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로 쓴 역사, 시사(詩史)②
흔히 조선후기 삼정(三政)의 문란을 말할 때 백골징포(白骨徵布)니 황구첨정(黃口簽丁)을 말한다. 이러한 폐단이 낳은 비극을 노래하고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애절양(哀絶陽)」을 감상해 보자.
蘆田少婦哭聲長 | 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소리 구슬프다 |
哭向縣門號穹蒼 | 현문(縣門) 향해 울부짖다 하늘에 호소하네. |
夫征不復尙可有 | 구실 면제 안해줌은 있을 수 있다지만 |
自古未聞男絶陽 | 남근(男根)을 잘랐단 말 듣도 보도 못하였소. |
舅喪已縞兒未澡 | 시아버진 세상 뜨고 아이는 갓난앤데 |
三代名簽在軍保 |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나. |
薄言往愬虎守閽 | 억울함 하소차니 문지기는 범과 같고 |
里正咆哮牛去皁 | 이정(里正)은 고래고래 소마저 끌고 갔네. |
磨刀入房血滿席 | 칼 갈아 뛰어들자 피가 온통 낭자터니 |
自恨生兒遭窘厄 | 아들 낳아 곤경 당함 제 혼자 한탄한다. |
蠶室淫刑豈有辜 | 잠실(蠶室)의 궁형(宮刑)이 무슨 잘못 있었으랴 |
閩囝去勢良亦慽 | 민(閩) 땅의 자식 거세 진실로 슬프고나. |
生生之理天所予 | 자식 낳고 사는 이치 하늘이 준 바이니 |
乾道成男坤道女 | 건도(乾道)는 아들되고 곤도(坤道)는 딸이 되네. |
騸馬豶豕猶云悲 |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엽다 말하는데 |
況乃生民恩繼序 | 하물며 백성이 뒤이을 일 생각함이랴. |
豪家終歲奏管弦 | 부잣집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울리면서 |
粒米寸帛無所捐 | 쌀 한 톨 베 한 치도 바치지 않는구나. |
均吾赤子何厚薄 |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
客窓重誦鳲鳩篇 | 객창에서 자꾸만 시구편(鳲鳩篇) 읊는다네. |
다산이 강진 유배시에 직접 견문한 사실을 시로 쓴 것이다. 노전(蘆田) 사는 백성이 아들을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軍籍)에 올라 이정(里正)이 소를 빼앗아 가자, 방에 뛰어 들어가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며 칼을 뽑아 자기의 남근(男根)을 스스로 잘라버렸다. 그 아내가 남근(男根)을 가지고 관가에 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아무리 하소연하려 해도 문지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나마 이미 세상을 떠난 시아버지의 군포(軍布)도 꼬박꼬박 내고 있던 터였다.
백골징포(白骨徵布)란 무엇이던가. 이를테면 사람이 죽어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면, 동사무소 직원이 아예 접수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 죽은 사람 앞으로 세금 고지서를 날려 보낸다. 황구첨정(黃口簽丁)이란 무엇이냐.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나면 그 다음날로 징집통지서가 날아드는 것이다.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더러 빨리 입대하든지 군포(軍布)를 내라고 야단을 부린다. 정작 장정은 하나뿐인데 돌아가신 아버지와 난 지 사흘 밖에 안 된 핏덩이의 군포(軍布) 독촉 끝에 이정(里正)은 목숨보다 중한 소까지 끌고 가버렸다. 눈이 뒤집힌 가장은 칼을 뽑아 이정(里正)을 찌르지도 못하고 애꿎은 자신의 양근(陽根)을 자르고 말았던 것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이렇게 말한다.
심하게는 배가 불룩한 것만 보고도 이름을 짓고, 여자를 남자로 바꾸기도 하며, 또 그보다 심한 것은 강아지 이름을 혹 군안(軍案)에 기록하니,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정말 개이며, 절굿공이의 이름이 혹 관첩(官帖)에 나오니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정말 절굿공이이다.
甚則指腹而造名, 換女而爲男. 又其甚者, 狗兒之名, 或載軍案, 非是人名, 所指者眞狗也; 杵臼之名, 或出官帖, 非是人名, 所指者眞杵也.
웃어야 할 일인가. 울어야 할 일인가. 어쨌건 삼정(三政)의 문란을 말할 때, 당시 이를 증명하는 어떤 통계 수치보다도 우리는 이 「애절양(哀絶陽)」 한 편을 통해 그 시대 백성의 절규를 실감으로 듣게 된다. 시는 이렇게 해서 역사가 된다.
인용
1. 할아버지와 손자①
2. 할아버지와 손자②
10. 사시(史詩), 역사로 쓴 시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