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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돌에 새긴 이름 - 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본문

책/한문(漢文)

돌에 새긴 이름 - 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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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유씨도서보서柳氏圖書譜序는 유련柳璉(1741-1788)이 자신이 수집한 고금의 인장印章을 찍어 한 권의 인보집으로 만든 유씨도서보柳氏圖書譜의 서문으로 써준 글이다.

 

 

연옥連玉 유련柳璉은 도장을 잘 새긴다. 돌을 쥐고 무릎에 얹고, 어깨를 기우숙하게 하여 턱을 숙이고서, 눈을 꿈뻑이고 입으로 불며 그 먹글씨를 파먹어 들어가는데 실낱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입술을 삐죽 모아 칼을 내밀고 눈썹에 힘을 주더니만 이윽고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보며 길게 숨을 내쉰다.

連玉善刻章. 握石承膝, 側肩垂頤, 目之所瞬, 口之所吹, 蚕飮其墨, 不絶如絲. 聚吻進刀, 用力以眉, 旣而捧腰仰天而欷.

그는 전각篆刻에 취미가 있어 옥돌 위에 쓴 글씨가 끊어지는 법 없이 잘도 파나간다. 그래서 아예 자조차 제 이름을 파자破字하여 연옥連玉이라 하였다. 왼손에는 돌을 꽉 움켜쥐고, 칼을 든 오른쪽 어깨를 약간 높게 쳐들고는, 턱을 바짝 아래로 숙여 눈을 꿈뻑이고 입으로 돌가루를 연신 불어가며, 도장 위에 써놓은 글씨를 파들어가기 시작한다. 칼이 움직이고 돌가루가 튈 때마다 실낱같은 글자의 모양이 점점 또렷해진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마무리에서는 내미는 칼끝따라 저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 나오고, 눈썹을 찡그려 돌을 한동안 살펴보더니만, 이윽고 어깨에 힘을 빼더니 뻣뻣해진 고개를 쳐들며 긴장을 푸는 것이다.

 

 

무관懋官 이덕무李德懋가 지나다가 그를 위로하며 말하였다.

그대가 단단한 것을 파서는 장차 무얼 하려는겐가?”

연옥이 말하였다.

대저 천하의 물건은 제각기 주인이 있게 마련일세. 주인이 있고 보면 신표가 있어야 하지. 그래서 열 집 사는 고을이나 백 명 사내의 우두머리도 또한 인장이 있는 것일세. 주인이 없으면 흩어지게 되고, 신표가 없으면 어지럽게 되네. 내가 무늬진 돌을 얻었는데, 돌결이 반질반질하고 기름진데다 크기가 사방 한 치 가량인데 옥처럼 맑네그려. 그 꼭대기에는 사자를 걸터 앉혔는데, 젖먹이 새끼를 보듬고서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모양을 새겨 놓았네. 내 문방文房에 눌러두면 사우四友를 꾸며줄 것이네. 내 조상은 헌원씨軒轅氏이고, 성은 유요 이름은 련이라, 문채있고 우아하게 종정鐘鼎과 석고石鼓의 서체書體로 조문鳥紋 운문雲紋을 새겨, 내 책에 찍어서 내 자손에게 남겨주면 흩어져 잃어버릴 염려도 없이 책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 것이네.”

懋官過而勞之曰: “子之攻堅也, 將以何爲?” 連玉曰: “夫天下之物, 各有其主. 有主則有信, 故十室之邑, 百夫之長, 亦有符印. 無主乃散, 無信乃亂. 我得暈石, 膚理膩沃, 方武一寸, 瑩然如玉. 獅蹲其鈕, 鞠乳獰吼. 鎭我文房, 綏厥四友. 我祖軒轅, 氏柳名璉. 文明爾雅, 鼎鼓鳥雲, 印我書秩, 遺我子孫, 無憂散佚, 百卷其全.”

동갑내기 친구인 이덕무가 지나가다가 그 고심하는 모습을 보더니만 자못 딱하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아! 돌에 이름은 새겨 무얼 하겠다는게야!”

그러자 연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는다.

자네 몰라서 묻는 겐가? 도장이 필요한 것은 물건에 주인이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네. 주인의 표시가 없으면 물건은 쉬 흩어지고 말지. 어렵사리 모은 것이 허망하게 흩어지고 만데서야 어디 될 말인가. 자네 이 돌을 좀 보게. 이 아롱진 무늬하며 반질반질하고 기름진 결이 마치 옥처럼 맑은 느낌을 주는 돌일세. 꼭대기에는 젖먹이 새끼를 보듬은 사자가 으르렁대는 모습을 새겨 놓았지. 이것을 내 책상머리에 얹어두고서 장서에 찍으면 좀 보기 좋겠는가? 도장에는 오조헌원吾祖軒轅, 씨류명련氏柳名璉이란 여덟 글자를 새겼다네. 우아한 전서체篆書體로 조문鳥紋과 운문雲紋을 새겨 넣었지. 내 장서마다 이 도장을 찍어서 내 자손에게 물려줄 참일세. 도장이 찍혀 있으니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흩어질 걱정도 없이 잘 보전할 수 있을 것일세. 그렇지 않은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장서마다 도장을 찍어 자손에게 물려주다

2. 천자의 옥새로도 만리장성으로도 지켜지지 않네

3. 장서를 꼭꼭 감싸두려 하지 말게

4. 장서를 남기고 싶거든 친구들에게 빌려주게

5. 돌에 새겨봐야 부질없는 것을

6. 잊혀지는 걸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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