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
이 명銘은 짧지만 대단히 문제적이다. 연암의 문집 전체가 간행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와서 였다. 당시 박영철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고 출판을 주관하였다. 이 본本을 보통 박영철본 『연암집』이라 부른다. 그런데 박영철본 『연암집』에는 이 명이 빠져 있다. 하지만 『과정록』에는 다음과 같이 이 명을 특별히 소개해 놓고 있다.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를 미워해서지. |
한편, 연암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열하일기』에도 이 명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魂去不冥招 相逢西子湖 |
넋이 떠난다고 초혼할 것 없네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
口裏不含珠 怊悵詠麥儒 |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에 분개해서지 |
본서에서 제시한 명은 원래 연암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던 『연암산고燕巖散稿』라는 책에 실려 있는 명이다. 이처럼 이 명은 현재 세 가지 이본異本이 존재하는데, 조금씩 그 모습이 다르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연암산고』와 『과정록』의 경우, 『연암산고』 쪽이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宜笑舞歌呼)”이라는 구절이 하나 더 있을 뿐 나머지는 완전히 같다는 사실이다. 추측컨대 원래는 명 속에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는데, 후에 연암 스스로 이 부분이 너무 과격하다고 판단해 빼버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덧붙여 추측컨대, 지금의 박영철본 『연암집』에 이 명이 빠진 것도 연암 자손 중의 누군가가 가장본家藏本 『연암집』(박종채가 편차編次한 것으로 추정된다)에서 고의로 이 명을 없애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박종채일까? 아니면 연암의 손자인 박규수朴珪壽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박종채가 그랬다면 그는 이 명이 뭔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문집에서는 일단 빼 버리고, 멸실을 막기 위해 『과정록』에다 살짝 언급해놓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추론일 뿐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전문
인용
9. 홍대용의 신원(身元)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13. 총평
- 서호西湖: 항주에 있는 서호를 말하는바, 여기서는 곧 항주를 뜻한다. [본문으로]
- 반함飯含: 옛날에 염습殮襲(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할 때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이나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에 이런 말이 보인다. “담헌공(홍대용)은 평소 주장하기를, 장례 때 반함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으며, 또한 아버지(연암)에게 자신의 장례를 돌봐 달라고 당부하셨다. 급기야 공께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이 사실을 그 아들 원薳에게 일러 주었다. 원 또한 부친의 유지遺旨를 들은 터라, 부친이 쓰시던 물건들을 무덤에 묻었을 뿐 반함하지는 않았으니 그 뜻에 따른 것이다.” 연암 역시 담헌이 한 것처럼 자신의 장례 때 반함을 하지 말라는 말을 죽기 전에 자식에게 남겼다. [본문으로]
- 보리 읊조린 유자: 『장자』 「외물外物」편에 보면, 유자儒者란 입만 열면 시詩와 예禮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무덤을 몰래 파헤쳐 시체의 입안에 있는 구슬을 빼내는 도둑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유자는 가증스럽게도 이런 시를 읊고 있다. “푸릇푸릇한 보리 / 무덤가 언덕에 무성하네. / 생전에 남에게 보시한 적 없으면서 / 죽어서 어찌 구슬을 머금고 있나?” 이 이야기를 통해 『장자』는 점잖은 체하면서 실제로는 더없이 위선적인 유자를 야유하고 있다. 연암은 『장자』의 이 고사를 끌어들여 양심적인 실학자 홍대용을 당시 조선의 위선적인 유자들과 대비하고 있다. [본문으로]
'책 > 한문(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덕보 묘지명 - 12. 반함하지 않은 홍대용의 일화를 끄집어내다 (0) | 2020.04.16 |
---|---|
홍덕보 묘지명 -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0) | 2020.04.16 |
홍덕보 묘지명 - 9. 홍대용의 신원(身元) (0) | 2020.04.16 |
홍덕보 묘지명 - 8. 중국의 벗들이여 천하지사인 홍대용을 알려라 (0) | 2020.04.16 |
홍덕보 묘지명 - 7. 홍대용이 청의 위대한 학자인 대진을 만났다면 (0) | 2020.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