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봉(李玉峰, ?~?)은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옥봉(玉峰)은 그의 호(號)다. 옥봉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이봉(李逢)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조원(趙瑗)의 소실(小室)이 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직전 35세를 전후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시는 대부분 산일(散逸)되었으나 조원(趙瑗)의 현손(玄孫)인 조정만(趙正萬)이 편한 『가림세고(嘉林世稿)』 편말(編末)에 수록되어 있는 「옥봉집(玉峰集)」에 32수가 전하고 있다. 『가림세고(嘉林世稿)』는 조원(趙瑗)ㆍ조희일(趙希逸)ㆍ조석형(趙錫馨) 등 삼대(三代)의 시문 3권과 옥봉의 시로 편차되어 있다.
허균(許筠)은 옥봉의 시를 맑고 굳세며(淸健ㆍ淸壯) 여성의 화장기가 없어 가작이 많다고 평가하였으며 신흠(申欽)과 홍만종(洪萬宗)도 옥봉이 시문에 능하여 난설헌(蘭雪軒)과 더불어 조선 제일의 여류 시인이었다고 고평을 아끼지 않았다. 옥봉의 시는 주로 별한과 연정을 여성적인 섬세한 필치로 호소하듯 읊은 것이 많다. 별한의 애절함을 적실하게 표현한 「규정(閨情)」은 다음과 같다.
有約來何晩 庭梅欲謝時 | 기약하고 어찌 그리 돌아오지 않는가? 뜰에 핀 매화도 때 지나 지려하네. |
忽聞枝上鵲 虛畵鏡中眉 | 홀연히 가지 위의 까치 소리에 부질없이 거울 속의 눈썹 그리네. |
매화 필 때 만남을 약조했으나 매화가 지려해도 님은 오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나무에서 까치가 우짖자 행여 님이 오시지나 않을까 하는 설레임에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해본다는 것이다. 님과의 재회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님을 위해 단장하는, 고우면서도 애절한 여심(女心)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매력은 결구(結句)의 허자(虛字)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다음은 「자적(自適)」이다.
虛簷殘滴雨纖纖 | 빈 처마에 가는 낙수물 부슬부슬 비 내리는데 |
枕簟輕寒曉覺添 | 베개자리 찬 기운은 새벽에 점점 더하네. |
花落後庭春睡美 | 꽃지는 뒤뜰에 봄 잠이 달콤한데 |
呢喃巢燕要開簾 | 지지배배 제비 소리에 주렴을 걷네. |
봄의 한복판에서 규방을 홀로 지키는 외로움을 읊조리고 있으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있는 작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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