나 그녀에게서 궁중의 일을 이야기 듣고 마침내 왕건(王建)의 일을 본떠 「궁사(宮詞)」 100수를 남겼다. 그녀는 선조대왕(宣祖大王)과 의인왕후(懿仁王后)의 성덕과 궁내(宮內)의 절목(節目) 및 여러 고사들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고, 허균(許筠)은 이를 시로 남겨 마침내 일대(一代)의 시사(詩史)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세 수를 감상해 보자.
驅儺聲徹寢門深 | 나례(驅儺) 소리 침문 깊이 울려 퍼지고 |
鶴舞鷄毬鬧禁林 | 학무(鶴舞)와 포구락(抛毬樂)에 대궐이 떠나가네. |
五色處容齊拂袖 | 다섯 빛깔 처용(處容)님은 소매를 떨치우고 |
妓行爭唱鳳凰吟 | 여기(女妓)는 앞다투어 봉황음(鳳凰吟)을 노래하네. |
세모(歲暮)에 역귀(疫鬼)를 몰아내는 나례(儺禮) 광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학무(鶴舞)에 포구락(抛毬樂)을 얹어 춤추고 노래하면, 뒤이어 오방처용(五方處容)이 색색의 옷을 입고 나와 처용무(處容舞)를 춘다. 다시 긴 춤사위가 한바탕 흐드러지게 휘몰아친 후 오색처용(五色處容)이 동서남북 중앙으로 갈라 자리를 잡으면 음악이 점차 빨라지면서 “산하천리국(山河千里國)에”로 시작되는 봉황음(鳳凰吟) 가락이 울려 퍼지고 여기(女妓)는 낭랑한 청으로 노래를 부른다. 대개 나례(儺禮)의 의식절차나 의궤(儀軌) 및 정재(呈才)에 대해서는 이미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상세하다. 위 시와 궤범(軌範)을 견주어 보면 조금의 차이도 발견되지 않는다.
紅巾假面着牛形 | 붉은 수건 가면에는 소 모양을 붙여놓고 |
鑼鼓喧闐茢掃庭 | 징북 소리 꽝꽝대며 갈대로 뜰을 쓰네. |
萬戶一時驅鬼出 | 모든 집이 한꺼번에 귀신 몰아 내쫓고는 |
天王仙女帖門屛 | 천왕(天王)과 선녀(仙女) 얼굴 대문간에 붙여둔다. |
이어지는 나례(儺禮)의 민속을 노래한 한 수이다. 붉은 가면에다 소 형상을 그려 붙이고 징과 북을 두들기며, 귀신을 쫓는데 영험이 있다는 복숭아 나뭇가지와 갈대 이삭으로 뜨락을 쓸어 집에서 역신(疫神)을 몰아내는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는 대문간에 천왕(天王)과 선녀(仙女)의 얼굴을 그려 붙여 놓고 역귀(疫鬼)가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당시 궁궐과 여항에까지 미친 성대한 나례(儺禮)의 광경을 노래한 것인데, 오늘날에 보면 민속학 방면의 자료적 가치도 적지 않다.
銀臺投進疊封箋 | 은대(銀臺)에서 보고 올린 봉전(封箋)이 쌓였으니 |
知是官僚殿最年 | 벼슬아치 한 해 성적 고과(考課)함을 알겠구나. |
直待上前開坼日 | 임금께서 열어 보는 그 날을 기다려서 |
解書宮女近床邊 | 글자 아는 궁녀가 어상(御床) 가까이 나아가네. |
당시 인사고과의 제도를 엿볼 수 있는 시이다. 해마다 6월 15일과 12월 15일이 되면 각 지방의 관찰사는 산하 수령의 근무성적을 평정 고과하여 중앙에 보고한다. 이때 가장 좋은 성적이 ‘최(最)’이고 가장 낮은 성적이 ‘전(殿)’이 된다. 이 전최(殿最)는 경관(京官)에게도 시행하였다. 각처에서 평정한 전최지(殿最紙)는 밀봉되어 승정원을 거쳐 임금에게 주달되었다. 이 시를 보면 아마도 지방에서 고과한 서류가 올라오면 이를 개봉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임금에게 올리고, 임금은 그 많은 서류를 일일이 볼 수 없었으므로 글자를 아는 궁녀가 어상(御床)에 나아가 이를 읽어 재가를 여쭈었던 듯하다. 허균(許筠)이 이 시를 지을 당시에야 미처 생각지 못하였겠지만, 그 시대의 충실한 기록은 이렇듯 뒷날 그 시대를 들여다보는 한 통로가 된다. 시가 세교(世敎)에 보탬이 된다 함은 그 내용의 감계(鑑戒)를 두고 이르는 말일 테지만, 이렇듯 시는 한 시대를 증언하는 비망록이 되기도 한다.
▲ 「담락연도(湛樂宴圖)」 중 처용무와 오방처용, 18세기.
다섯 빛깔 탈을 쓰고 다섯 처용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북이 둥둥 울리고 피리와 태평소가 가락을 맞춘다. 삿된 기운 물럿거라. 얼씬도 하지 마라.
인용
1. 할아버지와 손자①
2. 할아버지와 손자②
10. 사시(史詩), 역사로 쓴 시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