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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양화 - 7. 반역에 성공한 필힐이 공자를 초빙하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 양화 - 7. 반역에 성공한 필힐이 공자를 초빙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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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반역에 성공한 필힐이 공자를 초빙하다

 

 

佛肹, 子欲往.

, 音弼. , 許密反.

佛肹, 大夫氏之中牟宰也.

 

子路: “昔者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爲不善者, 君子不入也. 佛肹中牟, 子之往也, 如之何!”

子路佛肹之浼夫子, 故問此以止夫子之行. , 猶自也. 不入, 不入其黨也.

 

子曰: “. 有是言也. 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 力刃反. , 乃結反.

, 薄也. , 染皁物. 言人之不善, 不能浼己.

楊氏曰: “磨不磷, 涅不緇, 而後無可無不可. 堅白不足, 而欲自試於磨涅, 其不磷緇也者, 幾希.”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 於虔反.

, 瓠也. 匏瓜繫於一處而不能飮食, 人則不如是也.

張敬夫: “子路昔者之所聞, 君子守身之常法. 夫子今日之所言, 聖人體道之大. 然夫子於公山佛肹之召皆欲往者, 以天下無不可變之人, 無不可爲之事也. 其卒不往者, 知其人之終不可變而事之終不可爲耳. 一則生物之仁, 一則知人之智也.”

 

 

 

 

해석

佛肹, 子欲往.

필힐이 부르자 공자께서 가려 하셨다.

, 音弼. , 許密反.

佛肹, 大夫氏之中牟宰也.

필힐은 진나라 대부로 조간자(趙簡子)의 중모 땅의 읍재다.

 

子路: “昔者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爲不善者, 君子不入也. 佛肹中牟, 子之往也, 如之何!”

자로가 옛날에 제가 선생께서 친히 그 몸에 불선을 한 사람은 군자가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필힐은 중모땅으로 배반했는데 공자께서 가려고 하는 건 어째서입니까?”라고 말했다.”

子路佛肹之浼夫子,

자로는 필힐이 부자를 더럽힐까 걱정되었기 때문에

 

故問此以止夫子之行.

이것을 물어 부자가 가려는 걸 저지한 것이다.

 

, 猶自也. 不入, 不入其黨也.

()은 스스로란 말과 같다. 불입(不入)은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논어’ ‘양화(陽貨)’의 제7장이다. 5과 마찬가지로 공자의 행적이 시대와 잘 맞지 않는다. 후대의 찬입(竄入)인지 모른다. 하지만 두 장()에는 공자의 구세(救世)의 뜻이 잘 드러나 있다. 5장에서는 노()나라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읍(費邑)을 근거지로 삼아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자 가려고 했다. 자로(子路)가 따지자 공자는 노()나라에 서주(西周)의 도를 일으키겠노라는 뜻을 밝혔다.

이 장에서는 진()나라 대부(大夫) 조간자(趙簡子)의 가신인 필힐(佛肹)이 중모(中牟)를 근거지로 삼아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자, 공자가 가려고 했다. 이번에도 자로(子路)가 반대하여 위와 같이 말했다. 노나라 애공(哀公) 5, 공자의 나이 63세 때 일이라고 한다.

자로(子路)는 스승의 옛 가르침을 입론(立論)의 근거로 삼았다. ‘양화(陽貨)’ 4에서 자유(子游)가 예악(禮樂)을 통해 무성(武城)을 다스리는 이유를 말하면서 공자의 옛 가르침을 외웠던 화법과 같다. ()는 자로의 이름이다. 문저부자(聞諸夫子)의 저()는 왈() 이하를 가리킨다. 군자불입(君子不入)은 불선(不善)을 행한 자의 나라, 가문이나 당()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산불요는 계씨를 배반하고 필힐은 조간자를 배반했지 나라를 배반한 것이 아니므로 공자가 그들에게 가려고 한 것은 명분에 어긋나지 않는다. , 불선(不善)을 행하는 자의 당()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한 가르침은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구세(救世)의 실천을 위해 공자가 진퇴(進退)에 고심한 사실을 우리는 새겨 보아야 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子曰: “. 有是言也. 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 말을 했었지. 견고하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갈아도 얇아지지 않으니. 희다하지 않겠는가,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 力刃反. , 乃結反.

, 薄也. , 染皁物.

()은 얇다는 것이다. ()은 검은 물을 들이는 물건이다.

 

言人之不善, 不能浼己.

남의 불선함이 나를 더럽힐 수 없음을 말한다.

 

楊氏曰: “磨不磷, 涅不緇,

양시(楊時)가 말했다.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은 후에

 

而後無可無不可.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

 

堅白不足, 而欲自試於磨涅,

견고함과 흰 것이 부족한데도 스스로 갈고 물들이는 것에 시험하려 한다면,

 

其不磷緇也者, 幾希.”

얇아지지 않고 검어지지 않는 것은 거의 드물다.”

 

()나라 대부(大夫) 조간자(趙簡子)의 가신인 필힐(佛肹)이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자 공자가 가려고 했다. 이때 자로(子路)가 반대하면서 공자가 불선(不善)을 행하는 자의 당()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가르쳤던 말을 외웠다. 공자는 자신이 이전에 그러한 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유시언야(有是言也)는 그런 말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말은 수행하는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덕을 온전히 갖춘 군자는 불선인(不善人) 속에 던져지더라도 그들에게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선도(善導)할 수 있다.

공자는 속담을 인용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전했다. 진정으로 단단한 것을 말할 때 아무리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고 하고, 진정으로 흰 것을 말할 때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는 속담이다. 불왈견호(不曰堅乎)와 불왈백호(不曰白乎)는 반어법이다. ()은 조금씩 닳아 얇아짐이다. ()은 물속에 있는 검은 흙인데 검게 물들임이다. ()는 검은색인데 검게 물든다는 말이다.

조선 후기의 오재순(吳載純)40년간 사용한 석우(石友), 곧 벼루에 명()을 새겨 벼루의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미덕을 찬양하면서 견정(堅貞)을 고수하는 정신경계를 표명했다. ‘갈아도 닳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공자의 말에서 차용해 왔다. 그의 아들은 그 글을 벼루에 새겨 부친의 관 오른편에 함께 매장해서 부친의 자찬묘지(自撰墓誌)로 삼았다.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 덕이 군자의 이상이다. 불선인(不善人)을 멀리 해야겠지만 불선인(不善人)의 사이에 들어가더라도 그들을 선도(善導)할 수 있는 적극적 실천가가 군자인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내가 어찌 박이겠는가? 어찌 한 곳에 매달려 있어 먹지 않겠는가?”

, 於虔反.

, 瓠也.

()는 박이다.

 

匏瓜繫於一處而不能飮食, 人則不如是也.

박과 오이는 한 곳에 매여 마시고 먹지 못하니, 사람은 이와는 다르다.

 

張敬夫: “子路昔者之所聞, 君子守身之常法.

장경부가 말했다. “자로가 옛날에 들었던 것은 군자가 몸을 지키는 일상의 법이다.

 

夫子今日之所言, 聖人體道之大.

부자가 오늘 말한 것은 성인이 도를 체현한 큰 권도다.

 

然夫子於公山佛肹之召皆欲往者,

그러나 부자가 공산불요와 필힐의 부름에 모두 가려고 했던 것은

 

以天下無不可變之人, 無不可爲之事也.

천하에 바뀌지 않을 사람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其卒不往者,

그러나 마침내 가지 않은 것은

 

知其人之終不可變而事之終不可爲耳.

그 사람이 끝내 변할 수 없고 일이 끝내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一則生物之仁, 一則知人之智也.”

하나는 물건을 낳는 인이고 하나는 남을 알아보는 지혜다.”

 

()나라 대부(大夫) 조간자(趙簡子)의 가신으로서 반란을 일으킨 필힐(佛肹)이 공자를 부르자 공자는 가려고 했다. 하지만 자로(子路)가 반대하자 군자는 불선인(不善人) 속에 던져지더라도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그들을 선도(善導)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반어와 비유의 표현을 통해 세상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곧 뒤웅박은 먹지 못할 식물이므로 한곳에 매여 있지만 나는 먹을 수 있는 식물과 같아서 동서남북으로 갈 수 있기에 한 곳에 매여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기(吾豈)와 언능(焉能)은 모두 반어법의 표현이다. 포과(匏瓜)는 별자리라는 설도 있지만 뒤의 어구로 보아 뒤웅박 설이 옳다. 뒤웅박이 매달린 채로 있다는 표현은 주역정괘(井卦)에서 우물이 깨끗한데도 먹어주지 않는다[井渫不食].’고 한 것이나 정괘(鼎卦)에서 꿩의 맛있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雉膏不食].’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재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함을 비유한다. 그래서 포계(匏繫)라고 하면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하고, 포계지탄(匏繫之歎)이라 하면 재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말이 된다.

군자의 출처진퇴(出處進退)에는 경법(經法)과 권도(權道)가 있다. 공자는 이전에 직접 그 몸에 불선(不善)을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군자가 그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경법(經法)을 밝힌 것이다. 공자가 필힐의 부름에 가려고 했던 것은 천하에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이 없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니, 큰 권도(權道)를 따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필힐이 끝내 변화될 인물이 아니고 옳은 일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결국 가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권도(權道)를 실행한다면서 불선(不善)을 저지르는 자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오만이요 기만이다. 성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권도를 운위할 수 있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편해 / 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권필의 忠州石 效白樂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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