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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 4. 증자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의 몸을 살피다 본문

고전/논어

학이 - 4. 증자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의 몸을 살피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2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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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증자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의 몸을 살피다

 

 

曾子: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 悉井反. , 去聲.

曾子, 孔子弟子, , 子輿. 盡己之謂忠.

 

與朋友交而不信乎?

以實之謂信.

 

傳不習乎?”

, 平聲.

, 謂受之於師. , 謂熟之於己. 曾子以此三者日省其身, 有則改之, 無則加勉, 其自治誠切如此, 可謂得爲學之本矣.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

氏曰: “曾子守約, 故動必求諸身.”

氏曰: “諸子之學, 皆出於聖人, 其後愈遠而愈失其眞. 曾子之學, 專用心於內, 故傳之無弊, 觀於子思孟子可見矣. 惜乎! 其嘉言善行, 不盡傳於世也. 其幸存而未泯者, 學者其可不盡心乎!”

 

 

 

해석

曾子: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증자가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피니, 사람을 위하여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못했는가?

, 悉井反. , 去聲.

曾子, 孔子弟子, , 子輿. 盡己之謂忠.

증자는 공자 제자이고 이름은 삼()이고, 자는 자여(子輿). 자기에게 다하는 것을 충()이라 한다.

 

與朋友交而不信乎?

벗과 함께 사귐에 신뢰감은 없었는가?

以實之謂信.

성실히 하는 것을 신()이라 한다.

 

傳不習乎?”

전수 받은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 平聲.

, 謂受之於師. , 謂熟之於己.

()은 스승에게 받은 것이다. ()은 자기에게 익숙히 하는 것이다.

 

曾子以此三者日省其身, 有則改之, 無則加勉, 其自治誠切如此, 可謂得爲學之本矣.

증자는 이 세 가지로 날마다 그 몸을 살펴 있으면 고쳤고 없으면 더 근면히 하여 스스로 다스리길 성실히 하고 간절히 함이 이와 같으니, 학문을 하는 근본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而三者之序, 則又以忠信爲傳習之本也.

세 가지의 차례는 또한 충신(忠信)으로 전습(傳習)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氏曰: “曾子守約, 故動必求諸身.”

윤순(尹淳)증자의 지킴이 요약되었기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반드시 그 몸에서 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氏曰: “諸子之學, 皆出於聖人, 其後愈遠而愈失其眞.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여러 제자들의 학문이 모두 성인에게서 배출되었지만 후에 더욱 멀어져 더욱 참됨을 잃었다.

 

曾子之學, 專用心於內, 故傳之無弊, 觀於子思孟子可見矣.

유독 증자의 학문은 온전히 내면에 마음을 썼기 때문에 전함이 폐단이 없었으니 자사와 맹자를 보면 볼 수 있다.

 

惜乎! 其嘉言善行, 不盡傳於世也. 其幸存而未泯者, 學者其可不盡心乎!”

! 좋은 말과 선한 행동이 세상에 모두 전해지지 않았다. 다행히 보존되어 사라지지 않은 것을 학자는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의 말이다. ‘()’은 셋, ‘()’은 반성(反省) 혹은 내성(內省)의 의미다. 매일 자신을 살피는 수련으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철저한 자기관리의 자세이며 오일삼성(吾日三省)’이라고도 한다. ‘독선기신(獨善其身, 홀로 그 자신을 잘 보존한다)’이라는 말과 짝을 이뤄 이해하면 좋다.

증자는 이름이 삼()이고 자는 자여(子輿), 남무성(南武城) 사람으로 공자보다 46세 어렸다. 비록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 문하의 10명의 철인)의 명단엔 없지만 명대에는 그 위상이 안회(顔回)를 능가할 정도였다.

두 번째 구절에서 ()’은 어떤 일을 꾀할 때 성심(誠心)으로 임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니 ()’이란 진심(盡心)을 다하는 것이고, ‘()’은 신뢰(信賴)이다. 마지막 구절은 이설이 많다. ‘익히지 않은 것을 전해 주었는가라는 해석도 있는데, 남에게 전해 주고자 한다면 먼저 제대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나 여기서는 스승께 받은 것을 내가 익히지 않았는가로 풀이하는 것이 삼성오신이란 의미와도 맞는다.

위의 인용구절에서 다른 사람의 자리에 후배(제자), 친구, 스승을 차례대로 넣어서 이해해도 그 뜻이 잘 다가온다. “후배(제자)를 이끌었는가? 친구를 믿었는가? 스승의 가르침을 흘려듣지 않았는가?” 공자는 늘 도전하는 자세의 후진(後進)을 목말라했다. 제자 증자의 삼성(三省)의 자세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의 윤리가 그 핵심이다.

이 외에도 논어에는 ()’이란 글자가 여러 차례 나온다. 한 가지를 더 음미해 보자. “안으로 반성하여 꺼림칙하지 않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內省不疚 夫何憂何懼]?”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전불습호(傳不習乎)
이토 진사이(伊藤仁) 요시카와 코오시로오(吉川幸次郞)
내가 남에게 전한 것을 내가 익히지 않고 있지는 아니한가? 내가 익히지도 못한 것을 남에게 전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주희(朱熹), 도올(檮杌)  
전수 받은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고전을 익히지 못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앞 글 / 뒷 글

93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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