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홍대용과 엄성의 국경을 넘나드는 우정
엄성이 죽을 때 조선산 먹을 가슴에 얹고 죽었으며 그래서 그 먹을 관 속에 넣어주었다는 이야기, 홍대용이 엄성의 부고를 받고 써 보낸 애사가 2년 뒤 엄성의 대상 날에 도착했다는 이야기, 엄성의 아들이 엮어 보낸 아버지의 유집이 돌고 돌아 9년 만에 홍대용에게 도착했으며 그 유집 속에 홍대용의 작은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는 이야기 등은 그 자체로도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국경과 생사를 넘은 우정에 감동되어서다.
현재 서울대 도서관에 『철교전집鐵橋全集』이 소장되어 있는데 제5책에 홍대용의 작은 초상화가 들어 있다. 엄성은 이 책에서 홍대용을 ‘고사高士’라 칭하고 있으며, ‘호걸지사豪傑之士’로 소개하고 있다. ‘호걸지사’란 재능과 식견이 빼어나고 기개가 있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의 한두 대목을 인용해 본다.
2월 초팔일 내가 묵는 여관으로 그(홍대용)가 찾아와 심성心性의 학문에 대해 토론했는데, 대략 수만 언言이나 되었다. 그는 참으로 진실한 선비였다. 재주란 정말 그가 어디에 사는가 하는 것과는 관계없는 것 같다. 우리들의 구두선口頭禪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게 많았다.
12일, 다시 내가 묵는 여관으로 그가 찾아왔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수만 언의 필담을 나눴는데, 다 기록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테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이는 작은 일이니, 바라건대 각자 노력하여 피차 서로 벗으로 삼은 안목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이것이야말로 대사大事이니, 빈둥빈둥 지내면서 이 생生을 잘못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훗날 각자 성취가 있다면 서로 만 리나 떨어져 있어도 매일 조석朝夕으로 만나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신이 매년 중국에 들어가니 1년에 한 번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겠지요. 만약 내 편지가 오지 않는다면 이는 내가 두 형을 잊어버렸거나 내가 죽은 때문일 겁니다.”
연암은 이 단락의 끝에 홍대용과 엄성의 생사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우정이 중국 강남에 회자되었으며 사람들이 시문으로 이 일을 기렸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홍대용과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을 기리는 데 이 단락의 목적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홍대용과 강남 선비들 간의 이 감동적인 우정을 통해 연암이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홍대용이 국내에서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대유大儒로 인정받았다는 점,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홍대용에 대한 경모敬慕의 염念을 놓지 않은 중국인이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즉 중국인들과의 이 우정을 통해 연암은 홍대용의 어떤 면모에 대해, 다시 말해 홍대용의 출중한 학문과 그 빼어난 인품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2편의 내용을 잇는 반면, 3편과 4편과 대립하는 구성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터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단락에서 항주의 세 선비가 “다 문장과 예술에 능한 선비였으며, 그 사귀는 이들도 모두 중국의 저명한 인사들이었다(皆文章藝術之士, 交遊皆海內知名)”라고 한 말이 잘 이해된다.
▲ 전문
인용
9. 홍대용의 신원(身元)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13. 총평
- 애사哀辭: 일찍 세상을 떠난 이를 애도하는 글이다. 엄성은 홍대용이 귀국한 2년 뒤인 1768년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당시 홍대용은 부친상 중이었지만 엄성이 죽었다는 부고를 받고 몹시 애통해하였다. [본문으로]
- 대상 날: 죽은 지 2년 만에 지내는 제삿날로, 이날 삼년상이 끝난다. [본문으로]
- 서호西湖: 항주에 있는 유명한 호수 이름이다. [본문으로]
- 초헌初獻: 제사에서 첫 번째 술을 올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 『철교유집鐵橋遺集』: 엄성의 유고집으로, 그 아들인 엄앙이 편집했다. [본문으로]
- 주문조朱文藻: 항주의 선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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