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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홍덕보 묘지명 -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본문

책/한문(漢文)

홍덕보 묘지명 -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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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은 다음과 같다.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각주:1]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각주:2]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각주:3]를 미워해서지.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이 명은 짧지만 대단히 문제적이다. 연암의 문집 전체가 간행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1년에 와서 였다. 당시 박영철이라는 사람이 돈을 대고 출판을 주관하였다. 이 본을 보통 박영철본 연암집이라 부른다. 그런데 박영철본 연암집에는 이 명이 빠져 있다. 하지만 과정록에는 다음과 같이 이 명을 특별히 소개해 놓고 있다.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면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를 미워해서지.

 

 

한편, 연암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열하일기에도 이 명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魂去不冥招 相逢西子湖

넋이 떠난다고 초혼할 것 없네 서호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口裏不含珠 怊悵詠麥儒

입에 반함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에 분개해서지

 

 

본서에서 제시한 명은 원래 연암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던 연암산고燕巖散稿라는 책에 실려 있는 명이다. 이처럼 이 명은 현재 세 가지 이본異本이 존재하는데, 조금씩 그 모습이 다르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연암산고과정록의 경우, 연암산고쪽이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宜笑舞歌呼)”이라는 구절이 하나 더 있을 뿐 나머지는 완전히 같다는 사실이다. 추측컨대 원래는 명 속에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는데, 후에 연암 스스로 이 부분이 너무 과격하다고 판단해 빼버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덧붙여 추측컨대, 지금의 박영철본 연암집에 이 명이 빠진 것도 연암 자손 중의 누군가가 가장본家藏本 연암집(박종채가 편차編次한 것으로 추정된다)에서 고의로 이 명을 없애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박종채일까? 아니면 연암의 손자인 박규수朴珪壽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박종채가 그랬다면 그는 이 명이 뭔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문집에서는 일단 빼 버리고, 멸실을 막기 위해 과정록에다 살짝 언급해놓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추론일 뿐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과정록 139

1. 왜 중국사람에게 부고를 알리는가?

2.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학자를 멸시하다

3. 뛰어난 경세적 능력을 지닌 홍대용

4. 뛰어난 경세적 능력을 꼭꼭 숨겨라

5. 중국 친구인 엄성에게 출처관에 대해 얘기한 이유

6. 홍대용과 엄성의 국경을 넘나드는 우정

7. 홍대용이 청의 위대한 학자인 대진을 만났다면

8. 중국의 벗들이여 천하지사인 홍대용을 알려라

9. 홍대용의 신원(身元)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

12. 반함하지 않은 홍대용의 일화를 끄집어내다

13. 총평

 

 

  1. 서호西湖: 항주에 있는 서호를 말하는바, 여기서는 곧 항주를 뜻한다. [본문으로]
  2. 반함飯含: 옛날에 염습殮襲(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할 때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이나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연암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에 이런 말이 보인다. “담헌공(홍대용)은 평소 주장하기를, 장례 때 반함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으며, 또한 아버지(연암)에게 자신의 장례를 돌봐 달라고 당부하셨다. 급기야 공께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이 사실을 그 아들 원薳에게 일러 주었다. 원 또한 부친의 유지遺旨를 들은 터라, 부친이 쓰시던 물건들을 무덤에 묻었을 뿐 반함하지는 않았으니 그 뜻에 따른 것이다.” 연암 역시 담헌이 한 것처럼 자신의 장례 때 반함을 하지 말라는 말을 죽기 전에 자식에게 남겼다. [본문으로]
  3. 보리 읊조린 유자: 『장자』 「외물外物」편에 보면, 유자儒者란 입만 열면 시詩와 예禮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무덤을 몰래 파헤쳐 시체의 입안에 있는 구슬을 빼내는 도둑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유자는 가증스럽게도 이런 시를 읊고 있다. “푸릇푸릇한 보리 / 무덤가 언덕에 무성하네. / 생전에 남에게 보시한 적 없으면서 / 죽어서 어찌 구슬을 머금고 있나?” 이 이야기를 통해 『장자』는 점잖은 체하면서 실제로는 더없이 위선적인 유자를 야유하고 있다. 연암은 『장자』의 이 고사를 끌어들여 양심적인 실학자 홍대용을 당시 조선의 위선적인 유자들과 대비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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