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철
철간(鐵簡)
철제(鐵製)로 된 무기의 한 가지이다.
철견(鐵犬)
쇠로 만든 개의 상(像)을 말한다.
철경(輟耕)
농사짓는 일을 그만두다.
철경록(輟耕錄)
명 나라 도종의(陶宗儀)가 원대(元代)의 법제 및 훈고(訓詁)ㆍ서화(書畫) 등에 관해 편찬한 고증 자료. 『사고제요(四庫提要)』子ㆍ『소설가류(小說家類)』
철경록(輟耕錄)
명(明) 나라 도종의(陶宗儀)가 찬술한 서명(書名). 총 30권으로 되었다. 내용은 대개 원대(元代)의 법령제도(法令制度) 및 원 나라 지정(至正) 말엽에 있었던 병란(兵亂) 사실, 항간에서 일어난 저속한 일, 희학잡담(戱謔雜談), 보고 들은 잡설 등을 수록하였다. 구성(九成)은 도종의의 자(字)이다.
철고비(掇皐比)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과감히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고비(皐比)는 즉 호피(虎皮)이다. 송(宋) 나라 장재(張載)가 일찍이 호피를 깔고 앉아서 『주역(周易)』을 강의할 때 사방에서 모여드는 학자가 매우 많았는데, 그 후 정호(程顥)ㆍ정이(程顥)가 『주역(周易)』에 밝음을 알고 나서는 호피의 좌석을 걷고 강의를 폐하였다. 『장자전서(張子全書)』 卷十五
철관(鐵關)
① 궁궐의 성문을 말한다.
② 중국 서역(西域)의 지명이다.
③ 철령(鐵嶺)을 말한 것이다.
④ 함경도 덕원(德源)의 속역(屬驛)이다.
철관(鐵冠)
어사(御史)가 착용하는 철주(鐵柱)를 넣어서 만든 관(冠)을 말한다.
철관위(鐵冠危)
꽃송이가 탐스럽게 피었다는 뜻이다.
철관정(鐵關亭)
함경도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고산역(高山驛)에 딸린 13개 속역(屬驛) 가운데 하나이다. 정(亭)은 역참(驛站)과 같다.
철권(鐵券)
옛날 공신(功臣)에게 내려주던 훈공을 기록한 책. 일종의 증표로, 붉은 글씨(丹書)로 적었으며, 반쪽을 주고 반쪽을 나라에 보존해 두었다. 일반적으로 단서철권(丹書鐵券)이라 한다. 『사기(史記)』 「고제기(高帝紀)」에 “공신과 더불어 부절(符節)을 가르고 맹세를 기록한 철권과 단서(丹書)를 금궤(金匱)에 넣어 종묘(宗廟)에 보관하였다.” 하였다. / 인용: 鞍峴歌(김창흡)
철기뢰등락수방(鐵騎雷騰洛水傍)
당 나라에서는 안녹산을 평정하려고 서방 위구르족에게 구원병을 청하여 5천의 기병이 와서 도와주었는데, 그들은 중국 백성들에게 피해도 컸었다.
철두철미(徹頭徹尾)
‘머리에서 꼬리까지 투철하다’는 뜻으로, 즉 ‘처음부터 끝까지 냉철하게 한다’는 말이다.
철련전(鐵連錢)
돈 모양의 검은 반점(斑點)이 있는 말을 말한다. 노조린(盧照鄰), 「장안고의시(長安古意詩)」
철령(鐵嶺)
강원도 회양군(淮陽郡)과 함경남도 고산군(高山郡)의 경계에 있는 큰 재를 말한다.
철롱(鐵籠)
수레 축이 서로 닿아 부러지지 않도록 끝 부분을 잘라내고 쇠로 감싼 것이다. 전단이 안평(安平)에 있다가 연 나라가 쳐들어와 도망칠 적에 다른 사람들은 다 수레 축이 부러져서 포로가 되었으나, 전단의 종인(宗人)들만은 철롱을 씌운 덕에 도망칠 수 있었다.
철룡조(鐵龍爪)
쇠로 만든 흙을 파는 도구이다.
철류(綴旒)
잡아 맨 기(旗)의 술을 말하는데, 전하여 임금이 신하에게 제재되어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철륵(鐵勒)
한(漢)나라 때 흉노(匈奴)의 후예로 중국 북방 민족의 하나이다. 시대에 따라 칙륵(敕勒)ㆍ회흘(回紇)ㆍ회골(回鶻)ㆍ외올아(畏兀兒)등 그 칭호가 다른데, 오늘날에는 유오이(維吾爾)라 불린다.
철마(鐵馬)
갑옷을 입힌 전마(戰馬)로 정예의 기병을 가리킨다.
철면(鐵面)
추위를 잘 이긴다 하여 매화를 이른 말이다.
철면어사(鐵面御使)
강직하고 사심이 없는 어사를 말한다. 송(宋) 나라 때 조변(趙抃)이 전중시어사(殿中侍御使)가 되어 권신(權臣)들을 거리낌 없이 탄핵하자 경사(京師) 사람들이 철면어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송사(宋史)』 卷316 「조변열전(趙抃列傳)」
철면피(鐵面皮)
쇠로 된 낯가죽. 즉,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수치(羞恥)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사람.
철목씨(鐵木氏)
철목씨(鐵木氏)는 원(元) 나라이다.
철묵(啜墨)
책벌레의 이칭이다. 왕조(汪藻)의 시에 “書魚多啜墨 筆免每噴煙”이라 하였다.
철문한(鐵門限)
남조(南朝) 진(陳) 나라 때 지영선사(智永禪師)가 오흥(吳興) 영흔사(永欣寺)에 갔었는데, 글씨를 청해 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여들어서 그의 문지방이 모두 닳아져 없어지므로, 쇠(鐵)로 문지방을 포장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소식(蘇軾)의 증상주보은장로시(贈常州報恩長老詩)에도, “憑師爲作鐵門限 準備人間請話人”이란 구절이 있다.
철법(徹法)
주(周)의 세법으로 1백 묘를 농민이 경작하여 그 중 10묘의 소출을 따로 떼내 조세로 바친다는 뜻으로, 10분의 1을 조세로 바치는 제도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철봉우림(鐵鳳羽林)
철봉은 철봉궐(鐵鳳闕)의 준말로, 문 꼭대기에 철제(鐵製) 봉황을 달아 놓은 도성 궁궐 문을 말하고, 우림(羽林)은 임금의 근위 금군(禁軍)을 말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철봉궐 그늘진 곳, 훈련하는 우림 군사[陰沈鐵鳳闕 敎練羽林兒].”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5 贈崔十三評事公輔
철부지급(轍鮒之急)
수레바퀴 자구 속에 있는 붕어의 위급함이라는 뜻으로, 곤궁한 처지나 다급한 위기, 곤궁한 처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철삭은구(鐵索銀鉤)
매끄럽고 꼿꼿한 필치를 형용한 것이다.
철상(鐵象)
남송(南宋) 때 사람 곡단(曲端)에게 평소 매일 4백 리씩을 달리는 철상(鐵象)이란 말이 있었다 한다.
철색은구(鐵索銀鉤)
아주 힘차게 잘 쓴 글씨를 형용한 말이다.
철석간장(鐵石肝腸)
쇠나 돌같이 굳은 마음. 굳센 의지나 굳은 지조.
철석장(鐵石膓)
천성(石膓)이 견강함을 이른다. 피일휴(皮日休)의 부서(賦序)에, “나는 일찍이 송광평(宋廣平)의 정승됨을 아름답게 여기며 철석(鐵石)의 심장이라 여겼다.” 하였다.
철쇄침강(鐵鎖沈江)
유우석(劉禹錫)의 「금릉회고(金陵懷古)」에 “천 길의 쇠사슬을 강물 속에 가로쳤건만 한 조각 항복의 깃발이 석두성에서 나왔네[千尋鐵鎖沈江底 一片降旛出石頭].” 한 데서 온 말인데, 이 내용은 바로 오(吳) 나라에서 일찍이 진(晉) 나라 군대를 막기 위하여 석두(石頭)에 성(城)을 쌓고, 강(江)에는 수많은 쇠사슬을 가로질러 치고 수많은 철퇴까지 세워 놓았었으나, 진(晉) 나라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그 내막을 탐지하고는 사전에 그 쇠사슬과 철퇴를 모두 제거한 다음 만곡선(萬斛船)을 건조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오 나라 석두성을 격파해서 손호(孫皓)의 항복을 받았던 고사를 읊은 것이다. 『진서(晉書)』 卷四十二
철숙(啜菽)
빈한한 집에서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이 가난해서 어버이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 한탄하자, 공자가 “콩죽을 쑤어 먹고 맹물을 마시더라도 어버이를 기쁘게만 해 드린다면 그것이 바로 효도이다[啜菽飮水 盡其歡 斯之謂孝].”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철숙수(啜菽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안이 가난해서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다고 한탄하자, 공자가 “콩죽에 물을 마시더라도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철숙음수(啜菽飮水)
콩죽을 쑤어 먹고 물을 마시는 청고(淸苦)한 생활을 말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
철심석장(鐵心石腸)
당 나라 피일휴(皮日休)가 말하기를, “송광평(宋廣平; 宋璟)은 강직하기가 쇠마음 돌창자(鐵心石腸)인 줄 알았더니 그의 지은 「매화부(梅花賦)」를 본즉 맑고 고와서 그의 사람됨과는 다르다.” 하였다.
철심인(鐵心人)
당 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가 「매화부(梅花賦)」를 서(序)하면서 “나는 일찍이 송광평(宋廣平)의 정자 경질(貞姿勁質)과 강태 의상(剛態毅狀)을 사모하여 그가 철장(鐵腸)과 석심(石心)을 지닌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하였다.
철안(鐵案)
증거가 확실하여 번복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안이란 뜻이다.
철액(鐵額)
치우(蚩尤)를 가리킨다. 『운급칠첨(雲笈七籤)』 「헌원기(軒轅紀)」에 “치우씨 형제 80인 모두가 짐승같은 몸에 사람 말을 하였으며 구리 얼굴에 쇠이마[銅頭鐵額]를 가졌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 듯하다.
철여의(鐵如意)
쇠로 만든 여의(如意). 쇠로 만든 효자손 모양의 군대 지휘봉인데, 진(晉) 나라 왕도(王導)의 조카인 왕융(王戎)이 철여의를 쥐고 춤추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철연(鐵硯)
쇠로 주조한 벼루인데, 오대(五代) 시대 진(晋) 나라 상유한(桑維翰)이 처음 과거를 보려다가 주사(主司)에게 내침을 받자, 어떤 이가 그에게 과거를 보지말고 달리 벼슬을 구하도록 권하니, 그가 철연을 주조하여 남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 철연이 뚫리면 타업(他業)으로 바꾸겠다.”고 하였는데, 그가 끝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던 데서 온 말이다. 『오대사(五代史)』 卷二十九
철영동리(掇英東籬)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에 “동쪽 울타리 국화꽃 꺾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도다.(採菊東離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이 있다.
철옥여배속(綴玉與排粟)
옥 벌레나 금 낟알은 모두 등잔 불꽃의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한유(韓愈)의 영등화시(詠燈花詩)에, “황금빛 속에 금 낟알을 배치한 듯하고 비녀 머리에 옥 벌레를 이어 붙여 꾸민 듯하네[黃裏排金粟 釵頭綴玉蟲].”하였다.
철우(鐵牛)
① 쇠로 주조하여 만든 소인데, 옛날 우(禹) 임금이 수환(水患)을 막기 위하여 이 소를 만들어 황하(黃河)에 넣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② 쇠로 만든 소로 하후씨(夏后氏) 때 범람하는 황하의 수재를 막기 위하여 만들어 세웠다 한다.
철위성(鐵圍城)
『불경(佛經)』에 있는 말로 남섬부주(南贍部洲) 등 사대부주(四大部洲) 밖에 있는 성의 이름인데, 아주 멀다는 말이다.
철인(哲人)
‘죽은 사람을 높여 부른 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上에 공자가 죽기 얼마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는가? 대들보가 쓰러지려는가? 철인이 병들려는가?[哲人其萎乎]”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 인용: 祭鄭石癡文(박지원)
철작간(鐵作肝)
의지가 철석(鐵石)처럼 견고하여 외물(外 物)에 의해 동요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 유의어: 철심석장(鐵心石腸).
철장광평(鐵腸廣平)
당 나라 송경(宋璟)의 자. 사람들은 그의 곧은 지조와 굳센 기질에다 철석 같은 심장(心腸)으로 보아 고운 문사(文辭)가 나올 것 같지 않다고 여겼는데, 그가 지은 매화부(梅花賦)는 너무도 청신하고 미려(美麗)하였다.
철적(鐵笛)
① 쇠로 만든 젓대를 말한다. 주희(朱憙)의 「철적정시서(鐵笛亭詩序)」에 “무이산(武夷山)은 은자(隱者) 유군 겸도(劉君兼道)가 철적을 잘 불어 천운열석(穿雲裂石)의 소리가 났다.” 하였다.
② 철로 만든 피리로, 은자(隱者)의 피리를 말한다. 당대(唐代) 피리의 명인인 이막(李漠)이 밤에 경호(鏡湖)에 배를 띄우고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는, 어떤 노인이 배를 저어 와서 자신의 철적을 꺼내어 피리를 불자, 용 두 마리가 뱃전에 기대어 그 곡조를 들었는데, 이막이 그 피리를 불어 보려 해도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악부잡록(樂府雜錄)』
철적성(鐵笛聲)
은자(隱者)나 고사(高士)가 흔히 쇠피리를 분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맑고 비범하다 한다.
철점은구(鐵點銀鉤)
아주 잘 쓴 글씨를 표현한 말이다.
철주(掣肘)
남의 팔꿈치를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하여 일에 훼방을 놓는 일을 말한다. 즉, 웃사람이 너무 간섭하여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춘추(春秋) 시대 노(魯)나라에서 복자천(宓子賤)을 선보 영(單父令)으로 삼았는데, 복자천이 왕에게 글씨 잘 쓰는 사람을 청하였다. 복자천은 두 사람을 시켜 곁에서 글씨 쓰는 사람의 팔꿈치를 당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글씨를 잘못 쓰면 화를 내었고 잘 쓰려고 하면 또다시 당겼다. 글씨 쓰는 사람이 돌아가 그 사실을 아뢰자, 노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복자천은 내가 그를 방해하여 선정(善政)을 베풀지 못하게 될까 염려한 것이다.” 하고, 선보 지방에서 징발(徵發)하는 일이 없도록 명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교화가 크게 행하여졌다.
철중쟁쟁(鐵中錚錚)
같은 쇠붙이 가운데서도 유난히 맑게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뜻으로, 같은 또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이른다.
철천(鐵穿)
진(晋) 나라 때 상유한(桑維翰)이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했는데, 시험관이 그의 성인 ‘상(桑)’ 자가 ‘상(喪)’ 자와 같은 발음임을 싫어하므로, 사람들이 시험을 포기할 것을 권하자, 상유한은 쇠벼루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이 벼루가 다 닳아도 합격을 못 하면 다른 방도를 찾겠다.” 했는데, 결국 합격했다 한다. 『구오대사(舊五代史)』 卷八十九 「쌍유한전(桑維翰傳)」
철천지한(徹天之恨)
쌓인 감정이 하늘을 뚫을 만큼 사무친 크나큰 한.
철철(惙惙)
근심하는 모양, 근심하여 마음이 산란한 모양
철철(掣掣)
바람이 부는 대로 쏠리는 모양
철탑(鐵塔)
남송(南宋) 고종(高宗)의 황자(皇子) 부(旉)가 겨우 네 살이었지만,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彦)에게 추대되자, 장준(張浚)이 제거하기를 건의한 결과, 철탑의 죽음이 있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철현소금(鐵絃小琴)
구라파의 쇠줄로 된 금琴이라는 뜻인데, 양금(洋琴)을 말한다. 본래 이슬람 음악에 쓰이다가 십자군전쟁 이후 유럽에 전파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영조(英祖) 때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 직사각형 판면의 양쪽 끝에 긴 괘(棵:현을 괴는 기둥)를 하나씩 세우고 그 위에 네 줄의 철현(鐵絃)을 한 벌로 하여 14벌 56선을 걸친 모양이다. 대나무 채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낸다. 연암은 『열하일기(熱河日記)』 「동란섭필(銅蘭涉筆)」에서, 1772년 6월 18일 오후 6시경 담헌 홍대용의 집에서 담헌이 처음 양금 연주에 성공하던 장면을 자기가 목격했다고 적고 있다. 한편 『과정록(過程錄)』 1권에, 연암이 담헌의 집에서 담헌과 함께 가야금으로 음을 조율하여 처음으로 양금을 연주했다고 서술해 놓고 있는 바, 연암 자신의 기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연암 자신의 기록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정록』에는 또 연암과 담헌이 당시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김억(金檍) 등과 어울려 양금과 생황의 합주를 즐겼다는 기록도 보인다. 아무튼 연암이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양금 연주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철협(鐵峽)
철령(鐵嶺)을 말한다.
철환공맹(轍環孔孟)
공자는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천하를 주류(周流)하였으나 당시 임금들이 공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므로 마침내 노(魯) 나라로 돌아와 시ㆍ서ㆍ예ㆍ악(詩書禮樂)을 정리하였고 맹자(孟子)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고자 제(齊)ㆍ양(梁) 등지로 돌아다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철환천지(轍環天地)
공자는 도를 펴려고 여러 제후 나라에 돌아다녔으며, 이때문에 갖은 고생을 했다는 말이다.
철환천하(轍環天下)
뒷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님.
철후(徹侯)
진(秦)ㆍ한(漢) 시대 12등급의 작호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고관 대작을 가리킨다.
인용
'어휘놀이터 > 어휘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휘사전 - 306. 첩 (0) | 2020.06.03 |
---|---|
어휘사전 - 305. 첨 (0) | 2020.06.03 |
어휘사전 - 303. 천 (0) | 2020.06.03 |
어휘사전 - 302. 척 (0) | 2020.06.03 |
어휘사전 - 301. 처 (0) | 2020.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