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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새롭고도 예롭게 -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본문

책/한문(漢文)

새롭고도 예롭게 -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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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일전 석사논문을 지도했던 제자에게서 E-mail을 받았다. 고문론을 주제로 쓴 제 논문을 누군가에게 주었다가, 연암을 고문가라고 한 논문 중의 언급 때문에 논란이 일었는데, 연암이 왜 고문가이냐? 그는 패관소품체를 썼다 해서 문체반정의 와중에서 정조에 의해 순정고문으로 된 반성문을 지어 제출하라는 견책을 입었다. 그렇다면 그는 반고문가임이 분명한데 무슨 근거로 고문가라고 했는가? 이것은 한양대학교에서만 통용되는 주장이 아닌가? 뭐 이런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요컨대 그런 상대의 계속된 힐난에 속수무책으로 신통한 대답을 못하고 물러선 녀석이 멀리 대만까지 글을 보내 내게 구조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연암은 고문가인가, 아닌가? 김택영이 여한십가문초에서 연암을 당당히 우리나라 10대 고문가의 한 사람으로 꼽았으니, 고문가일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구차한 대답이 될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여간 미묘한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암은 분명히 고문가이다. 그렇지만 그는 고문가가 아니다. 바로 고문가이면서 고문가가 아닌, 역설적으로 말해 고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고문가일 수밖에 없는 모순이 연암을 둘러싼 정체성 논란의 핵심이 된다. 이번에 읽으려는 초정집서는 그의 고문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 글을 꼼꼼히 읽는 것으로 앞서의 구조 요청에 대신하려고 한다. 또한 이 글은 옛것과 지금 것 사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장을 함은 어찌해야 하는가? 논하는 자는 말하기를 반드시 옛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마침내 흉내내어 모의하고 남의 모습을 본뜨면서도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있게 되었다. 이는 왕망王莽의 주관周官이 예약을 제정하기에 충분하고[각주:1], 양화陽貨가 공자의 모습과 닮았다하여 만세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일 뿐이다[각주:2]. 그러니 법고를 어찌 할 수 있으랴.

爲文章如之何? 論者曰: 必法古. 世遂有儗摹倣像, 而不之恥者. 是王莽之周官, 足以制禮樂; 陽貨之貌類, 可爲萬世師耳, 法古寧可爲也.

글의 첫 대목에서 연암이 들고 나오는 문제는 문장을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문장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마땅히 옛 것을 본받아야지라고 대답한다. 질문이 다시 옛날에도 종류가 많은데 어떤 옛날을 본받습니까?’로 튀게 되면 문제가 다소 복잡해지지만, 사람들은 이런 의문은 품지 않고, 그저 충실히 옛 사람의 말투를 흉내내고, 어조를 본받는 것으로 옛 사람의 경지에 방불할 수 있다고 믿어 버린다. 그래서 당송 이후의 문장은 읽지도 않고, 아예 글로 치지도 않는다. 그저 사서삼경과 제자백가의 말투를 본뜨고, 지금 쓰지도 않는 표현들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박학과 호고를 자랑한다. 그래서 옛 사람의 글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스스로 옛 사람이라도 된 양 착각한다. 당송 이후의 문장을 글로 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그 글도 뒷세상에서는 글로 치지도 않을 줄은 미처 생각지 않는다.

왕망이 황제를 폐하고 제가 왕위에 올라 신이란 왕조를 세웠을 때, 그는 주나라 때의 예악문물을 오늘에 다시 복원시켜, 그것으로 그때의 태평성대를 누리리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주나라 때의 벼슬 이름과 행정제도를 복원시켰다. 그러나 주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린 것은 제도 때문이 아니었다. 주공周公과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정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자 주나라는 전국시대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고 만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겉껍데기일 뿐이다. 껍데기를 본뜬다고 해서 알맹이가 같아지는 법은 없다. 양화가 공자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해서, 공자는 광 땅을 지나다가 그곳 사람들에게 양화로 오인되어 억류된 적이 있었다. 양화의 외모가 공자와 꼭 같다고 해서 양화를 만세의 스승으로 섬길 수 있는가? 실제로 공자가 죽은 뒤에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와 꼭 닮은 다른 제자를 스승으로 섬기려 했던 우스운 일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이지 겉모습이 아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아라. 옛글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거기에 담긴 정신이 훌륭해서이지, 그 표현 때문이 아니다. 만일 옛글을 배운다면서 그 표현에 얽매인다면 그는 공자를 사모한 나머지 모습 닮은 양화마저 스승으로 섬기겠다는 자와 같다. 그것은 또 주나라의 예악문물을 복원했어도 백성의 원성을 사서 얼마 못가 망해버린 왕망의 왕국과 같다. 우선 한나라 때는 주나라 때와 나라의 규모가 달라졌고, 문화의 수준이 달라졌다. 그러니 주나라 때의 제도가 제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것을 오늘에 복원시키겠다는 것은 다 큰 발로 어린아이의 신발을 신겠다고 우기는 격이니 맞을 까닭이 없다.

 

 

 

 

공자는 양호와 비슷하게 생겼단 이유로 오해를 받아 광땅에서 포위 당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8A11

고문이란 무엇인가?

연암체와 연암에 대한 숱한 오해

1. 본받는다는 건 흉내내기가 아니다

2. 새 것을 만든다는 건 기이한 걸 만드는 게 아니다

3.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하라

4. 옛 것을 본받되 변할 줄 아는 예

5. 새 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게 한 예

6. 法古而知變刱新而能典의 또 다른 예

7. 해답은 법고와 창신의 조화로운 결합에 있다

8. 연암은 고문가일까?

8-1. 총평

 

 

  1. 왕망은 한나라 평제平帝 때 사람으로 황제를 폐하고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는 주나라 때의 예악제도를 그대로 본떠 제도를 개혁하였으나, 가혹한 법의 시행으로 민심을 잃고 결국 패망하였다. 단순히 주나라의 제도를 복원한다고 해서 주나라 때의 이상적인 정치가 회복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양화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대부로 생긴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였다. 공자가 광匡 땅을 지나다가 그를 양화로 착각한 그곳 사람들에게 구류당한 일이 있었다. 겉모습이 꼭같다고 해서 실지까지 같을 수는 없음을 말한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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