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발승암기 (14)
건빵이랑 놀자
14. 총평 1 이 글은 전체적으로 ‘김홍연 알아 가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김홍연을 알아감에 따라 작자의 심리상태가 수시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작자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분노와 우호의 감정을 거쳐 연민의 마음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역으로 이 연민의 감정에서 출발해 씌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 글의 기저에서 연암은 김홍연이라는 인간에 대해 아주 따뜻한 눈길을 주고 있다. 김홍연에 대한 작가의 감정 기복에 따라 글도 심하게 출렁거리며 기복과 파란波瀾을 보여준다. 2 만년의 김홍연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이런 존재는 어떻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이에 대한 인간학적 탐구의 기록이다..
13. 게(偈)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그 글 끝에 다음과 같은 게偈를 붙였다.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안 흰 새를 의아해하네. 흑백 모두 자기가 옳다고 하니, 하늘도 판정하길 싫어한다지. 사람들 모두 두 눈 있지만, 한쪽 눈 없어도 또한 본다네. 하필 두 눈 있어야 밝게 보일까? 외눈박이만 사는 나라도 있는데. 두 눈도 오히려 적다고 여겨, 이마에 눈 하나를 보태기도 하네. 또한 저 관음보살은, 변신하여 눈이 일천 개라지. 천 개의 눈을 어디에 쓰리? 장님도 검은 것은 볼 수 있다마다. 김군은 몹쓸 병 걸려 몸이 불편해, 부처에 의지해 연명한다지. 돈을 쌓아 두고 쓰지 않으면, 가난한 거지와 무어 다를까? 중생들 제각각 살면은 되지, 억지로 남을 배울 건 없네. 대심大深이 뭇..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어느 날 그는 나의 우거寓居에 찾아와 이런 부탁을 했다. “제가 이제 늙어 머잖아 죽을 터인데, 마음인즉슨 진작 죽었고 머리카락만 남아 있을 뿐이며, 거주하는 곳은 모두 중들의 암자입니다. 바라건대 선생의 문장에 의탁해서 후세에 이름을 전했으면 합니다.” 나는 그가 늙어서도 그 뜻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게 슬펐다. 나는 마침내 그 옛날 함께 산에 노닐던 객과 주고받았던 말을 글로 써서 보내주면서 一日詣余寓邸而請曰: “吾今老且死, 心則先死, 特髮存耳, 所居皆僧菴也. 願托子文而傳焉.” 余悲其志老猶不忘者存, 遂書其舊與遊客答問者以歸之. 이 단락에서 연암은 이 글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거’란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집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그로부터 9년 뒤다. 나는 평양에서 김을 만날 수 있었다. 누가 그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김홍연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의 자字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대심! 발승암 아닌가!” 김군은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보더니, “어떻게 저를 아시지요?” 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옛날 만폭동에서 이미 자네를 알게 됐지. 집은 어딘가? 옛날에 수집한 물건들은 잘 간직하고 있는가?” 김군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가난해져 다 팔아 버렸지요.” “왜 발승암이라고 하나?” “불행히도 병 때문에 불구가 된 데다 늘그막에 아내도 없어 늘 절집에 붙어사는 까닭에 그렇게 자호自號하지요.” 그 말과 행동거지를 살펴보니 옛날의 모습과 태도가 아직 남아 있었..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그런데 이 단락에서 연암과 문답을 주고받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앞 단락에 의하면 그는 본래 김홍연의 행적을 잘 아는 사람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사람이 백동수白東修(1743~1816)가 아닐까 생각한다. 백동수는 서얼 출신의 무반武班으로, 이덕무의 처남이다. 연암은 35세 때인 1771년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이 자와 더불어 명산에 노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용력이 절륜하고 무예에 출중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미한 신분 때문에 몹시 불우하였다. 이 글은 1779년경에 쓴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당시 백동수는 건달 신세였다. 훗날 그는 무직武職인 장용영壯勇營 장교將校를 거쳐 박천 군수를 지냈다. 정조 때 왕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이 단락은 그 필치가 경쾌하고 해학적이지만 그 속에 깊은 철리哲理가 담겨 있다. 한편 독자는 이 단락에 이르러 비로소 김흥연이 바로 발승이라는 사실을 고지告知 받는다. 그리하여 왜 이 글의 제목이 ‘발승암기髮僧菴記’인지를 간취하게 된다. 이 점 또한 묘미가 있다. 연암은 독자의 심리를 이리저리 저울질해가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상 인물의 심리를 통찰하는 데 썩 뛰어날 뿐 아니라 독자 심리학에도 일가견이 있다 할 만하다. 천하의 문장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이름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것, 그것은 허깨비에 불과하며, 따라서 그에 집착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 이는 20대 중반 무렵에 연암이 깨달은 사실이었다. 연암은 이런..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자가 대꾸가 없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옛날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없다’라는 분과 ‘있을 리가 있나’라는 선생을 허구적으로 설정해 서로 문답하게 하는 글을 쓴 적이 있거늘 지금 나와 그대가 우연히 절벽 아래 흐르는 물가에서 만나 서로 문답하고 있네그려. 먼 훗날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있을 리가 있나’ 선생일 터이니 이른바 발승암이란 자가 있을 리가 있나?” 그러자 그는 발끈하여 얼굴에 노기를 띠고 말했다. “내 어찌 황당한 말을 지어낸 것이겠습니까? 정말 김홍연은 존재하외다!” 나는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너무 집요하이. 지난날 왕안석王安石이 「진秦나라를 비판하고 신新나라를 찬미함(劇秦美新)」이라는 글에 대해 변증辨證하면서 ‘이건 필시 곡자운谷..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내가 물었다. “그 사람이 뉜가?” “김홍연이외다.” “이른바 김홍연은 뉜가?” “그 자字가 대심大深이외다.” “대심이라는 이는 뉜가?” “자호自號를 발승암髮僧菴이라고 하외다.” “이른바 발승암은 뉜가?” 余問: “是人爲誰?” 曰: “金弘淵.” “所謂金弘淵爲誰?” 曰: “字大深.” 曰: “大深者誰歟?” 曰: “是自號髮僧菴.” “所謂髮僧菴誰歟?” 이 단락은 마치 선문답 같다. 단락 전체가 물음과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문답이란 무엇인가? 통념과 지식을 허물어뜨려 깨달음, 즉 절대의 진리에 이르는 방편 아닌가. 이 단락에서 연암이 톡톡 던지는 물음은 이런 의미의 선문답적 물음이다. 연암은 먼저 ‘김홍연’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러자 상대방은 ‘대심’이라고 답한다. 연암은 다..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지만 다시 본제本題로 돌아가자. 『사기』 열전 중에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이 있다. ‘유협’이란 협객을 말한다. 이 두 편의 열전에서 다룬 유협과 자객은 모두 유교적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인간부류로서, 질서와 예법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불온시 되거나 비판받아야 할 인간들이다. 그렇건만 사마천은 이들의 미덕을 찬양하고 기리어 역사에 편입하였다. 이를 두고 후대의 학자들은 두고두고 사마천을 비난하였다. 불온한 인물들을 미화하고 역사에서 다루었다는 게 비난의 이유였다. 연암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사기』 열전의 이 두 편, 특히 「유협열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바로 이런 독서 경험과 관련해 연암은 젊..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조선 후기 부의 축적으로 협객이 출연하다 조선 후기 도시의 발달과 상업 발전은 중간계급의 성장을 가져왔다. 특히 중인 서리층은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함으로써 많은 부를 축적해 갔다. 이들의 부富는 판소리를 비롯한 서민 예술의 물질적 기초가 되기도 했으나 그 대부분은 유흥 공간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서화를 사 모으기도 하고, 골동품이나 값비싼 중국 물건, 사치품 따위로 집을 장식하기도 했다. 혹은 유협遊俠이나 협객으로 행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부富는 서유럽의 발흥기 시민계급처럼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그 출로를 찾지는 못했다. 조선 후기의 중간계급은 비록 물질적 힘은 획득했지만 정치적ㆍ사회적 진출의 가능성은 봉쇄되어 있었다. 이 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어떤 이가 본래 김金의 행적을 잘 알아 나에게 얘기해줬는데, 그에 의하면 김은 곧 왈짜였다. 왈짜란 대개 여항의 허랑방탕하고 오활한 이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른바 검객이나 협객俠客과 같은 부류를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무과에 합격했으며, 힘이 세어 범을 때려잡거나 좌우 옆구리에 기생 둘을 끼고 몇 길의 담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쩨쩨하게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이 본래 부유하여 돈을 물 쓰듯 하였고, 고금古今의 유명한 서첩書帖과 좋은 그림, 칼이며 거문고며 골동품, 기이한 꽃과 풀 따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 혹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천금을 아끼지 않았으며, 준마駿馬와 송골매를 늘 ..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무릇 명산을 유람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지극히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 온갖 어려움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기이한 경치를 구경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평소 이전에 산에 오른 일을 회상할 적마다 오싹해지며 자신의 무모함을 뉘우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산에 오르면 그만 지난날의 경계를 소홀히 해 가파른 바위에 오르기도 하고 깊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기도 하며, 몸을 모로 하여 아슬아슬하게 썩은 잔도棧道를 밟고 낡은 사다리를 오르기도 하면서 왕왕 천지신명에게 무사하기를 빌며 살아 돌아가지 못할까봐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사朱砂로 사슴 정강이 크기는 될 정도로 큼지막하게 쓴 붉은 글씨가 늙은 나무 등걸과 오래된 등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서렸..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그 후 나는 나라 안의 명산들을 두루 돌아다닌바, 남으로는 속리산과 가야산, 서西로는 천마산과 묘향산에 올랐다. 깊숙하고 외딴 곳에 이르러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올 수 없는 곳까지 왔다고 자부할 양이면 그때마다 늘 김홍연이 새겨 놓은 이름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치밀어 이렇게 욕을 했다. “홍연이 어떤 놈이기에 감히 이리도 당돌한가!” 其後余遊歷方內名山, 南登俗離ㆍ伽倻, 西登天摩ㆍ妙香. 所至僻奧, 自謂能窮世人之所不能到, 然常得金所題. 輒發憤罵曰: “何物弘淵, 敢爾唐突耶?” 앞 단락에서 홍연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면, 이 단락에서는 홍연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분노가 명산의 외딴 곳에서 ‘김홍연’이라는 이름 석 자와 계속해서 조우..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내가 동東으로 금강산을 유람할 적이다. 골짝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옛사람과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위에 써 놓은 게 보였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깊이들 새겨 놓아 작은 틈도 없었으니 마치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북적거려 어깨가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교오의 묘지에 빽빽이 들어선 무덤 같기도 했다. 옛날에 새긴 이름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새로 쓴 이름은 붉은 글씨가 환히 빛났다. 깎아지른 듯한 천 길 벼랑의 바위 위에 이르매 날아가는 새 그림자도 없었으며 오직 ‘金弘淵김홍연’이라고 새긴 세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심 참 이상하다고 여기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에로부터 관찰사의 위세란 족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을 만큼 대단하고, 또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