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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물을 잊은 물고기 - 4-1. 총평 본문

책/한문(漢文)

물을 잊은 물고기 - 4-1. 총평

건방진방랑자 2020. 4. 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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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총평

 

 

1

이 글은 연암이 그 제자인 이서구에게 독서의 방법을 설파한 내용이다. 아마도 연암은 이서구의 독서 태도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기에 이런 의론을 펼쳤을 터이다. 하지만 이 글의 의의는 그런 쪽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글의 의의는 연암이 자기 시대의 독서법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연암 당대의 조선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독서법이 있었으니, 하나는 성리학적 독서법이고, 다른 하나는 고증학적 독서법이며, 또 하나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독서법이었다.

성리학적 독서법은 연암의 시대에만 있던 독서법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사대부들이 기본적으로 견지해왔던 독서법이다. 성리학적 독서법은, 성리학을 하는 데 긴요한 책들의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책들만을 읽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 이외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봤으며, 성리학 이외의 사상은 이단으로 간주되어 독서가 금지되었다. 이처럼 성리학적 독서법은 몹시 편협하고 교조적이었던바, 독서가 실제 현실과 연결되기 어려웠다. “동중서처럼 방에 콕 틀어박혀 책을 읽는다는 비유는 이 성리학적 독서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고증학적 독서법은 청나라 고증학이 조선에 수용되면서 새롭게 대두된 독서법이다. 이 독서법은 박학을 지향하는 특징이 있었다. 이 점에서 이 독서법은 성리학적 독서법과는 사뭇 다르며, 성리학적 독서법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고증학적 독서법에도 문제점이 없지 않았다. 성리학적 독서법에서 관념의 과잉이 문제였다면, 고증학적 독서법은 거꾸로 이념의 결여가 문제였다. 이 독서법은 학문이나 사상을 생활 세계와 분리시켜 몰가치적인 관점에서 봤다. 이 때문에, 교조주의와 사변성에 빠져 있던 성리학적 독서법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현실과의 유리를 초래했다. 그리하여 이 독서법은 종종 지적 도락주의道樂主義나 쇄말주의瑣末主義 아니면 현학주의에 빠지곤 하였다. 그래서 폭넓고 잡다하기는 하나 간요簡要함을 결여하였다. “장화張華 같은 박람강기에 의지하고운운한 말은 이런 고증학적 독서법을 비판한 말일 수 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독서법은 과거 시험에 소용되는 책을 달달 외는 것이었다. 이 독서법은 마음을 비운 채 하는 독서와는 정반대의 독서법일 터이다. “동방삭처럼 글을 달달 외운다고 한 것은 이런 독서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연암은 당대의 사대부들이 취하고 있던 이 세 가지 독서법을 모두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독서를 사물 및 현실 세계와 긴밀히 연결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감수성과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고 활짝 열어젖힘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연암이 제기한 이런 독서법은 실학적 독서법이라 이름할 만하다. 연암이 주창한 실학적 독서법은 심미적이면서 실천적인 면모가 강하다.

 

 

2

연암은 당대의 사대부들이 취했던 이런 독서법으로는 창조적 글읽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창조적 글읽기가 안 되면 창조적 사고도 나오기 어렵다. 창조적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적인 글이 나올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글읽기는 결국 글쓰기의 문제와 직결된다. 연암이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의고주의擬古主義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잘못된 독서법에서 연유하는 면이 없지 않다. 창조적 글읽기가 안 되면 결국 읽은 것을 흉내 내거나 본뜨는 쪽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연암 득의의 창작 방법론인 법고창신론은 연암이 주창한 주체적ㆍ심미적 독서법과 상관관계가 없지 않다.

연암의 시대는 그렇다 치고,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지금 우리는 창조적ㆍ주체적 독서를 하고 있는가? 혹 연암이 비판한 바로 그 독서법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외국 이론을 산만하고 무비판적으로 읽고서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방식이 계속되는 한 창조적 사고와 창조적 글쓰기가 가능하겠는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연암의 독서법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3

연암은 본래의 선비原士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독서하여 곧바로 어디에 써먹으려 하는 것은 모두 사사로운 마음이다. 평생토록 글을 읽어도 배움이 진전되지 않는 건 바로 이 사사로운 마음이 해를 끼쳐서다

讀書而求有爲者, 皆私意也. 終歲讀書而學不進者, 私意害之也.

 

 

4

이 글에서 연암은 책(혹은 글)이라는 텍스트를 사물이라는 텍스트, 현실이라는 텍스트, 자연이라는 텍스트와 분리시키지 않고 연결 짓고 있다. 그리하여 연암에게 있어 글을 읽는다는 행위는 동시에 사물과 세계와 현실과 자연을 읽는 행위가 된다. 이처럼 연암에게 있어 텍스트는 책 혹은 글에 한정되지 않고 그 바깥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책 바깥의 텍스트를 환기하는 일이 된다.

 

 

5

이 글은 연암의 논리력과 사유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6

김택영은 이 글에 대해 묘하다는 평을 붙인 바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321

1. 나비 놓친 사마천의 심정으로 읽어라

2. 의미 없는 독서에 대해

3. 넓게 읽되 요약해야 하고 번뜩 깨우쳐야 한다

4.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의 서재

4-1. 총평

5. 자기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

6. 가련한 공기족들의 미련한 판단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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