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학자를 멸시하다
이 단락의 첫 문장에 보이는 “항주 사람들”이란 육비ㆍ엄성ㆍ반정균을 말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자세히 언급된다.
이 단락의 포인트는 “덕보는 통달하고 명민하고 겸손하고 고아古雅했으며, 식견이 심원하고 아는 것이 정밀하였다(德保, 通敏謙雅, 識遠解精)”라는 구절에 압축되어 있다. ‘통달하다(通)’는 것은 이치를 환히 알아 툭 트였다는 말이고, ‘명민하다(敏)’는 것은 머리가 좋다는 말이며, ‘겸손하다(謙)’는 것은 뭘 많이 알고 식견이 높아도 나대지 않고 티를 안 낸다는 말이며, ‘고아하다(雅)’는 것은 사람됨이 속되거나 야비하지 않고 기품이 있다는 말이다. ‘정밀하다(精)’는 말은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다는 말이다. ‘통달’ ‘명민’ ‘겸손’ ‘고아’가 주로 인간적 자질 내지 특성과 관련된 말이라면, ‘심원’과 ‘정밀’은 학문의 태도나 학문의 경지와 관련된 말이다.
通達, 明敏, 謙遜, 古雅 |
인간적 자질 내지 특성 |
深遠, 精密 |
학문의 태노나 학문의 경지 |
학문은 박학博學이 능사가 아니다. 박학은 학문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조금 박학한 이들은 그것을 뽐내거나 으스대며 마치 대단한 학문을 이루기라도 한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실 그것은 잡동사니 지식이든가, 남들의 생각을 이것저것 주워 모아 외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박학자는 대체로 사고의 깊이가 얕거나, 창조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예전의 학자들은 남들이 자신을 ‘박람강기博覽强記(이런저런 책을 많이 보고 기억을 잘하는 것’하다고 하는 말을 좋게 생각지 않았다.
연암은 박학의 학문적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홍대용이 경학經學에서부터 수학, 천문학, 음악학, 병학兵學, 정치학, 재정학財政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두루 조예와 공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되, 이 점을 들어 말하기보다는 ‘심원’과 ‘정밀’이라는 두 단어로써 그 학문이 도달한 경지를 평하고 있다고 보인다. 학문이 심원한 데다 정밀하기까지 하다면 그 학문은 가히 최고의 학문일 것이다. 학문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말한다면 혹 모르겠거니와 만일 학문의 테두리 안에서 논한다고 한다면 이 경지보다 더 높은 경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연암의 이런 기술은 홍대용의 학문에 대한 최대의 헌사獻辭라 이를 만하다.
이 단락의 이하의 서술은 “덕보는 통달하고 명민하고 겸손하고 고아했으며, 식견이 심원하고 아는 것이 정밀하였다(德保, 通敏謙雅, 識遠解精)”라는 문장의 부연 내지 주석에 해당한다. 연암은 우선 홍대용이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지구 자전설을 처음 밝혔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미처 이에 관한 책을 쓰지는 못했지만(顧未及著書)”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연암은 홍대용 만년의 저작인 『의산문답』을 보지는 못한 듯하다. 이 책에는 지구 자전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과학 분야에서 창안을 내놓은 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학자(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학자면 곧 ‘천하’의 학자를 뜻한다)를 국내 지식인들은 제대로 알아보고 있었을까?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국내 지식인들은 홍대용을 어떤 인물로 생각했을까? 연암은 당시 홍대용을 존경하는 사람들조차도 기껏해야 그를 ‘일찍부터 스스로 과거를 단념한 채 명예와 이익에 대한 생각을 끊고서 조용히 집에 들어앉아 좋은 향을 피우거나 거문고를 타면서 담박하게 지내며 세속을 벗어나 마음을 닦는 사람(見其早自廢擧, 絶意名利, 閒居爇名香皷琴瑟, 謂將泊然自喜, 玩心世外)’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은둔하여 자족적으로 지내면서 조촐히 심성이나 닦는 사람으로 알 뿐이었다는 것이다. 홍대용을 흠모한다는 사람들조차 이러했으니 당시 그 누가 홍대용의 진면목, 홍대용의 출중한 식견과 탁월한 경세적 능력을 알았겠느냐는 것이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요컨대 조선에서는 홍대용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 비통한 사실을 극도로 감정을 절제한 채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홍대용의 진면목은 어디에 있는가? 연암은 그것이 학문과 식견에 바탕한 빼어난 경세적 능력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보았다.
▲ 전문
인용
9. 홍대용의 신원(身元)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13. 총평
- 율력律曆: 원래 악률樂律(음률에 관한 이론)과 역법曆法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요즘의 천문학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담헌은 수학과 천문학에서 당대 제1인자였다. [본문으로]
- 혼천의渾天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 시계의 구실을 한 기구인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제작되어 왔다. 홍대용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 지역의 옛 지명)에 살고 있던 선배 과학자 나경적羅景績의 도움을 받아 두 대의 혼천의를 제작하여 충청도 천원군의 향리에 농수각籠水閣이라는 사설 천문대를 짓고 거기에 비치하였다. 조선 초기와 중기에 만들어진 혼천의들이 수력으로 작동된 데 반해, 홍대용이 만든 혼천의는 톱니바퀴로 자명종과 연결되어 그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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