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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의 뒷 표정 -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본문

책/한문(漢文)

갈림길의 뒷 표정 -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건방진방랑자 2020. 4. 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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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현실에 좌절하고 가난을 못이겨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는 벗 백영숙白永叔전송하며 써준 글이다. 친구를 전송하면서도 글을 써주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예전에는 그랬다.

그의 이름은 백동수白東修(1743-1816)이니 영숙永叔은 그의 자이다. 호는 인재靭齋 또는 야뇌당野餒堂이라 하였고 점재漸齋라고도 했다.

 

 

영숙永叔은 장수 집안의 자손이다. 그 선대에 충성으로 나라를 위해 죽은 이가 있으니, 지금까지 사대부들이 이를 슬퍼한다. 영숙은 전서와 예서에 능하고 장고掌故에 밝다. 젊어서 말 타기와 활 쏘기에 뛰어나 무과에 뽑히었다. 비록 벼슬은 시명時命에 매인 바 되었으나,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만은 선조의 공덕을 잇기에 족함이 있었으니 사대부에게도 부끄럽지가 않다.

永叔將家子. 其先有以忠死國者, 至今士大夫悲之. 永叔工篆隸嫺掌故, 年少善騎射, 中武擧. 雖爵祿拘於時命, 其忠君死國之志, 有足以繼其祖烈, 而不媿其士大夫也.

백영숙은 장수 집안의 후예로서 선열을 이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장한 뜻을 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 서체書體에 두루 능하였고, 장고掌故에도 밝았으며, 젊어서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에 뛰어나 당당히 무과에 급제하였다. 다만 시명時命이 그를 얽어매 벼슬길이 열리지 않았고, 그럼에도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마음만은 사대부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하였다. 뛰어난 역량을 지녔고, 나라 위한 붉은 마음을 지녔으되, 세상은 그를 크게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를 얽어맸던 시명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두 번째 단락에서 연암은 문맥을 확 틀어,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해 죽으려는 뜻을 품었던 그가 어찌하여 식솔을 이끌고서 예맥의 고장, 즉 강원도 두메 산골로 들어가는가 하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리고는 치고 빠지는 식으로 다시금 딴전을 부렸다.

 

 

아아! 그런 영숙이 어찌하여 식솔을 이끌고서 예맥𧴖貊의 고장으로 들어가는가? 영숙이 일찌기 나를 위해 금천金川의 연암협燕巖峽에 거처를 잡아준 일이 있었다. 산이 깊고 길이 막혀 종일을 가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서로 더불어 갈대 숲 가운데에 말을 세우고 채찍으로 높은 언덕배기를 구획지으면서 말하였다.

저기라면 울타리를 치고 뽕나무를 심을 수 있겠군. 갈대에 불을 질러 밭을 갈면, 한 해에 조를 천 석은 거둘 수 있겠네.”

시험삼아 쇠를 쳐서 바람을 타고 불을 놓으니, 꿩이 깍깍 대며 놀라 날고, 새끼 노루가 앞으로 달아났다. 팔뚝을 부르걷고 이를 쫓다가 시내에 막혀 돌아왔다. 서로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백년도 못되는 인생이 어찌 답답하게 목석 같이 살면서, 조나 꿩, 토끼를 먹으며 지낼 수 있겠는가?”

嗟呼! 永叔胡爲乎盡室穢貊之鄕? 永叔嘗爲我相居於金川之燕巖峽. 山深路阻, 終日行, 不逢一人. 相與立馬於蘆葦之中, 以鞭區其高阜, : “彼可籬而桑也, 火葦而田, 歲可粟千石.” 試敲鐵, 因風縱火, 雉格格驚飛, 小麞逸於前. 奮臂追之, 隔溪而還. 仍相視而笑曰: “人生不百年, 安能鬱鬱木石居食粟雉兎者爲哉?”

백영숙은 일찍이 내가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 은거하려 할 때, 나를 위해 거처를 잡아준 적이 있었다. 그곳은 산은 깊고 길은 막혀 종일 가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궁벽한 곳이었다. 뒤덮힌 갈대숲에 불을 놓자 꿩이 깍깍대며 날아가고 새끼 노루가 놀라 달아나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그곳에 은거하려 하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이 산대야 백년을 못사는데, 품은 뜻을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한 채 이 궁벽진 곳에서 나무토막이나 돌덩이처럼 답답하게 지내면서 조나 꿩, 토끼를 잡아먹으며 한 세월을 보내겠다니 이것이 어디 차마 할 일이란 말인가?”

!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그는 세상을 등질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현실을 등지려는 나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였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기린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기린협은 지금의 춘천 땅이다. 송아지를 지고 들어가 그놈을 키워 밭을 갈게 하겠다 한다. 소금도 된장도 없는지라 산아가위와 돌배로 장을 담그겠다고 한다. 다시는 더러운 세상에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기린협으로 들어가는 그대를 장하게 여기리

2. 서얼금고법으로 뜻을 펴지 못한 채

2-1. 총평

3. 백동수는 참된 야뇌인이구나

4. 나의 모든 걸 다 털어놓게 만드는 친구

5. 친구의 궁핍함을 알면서도 마음엔 갈등이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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