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중국사람에게 홍대용의 부고를 알리는가?
이 묘지명은 그 서두가 대단히 파격적이다. 보통 묘지명은 대상 인물의 자나 호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며, 본관은 어디며, 가계家系는 어떠하며, 언제 운명했으며, 대상 인물과 글 쓰는 이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등에 대해 서술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묘지명은 그런 것 일체 없이 다짜고짜 “덕보가 숨을 거둔 지 사흘 째 되던 날(德保歿越三日)” 중국으로 출발하는 어떤 객에게 부고를 전하게 된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어서 부고의 내용이 소개된다. 이 부고를 통해 비로소 독자는 죽은 이가 누구이며, 언제 죽었으며, 죽기 직전의 관직은 무엇이었으며, 무슨 병으로 죽었으며, 향년이 몇 세며, 상주가 누구인지 등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게 된다. 연암은 부고를 독자들에게 직접 들이미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독자는 마치 당시의 현장을 직접 접하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연암은 왜 이 글의 첫 단락에서 대뜸 중국인에게 보낸 부고 이야기부터 하는 것일까? 국내의 인사도 아니고 외국의 인물에게 부고를 보냈다는 걸 이리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글을 계속 읽어야 한다.
이 단락의 끝 부분에 보이는 “천하의 지기(天下知己)”라는 말을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그 이유는 뒤에 밝혀질 것이다.
▲ 전문
인용
9. 홍대용의 신원(身元)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13. 총평
- 덕보德保: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자字다. 옛날에 친한 친구 사이에는 자로 불렀다. [본문으로]
- 삼하三河: 직예성直隸省 순천부順天府의 현縣 이름이다. 당시 중국 북경에 간 우리나라 외교 사절단은 이곳을 거쳐 귀국하였다. [본문으로]
- 손유의孫有義: 삼하현三河縣에 살고 있던 한족漢族의 선비로, 자는 심재心栽이고, 호는 용주蓉州다. 일찍이 북경을 방문한 홍대용이 귀국길에 올라 삼하를 지났는데, 이때 손유의가 홍대용을 찾아와 서로 알게 됐으며, 이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유하였다. [본문으로]
- 3년전: 1780년을 말한다. 이해 연암은 중국 외교 사절단의 정사正使로 임명된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으로 중국 여행길에 오른바 있다. 이때 홍대용은 중국의 손유의에게 연암을 소개하는 편지를 써서 연암에게 건네준 적이 있다. 연암은 손유의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그 집에 홍대용의 친서 및 자신의 편지를 남겨두고 왔다. [본문으로]
- 남쪽 땅에서 고을살이를 하고 있다: 당시 홍대용이 경상도 영천에서 고을 수령을 한 것을 이른다. [본문으로]
- 건륭乾隆 계묘년癸卯年: 정조 7년인 1783년을 말한다. 이해에 홍대용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건륭乾隆’은 청나라 제6대 황제인 순황제純皇帝의 연호다. [본문으로]
- 족하足下: 상대방을 몹시 높이는 말로, 요즘의 ‘귀하’쯤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 남양南陽: 홍대용의 본관이다. [본문으로]
- 휘諱: 이름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는 남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큰 실례로 여겼기에 ‘꺼린다’는 뜻의 ‘휘’ 자를 ‘이름’을 뜻하는 말로 쓰게 되었다. [본문으로]
- 고자孤子: 아버지를 잃은 자식을 이르는 말이다. 어머니를 잃은 자식은 ‘애자哀子’라고 한다. [본문으로]
- 원薳: 홍대용의 아들 이름이다. [본문으로]
- 오중吳中: 중국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는 연암의 착각이다. 홍대용의 중국인 벗들은 소주가 아니라 항주 사람들이기에 ‘오중吳中’이 아니라 ‘월중越中’이라고 해야 옳다. 예전에 중국 절강성 항주를 ‘월越’이라고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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