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가까이에 만들어져 여민동락하는 누각
운금루기(雲錦樓記)
이제현(李齊賢)
다른 것에 눈이 팔린 나머지 곁에 있는 것들을 놓치다
山川登臨之勝, 不必皆在僻遠之方. 王者之所都, 萬衆之所會, 固未嘗無山川也. 爭名者於朝, 爭利者於市, 雖使衡ㆍ廬ㆍ湖ㆍ湘列于跬步俯仰之內, 將邂逅而莫之知有也.
何者? 逐鹿而不見山, 攫金而不見人, 察秋毫而不見轝薪, 心有所專, 而目不暇他及也. 其好事而有力者, 踰關津卜田里, 規規於丘壑之遊, 自以爲高, 康樂之開道, 小民之所驚; 許氾之問舍, 豪士之所諱, 又不若不爲之爲高也
개성 근처에 만든 운금루
京城之南有池, 可方百畝, 環而居者, 閭閻煙火之舍, 鱗錯而櫛比, 負戴騎步, 道其傍而往來者, 絡繹而後先. 豈知有幽奇閑廣之境, 迺在其間耶?
後至元丁丑夏, 荷花盛開, 玄福君權侯見而愛之, 直池之東, 購地起樓. 倍尋以爲崇, 參丈以爲袤, 不礎而楹, 取不朽; 不瓦而茨, 取不漏. 桷不斲, 不豐而不撓; 堊不雘, 不華而不陋. 大約如是. 而一池之荷, 盡包而有之.
於是請其大人吉昌公與兄弟姻婭, 觴于其上, 怡怡愉愉, 竟日忘歸. 子有能大書者, 使之書雲錦二字, 揭爲樓名
가까이 있지만 최상의 명승지라 할 만한 운금루
余試往觀之, 紅香綠影, 浩無畔岸, 狼藉風露, 搖曳煙波, 可謂名不虛得者矣.
不寧惟是? 龍山諸峯, 攢靑抹綠, 輻輳簷下, 晦明朝夕, 每各異狀. 而嚮之閭閻煙火之舍, 其面勢曲折, 可坐而數, 負戴騎步之往來者, 馳者休者顧者招者, 遇朋儔而立語者, 値尊長而趨拜者, 亦皆莫能遁形而望之可樂也. 在彼則徒見有池, 不知有樓, 又安知樓之有人.
信乎登臨之勝, 不必在僻遠, 而朝市之心目, 邂逅而莫之知有也. 抑亦天作地藏, 不輕示於人耶.
누각의 정취를 자신만 누리지 않고 함께 누리다
侯腰萬戶之符, 席外戚之勢, 齒不及古人強仕之年. 宜於富貴利祿, 寢酣而夢醉, 乃能樂乎仁智之所樂, 不見驚于民, 不見諱于士. 而奄有幽奇閑廣之境於市朝心目之所不及, 樂其親以及於賓, 樂其身以及於人, 是可尙也已. 益齋居士某, 記. 『益齋亂稿』 卷第六
해석
다른 것에 눈이 팔린 나머지 곁에 있는 것들을 놓치다
山川登臨之勝, 不必皆在僻遠之方.
산과 천으로 올라 굽어볼 명승지는 반드시 모두 궁벽하고 먼 곳의 지방만 있는 건 아니다.
王者之所都, 萬衆之所會,
임금이 도읍하는 곳과 대중이 모이는 곳에도
固未嘗無山川也.
진실로 일찍이 산과 천이 없었던 건 아니다.
爭名者於朝, 爭利者於市,
명예를 다투는 사람은 조정에, 이익을 다투는 사람이 저자에 있으니
雖使衡ㆍ廬ㆍ湖ㆍ湘列于跬步俯仰之內,
비록 형산과 여산과 동정호와 소상강이 반 걸음하여 굽어보고 우러러볼 안에 나열되어
將邂逅而莫之知有也.
장차 만난다 해도 알지 못한다.
何者?
왜인가?
逐鹿而不見山, 攫金而不見人,
사슴을 쫓으면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켜쥐면 사람을 보지 못하며
나무 끝을 살피는 사람은 수레의 섶나무를 보지 못하니,
마음이 전심하는 게 있어 눈은 다른 곳에 미칠 겨를이 없는 것이다.
其好事而有力者,
일을 벌이길 좋아하는 힘 있는 사람은
踰關津卜田里,
관문과 나루를 건너고 밭과 마을을 점유하고서
規規於丘壑之遊, 自以爲高,
언덕과 골짜기에서 정신을 놓고 유람하면서 스스로 고상하다 여기지만,
康樂之開道, 小民之所驚;
강락【강락(康樂): 남조(南朝) 송(宋) 나라의 사령운(謝靈運)으로, 지방의 수령이 되어 산수가 좋은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군을 동원해 길을 닦으니, 백성들이 도둑인 줄 알고 놀랐다고 한다.】이 길을 개척하니 백성들이 놀랐고
許氾之問舍, 豪士之所諱,
허범【허범(許氾): 유비(劉備)와 당시의 인물들을 평가할 때, 진등(陳登)에 관해 헐뜯자, 유비는 “그대는 국사(國士)의 이름이 있는데, 세상을 구제할 마음은 갖기 않고 밭이나 구하고 집값이나 물으러 다니니, 이것이 진등이 꺼리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는 ‘호걸스런 선비=진등’이다.】이 집을 물으니 호걸스런 선비가 꺼렸으니,
又不若不爲之爲高也
또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 고상해지는 것만도 못한 것이다.
개성 근처에 만든 운금루
京城之南有池, 可方百畝,
서울성의 남쪽에 연못이 있으니 사방 백묘라 할 수 있고,
環而居者, 閭閻煙火之舍,
에워싸 거주하는 것은 백성들의 밥불 때는 집으로
鱗錯而櫛比,
비늘처럼 교차하고 즐비하여
負戴騎步, 道其傍而往來者,
지고 이고 타고 걸으며 곁에 다니며 왕래하는 사람들이
絡繹而後先.
연이어져 뒤서거니 앞서거니 한다.
豈知有幽奇閑廣之境,
어찌 그윽하고 기이하며 한가하고 광활한 경지가
迺在其間耶?
어찌 그 사이에 있음을 알리오?
後至元丁丑夏, 荷花盛開,
후지원 정축(1337)년 여름에 연꽃이 만개했을 때
玄福君權侯見而愛之, 直池之東,
현복군 권겸(權謙)이 보고서 즉시 연못의 동쪽의
購地起樓.
땅을 구입하고서 누각을 세웠다.
倍尋以爲崇, 參丈以爲袤,
2배는 높이로 삼았고 3장은 길이로 삼아
不礎而楹, 取不朽;
주축돌이 없이 기둥을 세운 건 썩지 않는 걸 취한 것이고
不瓦而茨, 取不漏.
기와 없이 띠풀을 엮은 건 세지 않는 걸 취한 것이다.
桷不斲, 不豐而不撓;
서까래는 깎지 않아 풍성하지도 않았어도 휘지 않았고
堊不雘, 不華而不陋.
백토를 바르고 적황색 찰흙을 바르지 않아 화려하진 않아도 누추하지도 않았다.
大約如是.
대략이 이와 같다.
而一池之荷, 盡包而有之.
그러나 한 연못의 연꽃을 모두 포괄하여 소유하고 있다.
於是請其大人吉昌公與兄弟姻婭,
이에 아버지 길창공과 형체와 사돈을 초청하여
觴于其上, 怡怡愉愉,
누각 위에 술상을 차리고 기쁘게 즐겁게 노니
竟日忘歸.
하루가 마치는 데도 돌아가는 걸 잊을 정도였다.
子有能大書者, 使之書雲錦二字,
아들 중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운금’ 두 글자를 쓰게 하여
揭爲樓名
걸고서 누각의 이름으로 삼았다.
가까이 있지만 최상의 명승지라 할 만한 운금루
余試往觀之, 紅香綠影,
내가 시험삼아 가서 그걸 보니 붉은 향기와 푸른 그림자가
浩無畔岸,
넓어 언덕의 끝이 없는데
狼藉風露, 搖曳煙波,
낭자한 바람과 이슬에 연기와 물결이 끌려드니,
可謂名不虛得者矣.
명불허전이라 할 만했다.
不寧惟是?
어찌 이것 뿐이겠는가?
龍山諸峯, 攢靑抹綠,
용산의 모든 봉우가 푸른색을 모으고 녹색을 바르며
輻輳簷下, 晦明朝夕,
처마 밑으로 모여들어 저물 때나 밝을 때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每各異狀.
매번 각각 다른 형상이다.
而嚮之閭閻煙火之舍, 其面勢曲折,
백성집의 밥불 때는 집을 향하니 형세의 자세한 것들은
可坐而數,
누각에 앉아서도 셀 수 있을 정도이고
負戴騎步之往來者, 馳者休者顧者招者,
지고 이고 타고 걸어 왕래하는 사람과 달리는 사람과 쉬는 사람과 돌아보는 사람과 부르는 사람과
遇朋儔而立語者,
벗을 만나 서서 말하는 사람과
値尊長而趨拜者,
벼슬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이를 만나 달려가 절하는 사람은
亦皆莫能遁形而望之可樂也.
또한 모두 모습을 감출 수 없어 바라보며 즐길 만했다.
在彼則徒見有池, 不知有樓,
저기에 있으면 다만 연못만 보이고 누각이 있음은 알지 못하는데
又安知樓之有人.
또한 어찌 누각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겠는가.
信乎登臨之勝, 不必在僻遠,
참이로구나! 올라 굽어보는 명승지는 구태여 궁벽하거나 먼 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而朝市之心目, 邂逅而莫之知有也.
조정과 저자에 마음과 눈이 쏠려 해후해도 있는 걸 알지 못한다는 것을.
抑亦天作地藏, 不輕示於人耶.
아니면 또한 하늘이 짓고 땅이 감춰 경솔하게 사람에게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인가.
누각의 정취를 자신만 누리지 않고 함께 누리다
侯腰萬戶之符, 席外戚之勢,
권겸은 만호의 부절을 허리에 차고 외척의 권세를 깔고서
齒不及古人強仕之年.
나이는 옛 사람이 벼슬해도 된다던 40살이 되지도 않았다.
宜於富貴利祿, 寢酣而夢醉,
부귀와 이록에 마땅하여 취한 채 잠자고 취한 채 꿈을 꿀 때인데도
乃能樂乎仁智之所樂,
곧 인자와 지자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지만,
不見驚于民, 不見諱于士.
백성들을 놀래키지 않고 선비들을 꺼리게 하지 않는다.
而奄有幽奇閑廣之境於市朝心目之所不及,
그리고 저자와 조정사람들이 마음과 눈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그윽하고 기이하며 한가롭고 광활한 땅을 전부 소유하고【엄유(奄有): 전부 소유하다란 뜻이다.】
樂其親以及於賓, 樂其身以及於人,
어버이를 즐겁게 함으로 빈객에 미치고 자신의 몸을 즐겁게 함으로 남에게 미치니
是可尙也已. 益齋居士某, 記. 『益齋亂稿』 卷第六
이것이 가상한 일이구나. 익재거사 아무개가 기를 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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