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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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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실험정신과 퍼즐 풀기 - 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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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

 

 

매일신보(每日申報)1959(1912. 5.1)에 실린 수원 사는 이원규(李元圭)란 이가 지은 가루지 타령이란 언문풍월도 수시의 발상을 십분 활용한 몹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지일지(一之一之) 글이나 일지(一之)

지이지(二之二之) ()을 이지(二之)

지삼지(三之三之) 집신이나 삼지(三之)

지사지(四之四之) 브즈런해야 사지(四之)

지오지(五之五之) 세월(歲月)가면 늙을 때가 돌아오지(五之)

지육지(六之六之) 항업(航業)은 수로(水路)오 농업(農業)은 육지(六之)

지칠지(七之七之) 암컷이나 칠지(七之)

지팔지(八之八之) 쓰고 남거던 팔지(八之)

지구지(九之九之) 궁교빈족(窮交貧族) 가난구지(九之)

지십지(十之十之) 생전사업(生前事業) 성취(成就)하야 유백세(流芳百世) 하고십지(十之)

 

 

한글 독음으로 읽어보라. 얼마나 놀라운 말장난인가. 지면의 성격 상 더 많은 예를 들 수 없어 유감이지만, 한시에 깊은 소양을 지녔던 이들 개화기 시가의 작가군들이 익숙한 한시의 형태를 응용하여 당시 민중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개 이러한 종류의 잡체시는 일정한 위치에 채워 넣는 글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수평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춘하추동(春夏秋冬) 네 글자를 넣으면 사시시(四時詩)가 되고, 약초(藥草)의 이름을 매 구절마다 하나씩 삽입하면 약명체(藥名體)가 된다. 별자리의 이름을 넣으면 성명체(星名體)가 되고, 주역(周易)의 괘명(卦名)을 넣어 지으면 괘명체(卦名體)가 된다. 앞서 보았던 새 이름을 넣은 금언체(禽言體)도 있다. 이밖에 궁궐 이름, 장군 이름, 새 이름 등 일일이 예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사시시(四時詩)의 한 예를 보자.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물은 사방 못에 넘실거리고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 많네.
秋月揚明輝 冬嶺秀寒松 가을 달은 해 맑은 빛을 비추고 겨울 산엔 찬 소나무 빼어나도다.

 

매 구절의 첫자가 춘하추동(春夏秋冬)이다. 흔히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 나라 양신(楊愼)승암시화(升菴詩話)에 이미 그의 작품이 아니라 진() 고개지(顧愷之)의 작품임을 밝혀 놓았다. 봄날엔 넘실대는 못 물, 여름 날 기이한 산봉우리 모양을 짓는 뭉게구름, 가을날의 시릴 듯 푸른 달빛, 겨울 산마루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사시의 광경은 이렇듯 건강하니,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호흡도 따라서 해맑아진다.

 

戈挽落日 此事本難期 쇠 창으로 지는 해를 당기어 보나 이 일 본시 기약하기 어렵네.
田理荒穢 歲暮違所思 돌밭의 황량함을 일구었어도 세모엔 생각과 어그러지네.
染尙云慟 途窮能勿悲 실이 물듦도 슬프다 했다지만 길 막혀도 능히 슬퍼하지 않으리.
林有古賢 淸風高可追 대 숲엔 예전 어진 이 있어 맑은 풍도 높아서 따를만 해라.
瓜繫不食 白首甘棲遲 바가지는 매달려도 먹지 않으니 흰 머리로 깃들어 삶 달게 여기네.
梗笑木偶 漂流爾焉之 흙 인형이 나무 인형 비웃으면서 떠 내려가 너는 어딜 가려뇨.
華走塵埃 恐見高人嗤 가죽 신 신고서 티끌 속을 달려도 高人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네.
奴足生理 何須鐘鼎爲 감귤로도 먹고 살기 충분하거니 어찌 모름지기 벼슬을 하랴.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權韠)팔음가서회(八音歌書懷)란 작품이다. 제목의 팔음가(八音歌)’란 시의 형식을 말하고, ‘서회(書懷)’는 제목이 된다. 팔음가(八音歌)주역(周易)팔괘에 맞춘 금(, )ㆍ석(, )ㆍ사(, )ㆍ죽(, )ㆍ포(, )ㆍ토(, )ㆍ혁(, )ㆍ목(, 축어柷敔) 등의 여덟 악기를 매 홀수 구 첫 자에 순서대로 얹는 형식의 잡체시이다. () 나라 심형(沈炯)이 처음 이 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개 이러한 형식은 한 편의 시 안에 12()이나 팔음(八音)을 구비함으로써 보다 완벽한 형식미를 갖출 수 있다고 믿은 옛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다.

 

시의 각 구절들은 모두 전거가 있는 말들이어서 행간의 의미가 깊다. 쇠창으로 해를 끌어당기는 일이나, 쓸모없는 돌밭을 일구어 좋은 결실을 기대한 것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하고 애를 써 보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보니 역시의 탄식을 금할 길 없다. 예전 묵자(墨子)는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도 슬퍼했다지만, 죽림(竹林)의 맑은 풍취를 본받아 마음을 닦을 뿐 슬퍼할 것은 없다. 묻혀 사는 초라한 삶이지만 아첨 모리배가 판치는 벼슬길을 어찌 부러워할 것이랴.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

2.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

3. 빈 칸 채우기, 수시(數詩)ㆍ팔음가(八音歌)ㆍ약명체(藥名體)

4.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

5.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

6. 구슬로 꿴 고리, 장두체(藏頭體)와 첩자체(疊字體)

7.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8.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9. 파자(破字)놀음과 석자시(析字詩)

10.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

11. 이합체(離合體)와 문자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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