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본문

책/한문(漢文)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건방진방랑자 2020. 4. 1. 13:23
728x90
반응형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이제 시 두 수를 읽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먼저 박제가朴齊家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란 작품이다.

 

毋將一紅字 泛稱滿眼花

붉다는 한 글자만을 가지고 눈앞의 온갖 꽃을 말하지 말라.

花鬚有多少 細心一看過

꽃술에는 많고 적고 차이 있거니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봐야지.

 

산마루 위에 핀 들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눈앞의 꽃을 보고 그저 붉은 꽃이라고만 말하지 말라. 시인이 사물을 보는 시선은 이래서는 안 된다. 꽃술의 모양은 어떤지, 붉다면 어떤 붉은 색인지, 그것이 주는 느낌은 어떤지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 꽃은 내가 만난 단 하나의 의미가 된다.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는 꽃은 꽃이 아니다. ‘이름 모를 꽃은 꽃이 아니다. 떨림이 없는 만남은 만남이 아니다. 고인 물은 일렁이지 않는다.

 

 

座隅覺暑退 檐隙見陰移

자리 옆에 더위가 물러가더니 처마 틈의 그늘도 옮기어 가네.

竟日黙無語 陶情且小詩

하루 종일 묵묵히 말하지 않고 정을 빚어 다시금 시를 짓는다.

 

남극관南克寬(1689-1714)잡제雜題연작 중 한 수이다. 무더위 속에 대자리를 깔고 앉아 있노라니, 후덥지근하던 더위가 한풀 숙어짐을 느낀다. 처마 틈으로 비치던 해 그늘이 조금씩 위치를 바꾼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겠구나. 가만히 앉아 있는 그, 하루 종일 입을 열어 말한 기억이 없다. 4구에서는 도정陶情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 내내 그저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어내듯, 마음속에 뭉게뭉게 일어나는 생각들을 빚어한편의 시를 자아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말 없던 앉아 있던 여름 오후를 함께 누려 보고 싶다. 그 맑은 시선의 내부에서 일어나던 투명한 광합성 작용을 느껴 보고 싶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3. 역관임에도 고전문장으로 문집을 만든 이홍재

4. 고문은 역관에게, 전통복식은 기생에게 남다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