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비 내리고
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崔致遠)
秋風唯苦吟 擧世少知音
추풍유고음 거세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東文選』 卷之十九
해석
秋風唯苦吟 擧世少知音 |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니, 온 세상에 절친이 적구나. |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 창밖에 한밤 중 비 오니, 등 앞엔 만 리를 달리는 마음【위의 시는 당에서 썼다고 알려졌으나, 『계원필경』(당에서 지은 시만 모아놓음)에 실려 있지 않기에, 신라에서 지은 걸 알 수 있음. 그렇기에 萬里心은 ‘향수’가 아닌, ‘불우한 삶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임.】. 『東文選』 卷之十九 |
해설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선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천황을 깨치는 큰 공이 있었으므로 우리나라 학자들이 모두 종장으로 삼았다[崔致遠孤雲, 有破天荒之大功. 故東方學者, 皆以爲宗].”라는 언급에서 보듯이, 한문학(漢文學)의 개산시조(開山始祖)이다.
이 시는 빈공과(賓貢科) 합격 후 율수현위(漂水縣尉)를 지내던 18~23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당(唐)나라 말기와 신라(新羅)의 말기라는 두 왕조의 말기를 몸소 겪은 최치원은 당나라에서는 이방인으로서, 신라에서는 신분제의 한계 때문에 부득이 느껴야 했던 현실 상황에 대한 인식과 자기 소외감, 자기 고독감을 집약하여 표현한 가장 절창(絶唱)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이다.
1, 2구(句)에서는 고운(孤雲) 자신의 일생을 이 두 구절에 모두 결구(結構)해 놓고 있다. 마음에 쌓아둔 포부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불우한 생애와 탈속의 염원 속에서 떨쳐 버리지 못하는 세속의 미련이 잘 정제되어 있다. 3, 4구는 대구(對句)도 절묘하지만, 비 내리는 가을밤과 같은 쓸쓸한 현실에서 만 리 밖의 이상향을 그리는 시상(詩想)이 잘 함축되어 있다.
이 부분을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는 마음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각에 따라서는 소외된 현실에서 벗어나 탈속(脫俗)의 경지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전혀 반대로 고운(孤雲) 자신의 내심으로는 천하 역사를 꾸려 갈 경륜이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최치원의 시에 대해 낮게 평가했지만 이 시만은 좋다고 하였으며[率佻淺不厚. 唯‘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一絶最好],
이수광(李睟光) 역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이 시를 “가장 훌륭하다[最佳]”고 평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23~2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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