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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7. 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7. 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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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소화시평권상 97정사룡고경명은 시를 통해 백제 멸망의 스산함을 간직한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그 감회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것을 영사시(詠史詩)라고 하며 그 대표작으론 이규보동명왕편(東明王篇)이 있다.

 

나 또한 단재학교에 신입교사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3명의 아이들과 부여여행을 떠났었다. 첫째 날엔 정림사지와 부여박물관을 돌아보며 백제의 역사를 곱씹었고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후에 둘째 날엔 부소산성과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백제의 최후를 간접 경험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사룡의 시나 고경명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슴 절절한 아픔은 없었다. 우리에겐 이미 너무 머나먼, 그래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마냥전설 정도로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두 사람이 백마강을 둘러보며 울분을 토하는 장면에선 살짝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또한 시를 쓸 때의 마음은 완벽히 역사적 사실에 자신을 놓아두고 그것에 흠뻑 몰입했다는 걸 알고 있다. 글을 짓는다는 건 그 상황을 더욱 깊이 있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정사룡 시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느낌으로는 멸망한 백제를 아쉬워하고 있다정도는 알겠는데, 도무지 뭘 말하고 있는지를 알진 못했기 때문이다.

 

 

부소산성 앞에서 영익이와 함께.

 

 

 

別酒澆胸未散愁 이별주를 가슴에 부어도 근심은 사라지지 않고
野橋分路到江頭 들판의 다리 길을 나누면서 강어귀에 이르렀구나.
城池坐失溫王險 성의 해자(垓字)는 앉은 채로 온조왕의 험고함을 잃어버려서
圖籍曾聞漢將收 지도와 호적을 일찍이 듣기론 중국 장수인 소정방이 수습했다지.
花萎尙傳崖口缺 꽃이 떨어진 것(삼천궁녀)은 오히려 벼랑 입구의 틈에 전해지고,
龍亡猶認釣痕留 용이 없어진 것은 오히려 낚시하던 흔적이 남아서 알 수 있다.
寒潮强學靈胥怒 차가운 조수는 영서의 분노를 애써 배웠는지,
亂送驚濤殷柁樓 어지러이 놀란 물결을 배에 거세게 보내주는 구나.

 

1구의 의미는 해석하는 순간 분명해졌다. 술이란 시름을 떨쳐내기 위한 것인데, 가슴 속에 울분이 쌓여 있으면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진 않고 근심은 더욱 선명해져 간다. 바로 이런 느낌을 담아낸 것이니 어렵지 않다.

 

하지만 2구에 가면 갑자기 강 이야기가 나오고 다리 이야기가 나온다. 난 바로 여기서부터 이해가 되지 않아 손발을 다 들었었다. 강이라 하면 당연히 백마강일 텐데 거길 가로지르는 다리가 그 당시에 건설되어 있었다는 걸까? 도무지 아리송했는데 교수님이 확실히 알려준다. 그건 바로 선착장이라고 말이고 시인은 2구에서 선착장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거라는 걸 말이다. 이래서 한시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는 다리라는 뜻이 원의미지만 문맥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해야 하니 말이다. 가장 황당했던 건 권상 102에서 지천의 시를 하며 3구에 분명히 간다[]’라는 한자가 있음에도 맥락에 따라 전혀 반대의미인 온다로 해석해야 하다는 부분이었다. 이래서 산문이든 한시든 맥락을 잘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래도 3~4구는 해석은 틀렸지만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2구에서 선착장에 도착한 정사룡은 배를 타고 백마강을 돌아보며 그 감회를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저 튼튼한 성곽으로도 나라를 빼앗긴 상황, 그리고 그렇게 지도와 호적을 당나라 군대에게 모조리 강탈당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역시나 바로 5~6구에서 또 난관에 부딪혔다. 꽃이 나오고 용이 나오니, 이건 이색의 부벽루(浮碧樓)나 백광훈의 홍경사(弘慶寺)에서 보던 것처럼 자연의 유상함과 인간 세상의 무상함을 표현한 말인가하는 정도의 생각만이 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단 여기선 본격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서술했다고 하더라. 꽃이 떨어졌다는 것은 삼천궁녀가 떨어진 낙화암이란 역사사실을 말한 것이고, 용이란 소재는 바로 백제를 멸망시킨 뒤 총지휘관인 소정방이 용을 잡았다던 조룡대(釣龍臺)를 말한 것이다. , 이 두 구절을 해석할 수 있으려면 역사적인 상식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얘기다.

 

寒潮强學靈胥怒 亂送驚濤殷柁樓
초반 해석 수정 후
백마강을 애써 돌아보는 자기에 대해 영서가 화를 내며 은근히 물결을 보내준다. 영서의 분노를 애써 배운 조수는 어지러이 놀란 물결을 우리의 배에 거세게 보내준다.

 

, 여기서의 핵심 한자는 은()이라 할 수 있다. 이 한자를 성대하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난 전혀 그런 뜻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경창의 시는 해석이 무척 어려웠지만 내용을 알고 보니 무얼 말하고 싶은지 분명히 드러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서글픈 감정, 쓸쓸한 느낌을, 울분 같은 것을 여지 없이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꽃과 용을 통해선 역사적 의미를 드러냈고 거센 조수를 통해선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인용

목차

상권 목차

하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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