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민탄을 평가한 허균과 이덕무
어무적의 「유민탄(流民歎)」은 당시 유민을 바라보고, 비통해하며 지은 시이다.
너희 가난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이 고통스러운데, 나는 구제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고, 저들 벼슬아치들은 너희를 구제할 힘은 있는데 마음이 없다. 못된 지방수령이나 왕명을 받들고 서울에서 나오는 무책임한 관인(官人)인 소인(小人)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군자다운 자세를 지니게 하여 백성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경청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조정에서 임금의 교지가 내려와 보아야 이것을 실천할 목민관이 없으니, 임금의 조서는 빈 종이나 다름없다. 특별히 암행어사를 보내 보아야 백성은 집 밖으로 나올 기력이 없으니, 어느 틈에 속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전설적인 목민관인을 다시 살려내어 아직 죽지 않은 백성들이나마 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겠다.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조선 최고의 고시라고 격찬하며 어무적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싣고 있다.
“양경우(梁慶遇)가 일찍이 나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칠언고시를 누가 잘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어떤지 잘 모르겠소.’하고 대답하니, 양경우가 박(朴)ㆍ이(李)의 잠두(蠶頭)는 어떤지 차례로 물어 왔다. 내가 대답하기를, ‘한퇴지(韓退之)에서 나왔으나 한 사람은 억세고 한 사람은 번거로우니 그 지극한 것은 아니다.’고 하니,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진양형제도(晉陽兄弟圖)」와 충암(沖庵) 김정(金淨)의 「우도가(牛島歌)」는 어떤지 물었다. ‘대답하기를, 「진양형제도」는 굉휴(宏烋)하나 막힘이 있고 「우도가」는 기이하나 음침하다.’고 하니, ‘그렇다면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겠느냐?’라 하기에 대답하기를, ‘잠부(潛夫) 어무적(魚無迹)의 「유민탄(流民歎)」과 이익지(李益之)의 「낭만무가(漫浪舞歌)」일 것이오.’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시로 본다면 기재(奇才)가 그대들 가운데서 많이 나왔소. 하니, 그 역시 크게 웃었다[梁慶遇嘗問於余曰: “我國七言古詩孰優?” 曰: “未知何如.” 慶遇歷問朴ㆍ李蠶頭如何? 曰: “出韓而或悍或穠, 非其至也.” 問: “訥齋「晉陽兄弟圖」, 沖庵「牛島歌」如何?” 曰: “「晉陽」傑而滯, 「牛島」奇而晦.” 然則屬誰? 曰: “魚潛夫「流民歎」, 李益之「漫浪舞歌」也.” 因曰: “以詩觀之, 則奇才多出於君輩也.” 渠亦大笑].”
그리고 이덕무(李德懋)는 『청비록(淸脾錄)』에서, “어무적의 자는 잠부(潛夫)이다. 그의 「신력탄」이란 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나의 소원은 삼만 육천 날을, 인간의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 만드는 것. 봄꽃 한 번 피어 일 년간 붉고, 가을 달 한 번 비춰 일 년간 하얗다면, 요순도 아직까지 젊었을 것이고, 주공도 아직까지 머리 검어서, 아침엔 토계 위의 우불[임금과 신하가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하여 조정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좋은 말은 찬성하고 부당한 말은 반대하는 소리를 말한다]의 소리 듣고, 저녁엔 행단(杏壇)[壇의 이름,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유지(遺址)로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의 성묘(聖廟) 앞에 있다] 옆에서 현송 모습 볼 텐데. 내가 일찍이 듣건대, ‘백로국(白露國)은 집집마다 모두 성현(聖賢)이고 땅을 파면 금과 은이 나오며, 갠 날이 많고 비 오는 날이 적으며 풍년은 있고 흉년은 없다.’하므로, 머리를 들고 바라면서 낙토라고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잠부의 시를 읽고서야 비로소 백로국 역시 우언(寓言)으로서 화서(華胥)ㆍ괴안(槐安, 화서는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옛날 황제(黃帝)가,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고 있었는데, 낮잠을 자다가 꿈에 화서 나라에 가서 그 나라가 아주 태평하게 다스려지는 것을 구경했다.’는 고사이고, 괴안은 개미의 나라인데, 이공좌(李公佐)의 「남가기(南柯記)」에, ‘당(唐)나라 순우분(淳于棼)이 느티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다가 꿈에 개미의 나라에 가서 남가태수(南柯太守)가 되어 영화를 누렸다.’는 우화(寓話)에서 온 말이다]과 같은 류(類)라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魚無迹字潛夫, 『新曆歎』曰: “我願三萬六千日, 判作人間兩朝夕. 春花一吐一年紅, 秋月一照一年白. 堯舜至今顔尙韶, 周孔至今頭尙黑. 朝聞吁咈土階上, 暮見絃誦杏壇側.” 余甞聞白露國, 比屋皆聖賢, 掘地則金銀, 多晴少雨, 有豊無凶, 未甞不翹首相望, 以爲樂土. 及讀潛夫詩, 始疑白露國, 亦寓言, 若華胥ㆍ槐安之類也.].”라 말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288~29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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