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③
고대 중국에는 이렇듯 글자를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파자(破字)나 합자(合字)의 방식을 활용한 은어(隱語)나 수수께끼가 많이 전해진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한(漢)나라 헌제(獻帝) 때 서울에서 불리웠다는 동요가 실려 있다.
千里草何靑靑 | 천리초는 어찌 저리 푸르른가. |
十日卜不得生 | 열흘 동안 점을 치니 살지를 못한다네. |
무슨 말인가. ‘천리초(千里草)’를 한데 묶으면 ‘동(董)’이 되고, ‘십일복(十日卜)’은 ‘탁(卓)’자가 된다. ‘청청(靑靑)’은 푸르게 우거져 왕성한 모양이고, ‘부득생(不得生)’은 결국 망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 노래는 당시 전횡을 일삼던 간신 동탁(董卓)이 지금은 저렇듯 날뛰고 있지만 마침내는 머지않아 망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성 참요(讖謠)였던 것이다.
고려 말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의 참언(讖言)이 이씨(李氏) 조선(朝鮮)의 건국을 예언했다던가, 조광조(趙光祖)를 모함키 위해 대궐 오동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새겨 놓아, 벌레가 이를 갉아 먹자 왕에게 바쳐 조씨(趙氏)가 왕(王)을 꿈꾼다고 모함하여 사화(士禍)의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것은 다 위와 같은 착상에서 나온 것이다.
다음 시는 당말(唐末) 어떤 나그네가 청룡사(靑龍寺)란 절로 스님을 찾아 왔다가, 만나주지 않고 물리치자 절 문에 적어 놓고 갔다는 작품이다.
龕龍去東海 時日隱西斜 | 감실에 새긴 용은 동해로 가고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도다. |
敬文今不在 碎石入流沙 | 글을 숭상하는 이 이제는 없어 돌멩이 부서지고 모래 되었네. |
나그네는 무슨 뜻으로 이런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일까? 제 1층의 뜻은 이렇다. 청룡사(靑龍寺)에 와서 용과 같은 큰스님을 만나 불법(佛法)의 대의(大義)의 깨닫고자 하였건만, 먼 길을 찾은 객을 절은 문전박대로 쫓아낸다. 고약한 절 인심이다. 그래서 그는 1ㆍ2구에서 청룡사(靑龍寺)에 이미 룡(龍)이 떠나 버려, 절의 기상도 서산의 낙일(落日)처럼 기울어 간다고 조소하였다. 큰 바위 같이 중심을 잡아줄 학승(學僧)이 없으니 나머지야 돌멩이 부서진 모래알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조소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제 2층의 숨겨진 퍼즐이 있다. 위 시는 자세히 보면 앞에서 본 것과 같이 파자(破字)를 활용한 석자시(析字詩)이다. 1구 첫 자 ‘감(龕)’에서 반을 끊어 둘째 자 ‘룡(龍)’으로 이었고, 2구도 ‘시(時)’를 갈라 ‘일(日)’을 만들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경(敬)’에서 ‘문(文)’을, ‘쇄(碎)’에서 ‘석(石)’을 따왔다.
뒤늦게야 한 중이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우리들을 크게 욕한 시로구나!”라고 하였다. 그 중은 이 시에 담긴 제 3층의 암호를 읽은 것인데, 그것은 ‘합사구졸(合寺苟卒)’ 네 글자이다. 이 글자들은 앞서 파자(破字)하고 남은 것들이다. 즉 ‘감(龕)’에서 ‘룡(龍)’을 떼고 ‘합(合)’이 남았고, ‘시(時)’에서 ‘일(日)’을 취하자 ‘사(寺)’가 남은 것이다. 나그네는 의도적으로 ‘합사구졸(合寺苟卒)’ 네 글자를 남겨 ‘온 절간에 구질구질한 졸장부’ 밖에 없음을 기롱한 것이다. 파자(破字)를 활용한 비교적 단순한 석자시(析字詩)가 이에 이르러 다시 한 단계 더 복잡하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인용
1.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①
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②
3.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③
4.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①
5.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②
6.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③
10.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①
11.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