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③
개화기 「만주일보」 1919년 10월 1일자에는 사몽이란 필명자가 투고한 「고(苦)는 약(樂)의 종(種)」이란 제목의 시가 실려 있는데, 팔음가(八音歌)와 비슷한 발상으로 지어진 실험시이다. 그 첫줄에 ‘자운’이라 하여 “지금의 우리 고생 장래의 락이로다”는 한 줄이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지금의 우리들은 고생 중에 싸였네
금음밤에 불없이 헐덕이는 우리들
의워싸고 있는 것 제일 못된 악말세
우리의 지금 고생 비관 말고 힘쓰면
리상저끝 결과가 불원간에 오리라
고생 끝에 락이란 예로부터 있는 말
생각하고 깨다라 락심 말고 해보소
장차고 무한하든 우리들의 고생이
래두에 끝 있을 것 자신하고 분발해
의리 없는 저 악마 죄 내쫓아 바리고
락엽진 오얏남게 꽃구경을 합시다
이제는 그전 고생 다 없애 바렸다고
로유남녀 다 모혀 지낸 고생 생각해
다정코 자미있게 기쁜 노래 부르세
각 행 첫자가 바로 ‘자운’이 되며, 전편의 주지(主旨)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특이한 형태의 실험시이다. 각 행 첫줄을 주제로 내걸어 놓고, 다시 각 행의 문맥 의미 속에 그것을 감춘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잡체시 중에 흥미로운 것이 약명체(藥名體)이다. 매 구절마다 약초(藥草)의 이름을 하나씩 슬쩍 끼워 넣는 것이 정해진 규칙의 전부다. 물론 의미는 그대로 순조롭게 읽혀야 한다.
半夏留京口 人言病未蘇 | 반하(半夏)에 서울에 머무니 병 아직 안 나았다 말들을 하네. |
只當歸故里 烟月釣前湖 | 다만 마땅히 고향으로 돌아가 안개 달빛 앞 호수서 낚시질 하리. |
권필(權韠)의 약명체(藥名體) 시이다. 각 구절마다 각각 반하(半夏)ㆍ인언(人言)ㆍ당귀(當歸)ㆍ전호(前湖, 胡) 등의 약명(藥名)을 슬며시 끼워 넣었다. 일상적 의미로 읽을 뿐 다른 암시적 의미는 없다.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제술관(製述官)으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행차에 참여 하였는데, 큰 병을 앓은 뒤끝이라 사람들이 많이들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약을 지어 먹노라니까, 그 약방문에 ‘인언(人言)’이란 약초가 있으므로 장난삼아 지었노라는 것이다. ‘인언(人言)’은 ‘비상(砒霜)’이라고도 하는데 극독을 지녀 극히 소량만으로 약재로 쓰인다. 여기에 쓰인 약재들은 모두 담(痰)이나 감기 따위의 치료제로 쓰이는 것이니, 아마 당시 그가 큰 병을 앓은 뒤끝이라 허하여 기침 감기가 심했던 사정까지도 짐작할 수 있겠다.
인용
1.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①
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②
3.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③
4.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①
5.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②
6.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③
10.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①
11.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