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
명銘은 다음과 같다.
하하 웃고, 덩실덩실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할 일, 서호西湖에서 이제 상봉하리니,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 입에 반함飯含을 하지 않은 건, 보리 읊조린 유자儒者를 미워해서지. 銘曰: “宜笑舞歌呼, 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 口中不含珠, 空悲咏麥儒. |
이런 일에 대해 추론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왜 이 명이 이처럼 삭제되거나 변개되는 운명을 겪게 되었을까하는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정말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답한다면, 이 명에 내포된 불온함과 과격함 때문이다.
우선 이 명의 제1구인 ‘宜笑舞歌呼’를 보자. 이 구절은 ‘웃다(笑)’ ‘춤추다(舞)’ ‘노래하다(歌)’ ‘환호하다(呼)’라는 네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개의 동사는 참을 수 없는 지극한 기쁨을 몸과 관련된 동작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네 개의 동사가 결합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대단히 격정적이고 직절적直截的인 것이다. 그것은 점잖음, 절제, 온유돈후溫柔敦厚 등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처럼 표현 방식에 있어 이 명의 제1구는 감정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그대로 쏟아 내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감정의 꾸밈없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망스럽거나 천박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제1구는 이처럼 그 자체의 표현도 문제거니와 제2구의 의미론적으로 연결될 때 더욱 그 문제성이 증폭된다. 제2구는 이 글의 5편에서 서술된 다음의 말, 즉 “이제 한번 헤어지면 천고千古에 다시 만나지 못할 테지요. 지하에서 만날 그날까지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합시다(一別千古矣, 泉下相逢, 誓無愧色)”와 호응한다. 요컨대 이 명의 제1ㆍ2구는, 이제 홍대용이 죽었으니 그 넋이 중국의 강남땅으로 가 그리도 그리워하던 중국인 벗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기쁜 일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토록 높은 식견과 탁월한 학문을 지녔건만 본국에서는 알아주지 않았는데 중국의 선비들은 홍대용이 대유大儒임을 알아보고 벗으로 사귀며 심복心服했으니 차라리 죽어서 그 혼령이 중국의 벗들과 상봉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잘된 일이며 축하할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당대의 조선 사회, 당대의 위정자들에 대한 신랄한 야유와 풍자에 다름 아니다. 이런 풍자성 때문에 이 명의 제1구는 그 불온성이 증폭된다.
이 명의 제3구 역시 방금 전에 인용한 5편에의 “지하에서 만날 그날까지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합시다(泉下相逢, 誓無愧色)”라는 말과 호응한다. “서호의 벗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相逢西子湖, 知君不羞吾)”라는 말은, 선비로서 떳떳하게 살았음을 의미한다. 이 명은 제3구를 매개로 하여 제4구와 제5구로 옮겨간다.
▲ 전문
인용
9. 홍대용의 신원(身元)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11. 불온하고 과격한 묘지명의 1구
13. 총평
'건빵 > 글 모음 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홍덕보 묘지명 - 13. 총평 (0) | 2020.04.16 |
|---|---|
| 홍덕보 묘지명 - 12. 반함하지 않은 홍대용의 일화를 끄집어내다 (0) | 2020.04.16 |
| 홍덕보 묘지명 - 10. 홍대용의 묘지명을 복원하다 (0) | 2020.04.16 |
| 홍덕보 묘지명 - 9. 홍대용의 신원(身元) (0) | 2020.04.16 |
| 홍덕보 묘지명 - 8. 중국의 벗들이여 천하지사인 홍대용을 알려라 (0) | 2020.04.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