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백아가 종자기를 잃고 나서의 심정처럼
종자기가 죽으매, 백아가 석 자의 마른 거문고를 끌어안고 장차 누구를 향해 연주하며 장차 누구더러 들으라 했겠는가? 그 기세가 부득불 찼던 칼을 뽑아들고 단칼에 다섯줄을 끊어 버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 소리가 투두둑 하더니, 급기야 자르고, 끊고, 집어던지고, 부수고, 깨뜨리고, 짓밟고, 죄다 아궁이에 쓸어 넣어 단번에 그것을 불살라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으리라. 그리고는 스스로 제 자신에게 물었을 테지. “너는 통쾌하냐?” “나는 통쾌하다.” “너는 울고 싶지?” “그래, 울고 싶다.” 소리는 천지를 가득 메워 마치 금석金石이 울리는 것 같고, 눈물은 솟아나 앞섶에 뚝뚝 떨어져 옥구슬이 구르는 것만 같았겠지. 눈물을 떨구다가 눈을 들어 보면 텅 빈 산엔 사람 없고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어 있다. “너는 백아를 보았니?” “나는 보았다.” 鍾子期死矣, 爲伯牙者, 抱此三尺枯梧, 將向何人鼓之, 將使何人聽之哉? 其勢不得不拔佩刀, 一撥五絃. 其聲戛然, 於是乎, 斷之絶之觸之碎之破之踏之, 都納竈口, 一火燒之. 然後乃滿於志也. 吾問於我, 曰: “爾快乎?” 曰: "我快矣." "爾欲哭乎?" 曰: "吾哭矣." 聲滿天地, 若出金石. 有水焉, 迸落襟前, 火齊瑟瑟. 垂淚擧目, 則空山無人, 水流花開. “爾見伯牙乎?” “吾見之矣.” |
예전 백아가 제 친구 종자기를 잃고 나서의 심정을 나는 지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네. 제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유일한 벗이 훌쩍 세상을 버렸을 때, 그리하여 저 혼자 남아 거문고 앞에 마주 섰을 때, 이제는 거문고를 연주해 보았자 그 소리를 알아들을 단 한 사람이 없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을 때, 백아의 그 심정이 어떠했겠나? 그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겠지. 그리고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거문고 줄을 부욱 그어 끊어 버렸을 테지. 투두둑 줄이 끊어지자, 그 아끼던 거문고를 끌어내어 도끼로 찍어 부수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아 빠개고, 마침내 아궁이 속에 털어 넣어 불 태워 버리고 말았겠지. 그래서 마침내 제 분신 같던 거문고가 사라져 버린 친구처럼 한줌 재로 화해버리자, 그제야 그는 아까의 그 기막혔던 심정이 조금 풀렸으리라.
비로소 그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래, 거문고를 다 때려 부숴 불태워 버리고 나니 속이 후련한가? 그래도 소리 내어 울고 싶은가? 그렇다면 숨기지 말고 엉엉 소리 내어 실컷 울어 보게나.” 그리하여 마침내 터져 나온 그 울음소리는 금석金石이 울리듯 천지를 가득 메우고, 옥구슬 같은 눈물은 옷섶으로 뚝뚝 덜어졌겠지.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텅 빈 산엔 아무도 없고,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어 있었을 것이네. 여보게 자네! 그때 그 백아의 심정을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나는 알 것만 같네. 그 심정 그 표정이 역력히 떠오르네 그려. 지금 박제가의 이덕무 잃은 슬픔도 꼭 이렇지 않겠나? 아니 이덕무를 잃은 내 마음도 꼭 종자기 잃은 백아의 심정이라네. 아아! 큰 소리로 한 번 엉엉 소리쳐 울고 싶다네.
원문으로 보면 백아가 제 거문고를 때려 부수는 장면의 “단지斷之, 절지絶之, 촉지觸之, 쇄지碎之, 파지破之, 답지踏之”는 그 동작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거니와, 끝에 나오는 “텅빈 산엔 사람 없고,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어 있다.空山無人, 水流花開”란 말은 본래 소동파蘇東坡가 「십팔대아라한송十八大阿羅漢頌」에서 한 말이다. 텅빈 산에는 사람이 없는데 물은 그대로 흘러가고 꽃은 가만히 피어 있다. 그 물 그 꽃이건만 텅빈 산에 홀로 앉아 바라보자니, 마음속에 일어나는 묘용妙用이 있다. 그래서 추사秋史도 “고요히 앉은 곳 차를 반쯤 마셔도 향기는 처음 같고, 묘용妙用이 일어날 때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어 있네.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라고 노래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물物과 아我 사이에 아무런 간극이 없는 회심일여會心一如의 경지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문맥에서는 백아의 고산高山 유수流水의 노래를 떠올릴 때, 산과 물은 전과 같건만 그 곁에 함께 있어 줄 한 사람의 지기가 없는 허탈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봄이 온당할 터이다.
▲ 전문
인용
7-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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