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결론
본고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활동했던 백악시단을 대상으로 그들의 시론과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조선후기 한시사가 보여주었던 다양한 변화의 실상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고가 백악시단을 주목한 것은 그들의 시론과 작품이 보인 특징적 면모들이 조선후기 한시사의 다양한 변화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이들이 조선후기 한시의 다양한 변화들을 선도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존재는 인정되나 동인으로서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백악시단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백악시단은 ‘진시(眞詩)’ 창작을 목표로 17세기 후반인 1682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18세기 중반을 전후로 활동이 약해진 문인 그룹으로서 김창협, 김창흡, 홍세태, 조정만, 김창업, 김시보, 이해조 등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전기 백악시단과 이병연, 조유수, 권섭, 김영행, 이병성, 이하곤, 박태관, 신정하, 김시민, 안중관, 김부현, 정내교 등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후기 백악시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사우(師友), 인척(姻戚) 관계로 맺어진 결속력 높은 문학 동인(同人)으로서 『시경(詩經)』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민멸(泯滅)된 시도(詩道)를 진작하겠다는 높은 이상을 견지하고 있었다. 백악시단의 이러한 이상은 시를 단순히 교양의 차원에서 사고하거나 필력 과시의 수단으로 여기던 전대 시단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백악시단은 시학(詩學)도 도학(道學)의 수준까지 궁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활발한 동인 활동을 통해 시론을 정비하고, 정비된 시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을 실천하였으며, 비평을 통해 작품의 성취를 공유해 나갔다. 본고는 백악시단의 이러한 문학 활동을 ‘운동’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백악시단의 ‘진시’가 산생하게 된 학술적 기저(基底)와 시론을 살펴보았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폭넓은 독서와 자득(自得)의 학문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자학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주자학을 묵수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적 성과에 개방적인 학문 자세를 보였다. 특히 중시한 것은 폭넓은 공부를 통해 자득(自得)한 견해를 갖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자득(自得)한 것이라야 진짜[眞]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학문 정신은 백악시단의 ‘진시’ 창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창작에 있어 자득한 식견을 근본으로 삼고 자득한 바를 개성적으로 창작에 구현하려 하였다.
백악시단의 ‘진시’론은 전범의 재현을 복고의 방편으로 삼은 결과 작가의 개성이 사라져버린 전대 복고파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백악시단이 보기에 복고파의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을 통해 발양되어야 할 작가의 정신은 사라져버리고 전범의 언어나 분위기만을 가져다가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었다. 백악시단은 그런 복고를 ‘가짜’ 복고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백악시단이 전범에 대한 학습을 경시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학시(學詩)와 창작(創作)에 있어 모두 정신적 측면을 중시하였다. 이들은 학시(學詩)에 있어서는 시어나 수사 차원의 모의(模擬)를 지양하고, 전범에 내재한 작가의 정신을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고, 창작에 있어서는 자득한 바를 자가(自家)의 언어로 표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학문과 수양을 중시하였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진시인(眞詩人)이 만유(萬有)와의 교감에서 얻은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진실하게 담아낸 시’라 정의할 수 있는데, ‘진시인(眞詩人)’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높은 정신적 경지를 갖춘 작가를 의미한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이처럼 주체의 고원(高遠)한 역량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졌는데, 이는 도(道)와 문(文)은 하나라는 주자학의 문학관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주자학에 입각하여 정신성을 강조하는 백악시단의 ‘진시’론은 명대 복고파와 공안파의 ‘진시’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명대 복고파는 천지자연의 소리라는 입장에서 민간의 노래를 ‘진시’라고 여겼다. 복고파는 민간 노래에 담긴 ‘진(眞)’을 구현하기 위해 근체시에서 고시(古詩)로, 고시에서시경시(詩經詩)에 이르기까지의 복고(復古) 학습을 통해 전범이 지닌 법(法)을 깨우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명대 복고파의 법(法)은 그들이 문학을 구속한다고 여겼던 사상을 떼어버린 결과 수사 원리로 축소되었고, 법(法)을 절대화할수록 그들의 복고는 형식적, 수사적 복고로 흘러갔다. 명말의 공안파는 복고파의 형식적 복고를 표절(剽竊)이라 비판하면서 ‘진시’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고금(古今)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 논리를 통해 복고파의 복고 당위성을 전복하고 작가의 성령(性靈)에서 우러나오는 시야말로 ‘진시’라고 주장하였다. 공안파의 ‘진시’는 양명좌파의 심학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흉중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 욕망까지도 시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고 여겼다.
폭넓은 독서를 통해 명대 문단의 추이를 통효(通曉)하고 있었던 백악시단은 주자학에 입각하여 명대 복고파와 공안파의 문학론을 장단취사(長短取捨)하였다. 백악시단은 명대 복고파처럼 고(古)를 추구해야할 이상적 경지로 상정하면서도 복고파가 전범에 대한 수사적 재현을 통해 고(古)를 실현하려 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또한 공안파가 제시한 고금(古今)의 현실적 차이에 대해 동의하고 진실한 감정을 시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 수긍했지만 공안파의 진정(眞情)이 검속함이 없는 데 이른 것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렇듯 백악시단의 ‘진시’론은 주자학을 토대로 명대 문학론을 통섭함으로써 자득한 시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백악시단은 ‘진시’ 창작을 위해 그 핵심이론인 천기론(天機論)을 본격화하였다. 천기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성리학의 체계로 흡인된 용어로 ‘천리(天理)의 유행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백악시단은 이런 성리학적 천기 관념을 문학론으로 발전시켰다. 백악시단의 천기론은 창작의 필연적 두 계기인 대상과 주체의 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백악시단은 대상의 측면에서는 대상에 오묘하게 발현된 천기와 조우하고 그것을 통해 천리(天理)를 체인하려 하였고, 주체의 측면에서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 천부의 인격 상태에 도달한 주체를 상정하였다. 그리고 천부의 인격 상태에 도달한 주체가 만유와의 교감 속에서 자신의 사유와 정감을 진실하게 드러낸 시를 ‘진시’라 하였다. 시론으로서의 천기론은 종래의 성정론과 상합(相合)하여 다채로운 창작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로 종래의 성정론이 창작 주체의 측면에 강조점을 둔 것에 비해, 천기론은 대상의 측면까지 포괄함으로써 시적 대상 그 자체의 의의를 한층 강화하였다. 천기론은 대상을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경계 대상이 아니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탐구 대상으로 전환하는 논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백악시단은 창작에 있어 대상과의 실제적인 교감을 통해 대상의 진면목을 포착할 것을 중시하였고, 그것을 통해 시적 대상은 한층 더 핍진한 형상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천기론은 천부의 본연한 마음으로 대상과 교감하고 거기서 발현된 사유나 정감을 꾸밈없이 형상화할 것을 주문함으로써 진솔한 창작을 중시하게 하였다.
세 번째로 천기론은 천차만별인 창작주체의 인식이 작품을 통해 진실하게 발현되어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문학상의 개성을 중시하게 하였다.
백악시단은 이상의 시론을 실제 창작을 통해 구현하였다. 산수를 천기 조우의 장으로 여겼던 백악시단은 열정적인 산수 유람을 통해 산수의 진면목을 형상화하였다. 전대 산수시가 대상 산수 그 자체보다는 산수에서 느낀 작가의 흥취를 위주로 하여 대상 산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데 비해, 백악시단의 산수시는 한층 더 밀착된 산수와의 교감을 형상화하여 산수는 산수 자체로 빼어난 형상을 전달할 수 있고, 작가는 그곳에서의 실감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민생(民生)을 형상화한 작품들에서도 백악시단은 민생의 현장에 한발 더 밀착해 들어갔다. 그래서 백악시단은 자신들이 천민(天民)으로 여겼던 민의 삶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상화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민생의 현장에 한발 더 밀착해간 백악시단은 전통적 애민시의 시각을 벗어나 민생 자체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를 통해 민(民)의 삶은 현실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질박하지만 정감 있고 자신들의 세계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생력을 지닌 존재로 그려질 수 있었다. 한편, 자신들의 일상을 형상화하면서는 처정(處靜)한 일상에서 대상 경물과의 정신적 소통을 매개로한 이지적(理智的)이고 한아(閒雅)한 흥취를 담아내었다. 또한 일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면서는 누구나 공감하며 울고 웃을 수 있는 진정(眞情)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형상화하였다. 특히, 비근하게 여겨졌던 웃음을 인간미 넘치는 풍류로 형상화하면서 진정(眞情)의 폭을 확대시켰다. 이처럼 백악시단의 ‘진시’는 심오한 철리(哲理)로부터 해학적 웃음을 담은 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는데, 이러한 다양성의 근저에는 도덕과 예술이 하나의 경지로 고양(高揚)되는 유가(儒家) 전통의 심미이상(審美理想)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백악시단의 시론과 작품은 당대와 후대 문인들에게 많은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 대상의 의의를 중요하게 설정했던 천기론은 물성(物性)에 대한 더욱 섬세한 고찰과 형상화로 이어졌으며, 민생의 삶을 주목했던 시편들은 민요풍 한시와 이른바 ‘조선시(朝鮮詩)’로 발전하였다. 또한 백악시단의 ‘진시’ 가운데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작품들은 서얼과 여항인들에게 호응을 얻어 자신들의 불우한 세계인식을 표출하는 모범이 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시풍은 후대 문인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비판의 핵심은 백악시단이 중시했던 창작주체의 역량이 사상(捨象)되었다는 점에 있었는데, 이러한 비판은 창작주체의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 시론 자체의 한계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그러나 백악시단의 ‘진시’ 창작을 위한 일련의 문학행위는 백악시단이라는 일군(一群)의 동인들이 민멸(泯滅)한 시도(詩道)를 진작(振作)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바탕으로 ‘진시’ 창작을 위한 시론을 정비하고, 부단한 시작(詩作)을 통해 창작상의 뚜렷한 성취를 이루었으며, 후배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 조선후기 한시의 쇄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학 운동으로 조명받기에 충분하였다.
이상이 본고가 파악한 백악시단의 ‘진시’와 ‘진시운동’의 실상이다. 본고가 ‘실상’을 내세운 것은 그간의 연구가 시론이나 작품에 나타난 참신한 변화상 만을 주목하고, 그러한 변화를 추동시킨 문학사상에 대한 고려를 소략히 함으로써 당대인의 지향점과 오늘날의 해석이 일정하게 괴리되었다는 비판적 이해에 의한 것이다. 특히 그간의 연구는 조선후기의 의미 있는 변화를 탈주자학의 입장에서 고구(考究)하였는데, 본고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연구시각은 당대의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주자학의 우주론을 문학론으로 전화시킨 천기론은 대상성, 일상성, 진실, 개성 등과 같은 키워드가 보여주는 조선후기 한시의 핵심적 변화를 추동하였다. 이 점은 조선후기 한시가 보인 변화상이 탈주자학의 입장에서 모색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견고한 주자학의 토대 위에서 인출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고가 백악시단의 시론과 작품을 통해 그 근저에 자리한 주자학을 주목한 것은 주자학을 만능(萬能)의 사상으로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본고가 백악시단의 ‘진시운동’이 지닌 사상적 측면을 중시한 것은 그것이 실상에 보다 가깝게 근접하는 요로(要路)이기 때문이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주자학이 동요될 수 있는 징후, 가령 박세당의『사변록』과 같은 저술에 적극 대응하며 자신들의 사유체계를 정립해갔다. 김창협, 김창흡의 심(心)과 지각(知覺), 인(人)·물성(物性)에 관한 논리들은 양명 심학에 대한 철저한 대응과정 속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던 백악시단이었기에 그들은 한시의 쇄신 방향 또한 주자학의 토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또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이러한 사상적 측면과 접맥되었을 때 조선후기 한문학이 이룩한 성취는 보다 풍부하게 음미될 수 있다. 가령, 백악시단이 산수의 아름다움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것을 대상과의 심원한 정신적 교감의 산물이라 이해할 때, 그들의 섬세한 형사는 감각적 수준을 넘어서고 그들의 산수흥(山水興)은 취락적 성격을 넘어서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백악시단이 경물의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여 형상화한 작품도 작시 주체가 행한 관조의 정신적 의미를 음미할 때, 웃음을 형상화한 시편들도 작시 주체의 관계에 대한 온후(溫厚)하고도 깊은 인식의 산물임을 인지할 때, 백악시단이 새롭게 개척한 ‘진시’는 한층 더 심원하게 음미될 수 있다. 본고가 백악시단의 시편들을 분석하면서 변화의 측면에 더해 정신적 깊이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백악시단의 ‘진시’가 지닌 사상적·정신적 측면을 음미하는 것은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 각국 시단이 보였던 변화 속에서 조선 시단의 특징을 보다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서구 중심의 근대 담론에 입각하여 근대에 가깝게 변화된 측면만을 강조하고 그것을 발전의 지표로 삼는다면, 조선후기의 변화상은 중국·일본의 그것과 비교하여 뚜렷한 차별성을 지니지 못할뿐더러 어떤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조선후기 문인들이 끝내 견지하고자 했던 이 정신적 측면이야말로 조선이 중국·일본과는 차별된 변화의 길을 걸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표지요, 특징이 된다.
그렇다고 본고가 중국·일본과는 다른 조선의 독자성을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근대는 발전이고 선진이라는 서구 중심적 가치판단을 넘어서는 엄연한 실상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그 실상에 즉하여 백악시단의 ‘진시’가 이룩한 성취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백악시단의 ‘진시’와 ‘진시운동’은 양란 이후의 동아시아적 정치 환경, 철학과 문학상의 변동에 조응(照應)하여 조선의 문인들이 성리학의 심미적 이상을 현실성 있게 구현하고자 전개한 문학 쇄신의 한 방향이었다.
이상에서 본고는 백악시단의 ‘진시’와 ‘진시운동’이 보인 특징적 성과를 살피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보았다. 그러나 보다 치밀한 통시적 조감과 당대 동아시아 문단과의 비교, 그리고 그것의 종합적인 해석 등에 있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이는 조선후기 사회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서 심원한 학문적 역량을 요구한다. 본고가 감당하지 못한 이러한 문제들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확대, 심화하기로 한다.
참고문헌
1. 자료
姜 樸, 『菊圃集』, 한국문집총간 속70
權 萬, 『江左集』, 한국문집총간 209
權尙夏, 『寒水齋集』, 한국문집총간 150
______, 『국역 한수재집』, 민족문화추진회, 1990~1991
權 燮, 『玉所稿』, 개인소장본
______, 『玉所集』,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소장본(청구기호: D03B-3413)
金萬重, 『西浦集』, 한국문집총간 148
金邁淳, 『臺山集』, 한국문집총간 294
金富賢, 『巷東遺稿』,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古3648-10-452)
金尙憲, 『淸陰集』, 한국문집총간 77
金壽增, 『谷雲集』, 한국문집총간 125
金壽恒, 『文谷集』, 한국문집총간 133
金崇謙, 『觀復菴詩稿』, 한국문집총간 202
金時敏, 『東圃集』, 한국문집총간 속62
金時保, 『茅洲集』, 한국문집총간 속52
金信謙, 『橧巢集』, 한국문집총간 속72
金令行, 『弼雲稿』, 한국문집총간 속58
金履坤, 『鳳麓集』, 한국문집총간 속80
金履萬, 『鶴臯集』, 한국문집총간 속65
金 熤, 『竹下集』, 한국문집총간 241
金長生, 『沙溪遺稿』, 한국문집총간 57
金祖淳, 『楓皐集』, 한국문집총간 289
金鎭商, 『退漁堂遺稿』, 한국문집총간 속66
金昌立, 『澤齋遺唾』, 한국문집총간 속56
金昌業, 『老稼齋集』, 한국문집총간 175
金昌集, 『夢窩集』, 한국문집총간 158
金昌緝, 『圃陰集』, 한국문집총간 176
金昌協, 『農巖集』, 한국문집총간 161~162
______, 송기채·강민정 옮김, 『국역 농암집』, 한국고전번역원, 2008
金昌翕, 『三淵集』, 한국문집총간 165~167
金春澤, 『北軒集』, 한국문집총간 186
南克寬, 『夢囈集』, 한국문집총간 209
南龍翼, 『壺谷集』, 한국문집총간 131
南有容, 『雷淵集』, 한국문집총간 217~218
南漢紀, 『寄翁集』,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古朝46-가121)
閔百順, 『大東詩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영인본, 2001
朴師海, 『蒼巖集』,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古3648-25-1)
朴世堂, 『西溪集』, 한국문집총간 134
朴宗采, 박희병 옮김,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개, 1998
朴趾源, 김명호·신호열 역, 『燕巖集』, 돌베개, 2007
朴泰觀, 『凝齋遺稿』,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古朝45-가352)
成大中, 『靑城集』, 한국문집총간 248
成海應, 『硏經齋全集』, 한국문집총간 273~279
宋奎濂, 『霽月堂集』한국문집총간 137
宋相琦, 『玉吾齋集』, 한국문집총간 171
宋時烈, 『宋子大全』, 한국문집총간 108 116
辛敦復, 『鶴山閑言』,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古3638-29)
______, 『국역 학산한언』, 보고사, 2006
申 暻, 『直菴集』, 한국문집총간 216
申聖夏, 『和菴集』, 한국문집총간 속56
申維翰, 『靑泉集』, 한국문집총간 200
申靖夏, 『恕菴集』, 한국문집총간 197
申 櫶, 『平山申氏文僖公派系譜』,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古2518-40-52)
沈魯崇, 『孝田散稿』,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MF(고서귀) 250 0-1~7, 補)
沈 錥, 『樗村遺稿』, 한국문집총간 207~208
沈 , 신익철·조융희·김종서·한영규 공역, 『교감역주 송천필담』, 보고사, 2009
安錫儆, 『霅橋集』, 아세아문화사 영인본, 1986
安重觀, 『悔窩集』, 한국문집총간 속65
魚有鳳, 『杞園集』, 한국문집총간 183~184
吳 瑗, 『月谷集』, 한국문집총간 218
吳熙常, 『老洲集』, 한국문집총간 280
兪度基·兪彦銓, 『二阮遺稿』,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古朝43-가15)
兪肅基, 『兼山集』, 한국문집총간 속74
兪拓基, 『知守齋集』, 한국문집총간 213
兪漢雋, 『自著』, 한국문집총간 249
尹鳳朝, 『圃巖集』, 한국문집총간 193
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명문당 영인본, 1982
李奎象, 민족문학사연구소 한문분과 옮김, 『幷世才彦錄』, 창작과비평사, 1997
李端相, 『靜觀齋集』, 한국문집총간 130
李德懋, 『靑莊館全書』, 한국문집총간 257~259
______, 『국역 청장관전서』, 민족문화추진회, 1978~1982
______, 『三家詩抄』, 개인소장본
李德壽, 『西堂私載』, 한국문집총간 186
李秉成, 『順庵集』, 한국문집총간 속59
李秉淵, 『槎川詩抄』, 한국문집총간 속57
______, 沈魯崇 編, 『槎川詩選批』,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古朝45-가420)
李錫杓, 『南麓遺稿』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貴古朝46-가447)
李時恒, 『和隱集』, 한국문집총간 속57
李雨臣 外, 『沙苑酬唱錄』,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古朝45-가115)
李裕元, 『林下筆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청구기호: 奎 4916 00)
______, 『국역 임하필기』, 민족문화추진회, 1999
李義肅, 『頤齋集』, 한국문집총간 속93
李宜顯, 『陶谷集』, 한국문집총간 181
李麟祥, 『凌壺集』, 한국문집총간 225
李廷燮, 『樗村集』,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古朝46-가91)
李天輔, 『晉菴集』, 한국문집총간 218
李 坪, 『芸齋遺稿』,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청구기호: 奎 5032)
李夏坤, 『頭陀草』, 한국문집총간 191
李恒老, 『華西集』, 한국문집총간 304~305
李獻慶, 『艮翁集』, 한국문집총간 234
李海朝, 『鳴巖集』, 한국문집총간 175
李喜朝, 『芝村集』, 한국문집총간 170
任 適, 『老隱集』, 한국문집총간 속66
張 維, 『谿谷集』, 한국문집총간 92
鄭來僑, 『浣巖集』, 한국문집총간 197
正 祖, 『弘齋全書』, 한국문집총간 262~267
______, 『국역 홍재전서』, 민족문화추진회, 1998 2003
趙觀彬, 『悔軒集』, 한국문집총간 211
趙龜命, 『東谿集』, 한국문집총간 215
趙文命, 『鶴巖集』, 한국문집총간 192
趙聖期, 『拙修齋集』, 한국문집총간 147
趙顯期, 『一峯集』, 한국문집총간 속42
趙榮祏, 『觀我齋稿』,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영인본, 1984
趙裕壽, 『后溪集』, 한국문집총간 속55
趙 翼, 『浦渚集』, 한국문집총간 84
趙正萬, 『寤齋集』, 한국문집총간 속51
趙顯命, 『歸鹿集』, 한국문집총간 212~213
崔成大, 『杜機詩集』, 한국문집총간 속70
許筠, 『惺所覆瓿稿』, 한국문집총간 74
黃景源, 『江漢集』, 한국문집총간 224~225
黃胤錫, 『頤齋亂藁, 학국학중앙연구원 영인본, 1994~2001
洪啓迪, 『守虛齋遺稿』, 국립중앙도서관본(청구기호: 한古朝46-가1500)
洪世泰, 『柳下集』, 한국문집총간 167
洪良浩, 『耳溪集』, 한국문집총간 241~242
洪柱國, 『泛翁集』, 한국문집총간 속36
洪柱元, 『無何堂遺稿』, 한국문집총간 속30
洪大容, 『湛軒書』, 한국문집총간 248
洪重聖, 『芸窩集』, 한국문집총간 속57
洪直弼, 『梅山集』, 한국문집총간 295~296
譚元春 著, 陳杏珍 標校, 『譚元春集』, 上海古籍出版社, 1998
王守仁, 『王陽明全集』, 上海古籍出版社, 2006
袁宏道, 錢伯城 箋校, 『袁宏道集箋校』, 上海古籍出版社, 1981
______, 심경호·박용만·윤동환 역, 『역주 원중랑집』, 소명출판, 2004
袁宗道, 『白蘇齋類集』, 上海古籍出版社, 2007
李夢陽, 『空同集』, 四庫全書 集部
李攀龍, 『滄溟集』, 四庫全書 集部
李 紱, 조남호·강신주 옮김, 『주희의 후기철학:朱子晩年全論』, 소명출판, 2009
李 贄, 张建业 主編, 『李贄文集』,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0
錢謙益, 許逸民·林淑敏 點校, 『列朝詩集』, 中華書局, 2007
朱存理, 『趙氏鐵網珊瑚』, 四庫全書 子部
朱 熹, 『朱子語類』, 『朱子學大系』 권6, 明德出版社, 昭和56
______, 『朱熹集』, 四川敎育出版社, 1996
『朝鮮王朝實錄』, 국사편찬위원회 DB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DB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2. 논저
강명관, 『농암잡지평석』, 소명출판, 2007
______,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소명출판, 2007
______,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______,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 창작과비평사, 1997
______, 「조선후기 서적의 수입 유통과 장서가의 출현」, 『민족문학사연구』9, 1996
강혜선, 「사천 李秉淵의 금강산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16, 1993
______, 「옥소 권섭의 기행시문 연구」, 『한국한시연구』18, 2010
______, 「인왕산 청풍계의 문학적 전통」, 『漢文學報』25, 2011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고연희,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일지사, 2001
______, 「17C말 18C초 白岳詞壇의 明靑文學 受用樣相」, 『東方學』1, 1996
______, 「17C말 18C초 白岳詞壇의 明靑代 繪畵 및 畵論의 受用양상」, 『東方學』3, 1997
구본현, 「동악 이안눌 한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______, 「老稼齋 金昌業의 東庄에 대하여」, 『退溪學論叢』14, 2008
권혁대, 「옥소 권섭의 한시 연구」, 경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권희영, 『한국사의 근대성 연구』, 백산서당, 2001
근대사연구회, 『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 상·하』, 한울아카데미, 2009
금장태, 「白湖 尹鑴의 性理說과 經學」, 『人文論叢』39, 1998
김광태, 「三淵漫錄譯註」,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김남기, 「삼연 김창흡의 시문학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______, 「김창업과 김창흡을 추도한 조정만의 만시」, 『한국한시연구』10, 2002
______, 「洛誦樓詩社의 활동과 詩社의 의의」, 『漢文學報』25, 2011
김동준, 「해암 유경종의 시문학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______, 「조선후기 ‘조선풍’ 한시에 대한 재론」, 『국문학연구』10, 2003
김석하, 『한국문학사』, 신아사, 1975
김영진, 「스승의 뜻이 담긴 책, 『文趣』」, 『문헌과 해석』24, 2003
______, 「조선후기 詩歌 관련 신자료(1)」, 『韓國詩歌硏究』20, 2006
김우영, 『주희철학의 인식론』, 심산, 2005
김준석, 『조선후기 정치사상사 연구』, 지식산업사, 2004
김태준 저, 김성언 교주, 『조선한문학사』, 태학사, 1994
김하명, 『조선문학사(17세기)』, 사회과학출판사. 1992(한국문학사, 1995 영인)
김형술, 「사천 이병연의 시문학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______, 「海嶽傳神帖에 나타난 시화 교섭의 새 양상」, 『한국한문학연구』45, 2010
______, 「자료소개: 서명 미상 필사본 시선집의 자료적 가치」, 『국문학연구』 21, 2010
김혜숙, 「韓國漢詩論에 있어서 天機에 대한 고찰(1)」, 『韓國漢詩硏究』2, 1994
______, 「韓國漢詩論에 있어서 天機에 대한 고찰(2)」, 『韓國漢詩硏究』3, 1995
______, 「율곡 시의 道 음영 방식과 심삼, 미감」, 『고전문학연구』24, 2003
남재철, 「李書九 시문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류재일, 『이덕무의 시문학 연구』, 태학사, 1998
리용준·오희복 공역, 『금강산 한시집』, 문예출판사[평양], 1989
蒙培元, 홍원식·황지원·이기훈·이상호 옮김, 『성리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8
문석윤, 『湖洛論爭 형성과 전개』, 동과 서, 2006
민병수, 『韓國漢詩史』, 태학사, 1996
______, 「조선후기 詩論硏究:18세기를 중심으로」, 『韓國文化』11, 1990
박 석, 『송대의 신유학자들은 문학을 어떻게 보았는가』, 역락, 2005
박용만, 「宛委閣의 전적수집과 문화적 의미에 대한 고찰」, 『서지학보』32, 2008
박태성, 「조선시대 天機論의 전개」, 『연세어문학』26, 1994
박희병,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돌베개, 2008
______, 『한국의 생태사상』, 돌베개, 2010
徐復觀 저, 권덕주 외 옮김, 『중국예술정신』, 동문선, 2000
성호경 편, 『조선후기 문학의 성격』, 서강대학교출판부, 2010
손정희, 「17세기 조선의 觀物論에 나타난 玩物과 天機 개념의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송석준, 「白湖 尹鑴의 經學思想에 나타난 陽明學的 見解」, 『인문사회과학연구』11, 1996
송준호, 「寒岡 鄭逑의 詩文學에 대하여-거울로서의 詩-」, 『東方漢文學』10, 1994
______, 『우리 漢詩 살려 읽기』, 새문사, 2006
송혁기, 『조선후기 한문산문의 이론과 비평』, 월인, 2006
신익철, 「18세기 중반 초림체 한시의 형성과 특징」, 『고전문학연구』19, 2001
쓰치다겐지로 지음, 성현창 옮김, 『북송도학사』, 예문서원, 2006
안대회, 『18세기 한국한시사 연구』, 소명출판, 1999
______, 「삼연 김창흡의 갈역잡영 연구」, 『한국한시연구』1, 1993
______, 「17세기 비평사의 시각에서 본 김만중의 복고주의문학론」, 『민족문학사연구』20, 2002
______, 「홍대용 후손가 소장 이덕무 필사본 3종 연구」, 『고전문학연구』42, 2012
양국영 저, 송하경 역, 『陽明學通論』, 박영사, 1994
여운필, 「東溟詩와 三淵詩의 距離」, 『한국한시연구』14, 2009
오하마아키라, 이형성 옮김, 『범주로 보는 주자학』, 예문서원, 1999
윤성훈, 「담헌 이하곤, 산수 애호와 문예 지향의 삶」, 『泰東古典硏究』24, 2008
윤재민, 「조선후기 중인층 한문학의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윤재환, 『조선후기 근기 남인 시맥의 형성과 전개』, 문예원, 2012
이가원, 『한국한문학사』, 보성문화사, 1996
이경구, 「17~18세기 장동 김문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이규필, 「臺山 金邁淳의 學問과 散文 硏究」,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이기면, 『원굉도의 문학사상』, 한국학술정보, 2007
이동환, 『실학시대의 사상과 문학』, 지식산업사, 2006
이병주·이종찬·김광순·송준호·김갑기, 『漢文學史』, 새문사, 1998
이상돈, 「주희의 수양론」,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이상우, 『동양미학론』, SIGONART, 2009
이상주, 『담헌 이하곤 문학의 연구』, 이화문화출판사, 2003
이세영, 『조선후기 정치경제사』, 혜안, 2002
이승수, 「17세기말 天機論의 형성과 인식의 기반」, 『韓國漢文學硏究』18, 1995
______, 「三淵 金昌翕 硏究」,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이은순, 『조선후기 당쟁사 연구』, 일조각, 1988
이종묵,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태학사, 2002
______,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 휴머니스트, 2009
______, 「金昌業의 채소류 연작시와 조선후기 漢詩史의 한 국면」, 『韓國漢詩硏究』18, 2010
이종호, 「三淵 金昌翕의 詩論에 關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이천승, 『농암 김창협의 철학사상연구』, 한국학술정보, 2006
이태진 외, 『서울상업사』, 태학사, 2000
이현일, 「紫霞詩硏究」,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임유경, 「18세기 천기론의 특징」, 『한국한문학연구』19, 1996
장원철, 「조선후기문학사상사의 전개와 천기론」,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2
정길수, 「‘天機論’의 문제」, 『한국문화』37, 2006
정연봉, 「朝鮮前期 性情 論議와 張維의 天機論」, 『民族文化硏究』23, 1990
정홍교·박정원, 『조선문학개관』, 사회과학출판사, 1986(한국문학사, 1995영인)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제4판), 지식산업사, 2011
조윤제, 『한국문학사』, 탐구당, 1974
조성산, 『조선후기 낙론계 학풍의 형성과 전개』, 지식산업사, 2007
조성천, 『王夫之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역락, 2008
朱光潛, 정상홍 역, 『시론』, 동문선, 2003
주기평, 『육유 시가 연구』, 역락, 2010
陳來 지음, 이종란 외 옮김, 『주희의 철학』, 예문서원, 2008
진영미, 「농암 김창협 시론의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진재교, 「이계 홍량호 문학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최완수, 「謙齋眞景山水畵考」, 『澗松文華』21, 1981
______, 『겸재정선 진경산수화』, 범우사, 2000
최완수 외, 『진경시대·1』, 돌베개, 1998
한국사상사연구회, 『인성물성론』, 한길사, 1994
______, 『조선 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6
홍원식 외, 『조선시대 심경부주 주석서 해제』, 예문서원, 2007
황수연, 「杜機 崔成大의 民謠風 漢詩 硏究」,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候外廬 외, 박완식 옮김, 『송명이학사 1·2』, 이론과실천, 1995
簡錦松, 『明代文學批評硏究』, 學生書局, 1989
莫砺锋, 『朱熹文學硏究』, 南京大學出版社, 2000
查清华, 『明代唐詩接受史』, 上海古籍出版社, 2006
蕭 馳, 『抒情傳統與中國思想:王夫之詩學發微』, 上海古籍出版社, 2003
王運熙·顧易生 主編, 『中國文學批評通史』, 上海古籍出版社, 2007
蔣鵬擧, 『復古與求眞:李攀龍硏究』,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8
錢鍾書, 『談藝錄』, 中華書局, 1999
朱自淸 著, 鄥國平 讲译, 『詩言志辨』, 鳳凰出版社, 2008
周裕鍇, 『宋代詩學通論』, 巴蜀書社, 1997
陳國球, 『明代復古派唐詩論硏究』, 北京大學出版社, 2007
中文摘要
首尔大学 国语国文系
金炯述
“白岳诗坛”是以“真诗”为文学创作目标的文人活动组织。其文学创作始于十七世纪后半期,具体为1682年,而从十八世纪中期开始渐趋衰微。白岳诗坛的主要活动成员有金昌協、金昌翕、金富贤、洪世泰、赵正万、金昌業、金時保、李海朝、赵裕寿、李秉淵、权燮、金令行、李秉成、李夏坤、朴泰观、申靖夏、金时敏、安重观, 郑来僑等人。成员之间多为师友或姻亲,而这样的关系又促进了此文人组织的紧密团结。弘扬《诗经》之精神、重振泯灭之诗道,是这些在文学上志同道合之人的远大文学理想。白岳诗坛的这一文学理想是将诗学提升到道学的水准上进行探求 ,而且,这种追求源自对当代一种作诗风气的批判意识,即把作诗当做单纯的教养形式或者将其作为炫耀文笔的工具。于是,诗坛的成员们之间展开了积极的文学交流活动研讨诗论,并以共同认可的诗论为基础,实践新诗创作,还通过相互间的文学批评共享作品成果。
白岳诗坛提出的“真诗”创作观念以阅读方面的广泛涉猎和学习方面的自得精神为前提,虽然将朱子学作为基本学术根基,但并不墨守,而是用开放的姿态对待其他学术成果。他们特别注重通过广泛的学习得出一家之见,认为只有“自得”的,才称得上是“真”的。这样的学习态度与白岳诗坛的“真诗”创作有着密切的关系。
之前的复古派将重现典范作为复古的创作方法,其结果却是抹杀了创作者的个性,正是这一弊病引发了白岳诗坛的“真诗论”批评。他们认为,复古派的最大问题是,用典范作品的语言和风格包装“自己”,却埋没了本应通过作品表现出来的作家个人之精神,这样的复古并非“真”复古,而是“假”复古。因此,在诗学方面,他们主张诗语或者修辞方面的模拟,同时感知典范作品所蕴含的作家之精神;在具体创作方面,主张将自家所得用自己的语言表达出来。并主张在这两方面的实践中 ,要特别注重个人锲而不舍的学术增进和品性修养。白岳诗坛的“真诗”是指,将真诗人与万物交感之时得到的自家思想感情真实地表达出来的诗作。而“真诗人”则是指通过学术增进和品性修养具备较高精神境界的作家。如此重视创作主体自身卓越能力的真诗创作观念,其根源实在于朱子学道文一体的文学观念。
白岳诗坛的真诗论以朱子学为根基,同时强调个人的精神力量,这与明代复古派和公安派有着明显区别。明代复古派追求天地间的自然之声,认为民歌才是“真诗”。所以,复古派通过学习典范诗作试图发掘真诗的原型,并以此探求典范作品的创作原理,即“法”。但明代复古派极力摆脱自认为束缚文学之思想 ,结果将“法”的范畴缩至修辞原理 ,越是对“法”进行绝对化的阐释,他们的复古也就越倾向于形式化和修辞化。明末公安派批判复古派这种形式上的复古为剽窃,并提出创作“真诗”的文学主张。他们通过对古今理论的相对理解,颠覆了复古派的合理性,主张来源于创作者性灵之中的诗才是“真诗”。公安派的真诗理论受阳明左派心学的启发影响,所以,他们认为,从胸中涌出的本能欲望,也应该通过诗作表达出来。
白岳诗坛的阅读涉猎极为广泛,因此对明代文坛发展动向亦十分了解,他们以朱子学为学术根基,针对明代复古派和公安派的文学理论取长补短。白岳诗坛与明代复古派的共同之处是两者都将达到“古”设为至高境界;不过,有别于复古派的是,白岳诗坛对前者通过典范作品的修辞再现“古”这一点,则持有批判态度。此外,白岳诗坛虽然赞同公安派所提出的古今现实的差异和真实情感的表达,但是,对于公安派主张真情不受任何拘束之主张则进行了辛辣的批判。如上所述,白岳诗坛的真诗论立足于朱子学,统摄明代两派文学理论,终究取得一家之诗论。
白岳诗坛为了创作“真诗”,提出了其核心诗论“天机论”。“天机”一词的来源可追溯至宋代,当时的道学家们将这一词作为阐释性理学学术体系的用语之一,表达“发现天理流通的奥妙之地”一含义。而白岳诗坛将“天机”这一具有性理学性质的观念,进一步发展成文学理论——天机论,同时,从创作的两个必须因子——对象和主体两方面进行了精密的理论整合。在创作对象方面,他们试图巧妙地发掘与创作对象的“相遇”,并进一步通过这种相遇感知天机;在创作主体方面,他们所设定的主体是能够感知天机、体会天理的,即主体是通过学术和修养的增进达到颇具禀赋的主体。而这种具有禀赋的主体人格,通过与世间万物的相互感应,能在诗中把自己的思想感情真实地表达出来,这样的诗就是“真诗”。诗论天机论,与此前的性情论相符,但同时为汉诗创作带来了多彩的变化。
首先,此前的性情论注重创作主体,而天机论则更进一层强化了创作对象本身的意义。天机论所持理论,不是将创作对象视为警戒玩物丧志的对象,而是将其转为格物致知的研究对象。基于这种理由,白岳诗坛重视通过与创作对象的实际相互感应捕捉后者的真实面目,然后在诗中塑造出创作对象更加逼真的形象。其次,天机论注重以禀赋纯粹之心与创作对象进行感应,并将感应中得到的思想和感情毫无修饰地描绘出来,在文章的主体部分进行率真的创作。最后,天机论以创作真诗为前提,提出诗人各自的天机应反映在作品之中,表达了注重创作个性的见解。
白岳诗坛在实际创作中具体实践了上述诗论。他们认为山水是遭遇天机的空间,因此,应该通过积极游览山水,把山水的真正形象描绘出来。此前的山水诗,比起创作对象山水本身,更加倾向于表达创作主体在山水中感受到的情趣 ,因而未能将山水的形象具体表现出来,而白岳诗坛的创作则克服了这一点。白岳诗坛认为,山水诗通过主体与对象之间更加紧密的相互感应,山水本身就可以传达其美丽的形象,而作家则可以传达在感应之处所得到的精神上的觉悟和生动的现实感。在描绘民生的作品中,白岳诗坛同样深入民生所在之处,他们将“民”理解为“天民”,更加具体、现实地描绘了天民所遭受的痛苦现实。这种深入民生的方式脱离了传统的爱民诗 ,取得了民生自身形象化的效果 。正是通过这种自身的形象化,白岳诗坛作品中的民众被塑造成生活质朴、情感丰富、勇于开拓、自力更生的形象。另外,在将自身的日常生活形象化的同时,他们还以理智、闲雅的情趣,表达出平静生活之中与创作对象的精神沟通 。而且,在表达日常丰富感情的同时 ,又真率地塑造了具有引人共鸣、让人哭笑的真情形象。特别是将笑的形象从俚俗的、轻薄的认识层面转化为富有人性美的层面上来,大大地扩大了诗所能覆盖的情感范畴。从深奥的哲理形象化诗作到富含诙谐的“笑”之诗作,均属白岳诗坛的“真诗”范畴,这是追求儒家传统审美理想,即道德和艺术境界统一的结果。
白岳诗坛的诗论和作品,不仅在当代及后代文人中产生了一定的反响,同时也得到拥护与支持。其宣扬创作上的“真”之见解,贯通了朝鲜后期,成为强调“真”与“实”文艺理论的先锋。不仅如此,白岳诗坛还认为诗学的创作价值仅次于道学,把当时偏重于个人教养和社交层面的汉诗创作提高到具有专业文学水准的领域之中,培养出朴泰观、李秉淵等士大夫诗人。另外,天机论极其重视创作对象的意义,提倡通过对创作对象进行纤细的考察而进一步在诗中塑造其形象,这又促进了其关注民生的诗篇进一步发展成为民谣风汉诗和“朝鲜诗”。
白岳诗坛为了创作“真诗”开展了积极的文学活动。以“白岳诗坛”为文学活动组织名称的同道中人,有着明确的目标,即重振趋于泯灭的诗道。在这一目标的引发下,他们整合出指导“真诗”创作的诗论,通过锲而不舍的创作实践,取得了明显的成果,并对后辈诗人产生了深远影响。由此,白岳诗坛在朝鲜后期引导汉诗革新这一点上,作为一次文学运动足以得到名副其实的评价。白岳诗坛的真诗运动与“两乱”以后东亚政治环境、哲学和文学上的变动互为联锁,是朝鲜文人选择文学革新方向的一种体现。
关键词:朝鮮后期, 白岳诗坛, 真詩, 天机论, 朱子学, 道文合一, 复古派, 公安派, 农岩 金昌協, 三淵 金昌翕, 槎川 李秉淵, 恕菴 申靖夏, 澹轩 李夏坤
인용
Ⅰ. 서론
Ⅱ. 백악시단의 형성과 문학 활동
1. 백악시단의 주요 구성원
2. 동인들의 문학 활동
Ⅲ. 진시의 기저와 논리
Ⅳ. 진시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
3. 물아교감의 이지적 흥취
Ⅴ. 진시의 시사적 의의
Ⅵ. 결론
'한문놀이터 > 논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형술,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Ⅳ. 진시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 4) 소통의 깊이와 진정의 울림 (0) | 2019.12.21 |
---|---|
김형술,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Ⅴ. 진시의 시사적 의의 (0) | 2019.12.21 |
김형술,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Ⅳ. 진시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 1) 형신을 통한 산수의 묘파 (0) | 2019.12.15 |
김형술,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Ⅲ. 진시의 기저와 논리, 3) 성리학적 천기론의 문학적 변용 (0) | 2019.12.15 |
김형술, 백악시단의 진시연구 - Ⅲ. 진시의 기저와 논리, 2) 진시의 제창과 복고파·공안파의 비판적 수용 (0) | 2019.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