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희
희강(姬姜)
희씨(姬氏)ㆍ강씨(姜氏). 희(姬)는 주(周) 나라 성(姓)이고. 강(姜)은 제(齊) 나라 성인데 큰 나라였으므로 그 국족(國族)의 여자에 대한 통칭이었으나, 미녀(美女)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귀빈의 아내’를 칭하기도 한다. 두 성씨가 항상 혼인 관계를 맺곤 하였다 한다. 『좌전(左傳)』 成公 9年』 / 인용: 端川節婦詩(김만중)
희견(餼牽)
공가(公家)에서 공급하는 음식이다.
희경(羲經)
복희씨(伏羲氏)가 지은 경서라는 뜻으로 『주역(周易)』을 가리킨다.
희고(希古)
자신도 훌륭한 고인(古人)처럼 되기를 희망함을 말한다.
희고역운원(豨膏易運圓)
돼지 기름은 수레 굴대에 발라서 바퀴가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인데, 송(宋) 나라 소식(蘇軾)의 술고이시견책루불부회시(述古以詩見責屢不赴會詩)에 “청명한 때에 누차 밀어준 건 고마우나 돼지 기름이 어찌 모난 바퀴를 굴릴 줄 알랴[多謝淸時屢推轂豨膏那解轉方輪]” 한 데서 온 말이다.
희공술(姬公術)
희공은 주공(周公)을 이른 말로, 일설에 주공이 지었다고 하는 구장산술(九章算術) 즉 방전(方田)ㆍ속미(粟米)ㆍ차분(差分)ㆍ소광(少廣)ㆍ상공(商功)ㆍ균수(均輸)ㆍ영부족(嬴不足)ㆍ방정(方程)ㆍ구고(句股) 등 아홉가지 최초의 산법(算法)을 말한다.
희공음(喜跫音)
궁벽한 곳에 외로이 있으면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반갑게 여긴다는 데서 온 말로, 친구가 찾아온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희구(喜懼)
어버이의 연세가 고령(高齡)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어버이의 연세를 자식들은 주목해야 할 것이니, 한편으로는 오래 사셔서 기쁘고 한편으로는 쇠해지셔서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될 것이다[父母之年不可不知 一則以喜 一則以懼]”라고 한 공자(孔子)의 말이 있다.
희구이위구(戲韭以爲九)
남제(南齊) 때 유고지(庾杲之)가 매우 청빈하여 밥 먹을 때면 매양 구저(韭葅)ㆍ약구(瀹韭)ㆍ생구(生韭)로만 반찬을 하므로, 임방(任昉)이 희롱하기를 “그 누가 유랑(庾郞)이 가난하다고 했는가. 식탁에 항상 27종의 반찬이 오르는 걸.” 하였는데, 27종이라는 것은 곧 3×9〓27의 뜻으로 ‘韭’의 음이 ‘구’이기 때문에 구(九)자의 뜻으로 해석하여 농담을 붙인 것이다. 『남제서(南齊書)』 卷三十四 「유경지전(庾杲之傳)」
희기선종저처생(噫氣先從底處生)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저 대지가 숨을 내뿜는 것, 그것을 바람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이 오직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불어왔다 하면 일만 개의 구멍이 성내어 부르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呺].”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희년(稀年)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것으로, 나이 70세를 말한다.
희노동군저(喜怒同群狙)
“저공(狙公)이 잔나비를 기르는데 하루에 밤을 일곱 개씩 주는데, 아침에 세 개를,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하니 뭇 잔나비들이 성을 내다가 다시 아침에 네 개를,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하니 잔나비들이 기뻐하였다.”라는 얘기가 있다. 실제는 같은데 기뻐함과 성냄이 다르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열자(列子)』 「황제(黃帝)」
희노애락(喜怒哀樂)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사람이 느끼는 온갖 감정을 말한다.
희노임군저(喜怒任群狙)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저공(狙公)이 여러 원숭이에게 상수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성내므로,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을 주겠다고 하니, 그제는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열자(列子)』 「황제(黃帝)」
희농(羲農)
상고 시대 제왕인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와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를 합칭한 말이다. 중국 전설시대에 처음으로 짐승을 기르기 시작한 사람을 복희(伏羲)라 하였고, 처음으로 농사짓기 시작한 사람을 신농(神農)이라 이름하였다.
희단거동(姬旦居東)
희단(姬旦)은 주공(周公)을 말한다. 희는 주(周) 나라의 성이고, 단은 주공의 이름이다. 주 무왕(周武王)이 죽고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하였으나, 성왕이 어리므로 주공이 그를 도와 섭정(攝政)을 하자, 주공의 형인 관숙(管叔)ㆍ채숙(蔡叔)이 주(紂)의 아들 무경(武庚)과 함께 모반을 하고 또 나라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주공이 성왕에게 불리할 것이다.”고 하므로, 주공이 그들을 정벌차 동쪽으로 나가 2년 동안 있으면서 그들을 모두 베어 죽이고 인심을 진정시킨 사실을 말한다. 『사기(史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희도(姬度)
주 무왕(周武王)의 아우 채숙(蔡叔)을 말한다. 도(道)는 그의 이름이다. 무왕이, 관숙(管叔)과 함께 주의 아들 무경(武庚)의 봉국(封國)인 은(殷)을 감시하도록 하였는데, 끝에 가서 유언(流言)을 퍼뜨리고 무경과 함께 반(叛)하였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下
희령공자(熙寧孔子)
희령(熙寧)은 송 신종(宋神宗)의 연호이고, 공자(孔子)는 바로 송 신종 때에 재상(宰相)으로 있으면서 신법(新法)을 만들어 시행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던 왕안석(王安石)을 비유한 것인데, 맨 처음 그를 공자라 칭하게 된 고사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희륜(羲輪)
일어(日馭)의 이칭이다. 희화(羲和)가 모는 수레라는 뜻으로, 흐르는 세월을 가리킨다. 희화가 여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 위에 태양을 싣고 날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행한다는 전설이 있다. 『초학기(初學記)』 卷1 引 淮南子
희린(戲麟)
진실이 없는 것은 끝내 가짜임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기린 놀이를 들어서 한 말이다. 기린 놀이는 나귀 위에다가 기린의 가죽을 입혀 마치 진짜 기린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기린의 가죽을 벗기고 보면 도로 하나의 당나귀일 뿐이다.
희만가황죽(姬滿歌黃竹)
주목왕(周穆王) 희만(姬滿)이 눈 속에 「황죽가(黃竹歌)」를 지어 불렀다.
희무파옹(喜舞破瓮)
옛날 어느 사람이 밤에 자리에 누워서, “조그만 그릇을 가지고 장사를 하여 차차 항아리를 마련하고 더 보태어 큰 독(甕)을 사겠다. 그리하여 차차 부자(富)가 되겠다.”고 공상(空想)을 실컷 하다가 기뻐서 일어나 춤을 추던 끝에 옆에 있는 술독을 깨뜨렸다 한다.
희문(羲文)
① 복희씨(伏羲氏)와 주 문왕(周文王)으로, 복희씨는 팔괘(八卦)를 그리고 주 문왕은 괘사(卦辭)를 지었다고 한다.
② 희문은 성이 희씨(姬氏)인 문왕을 가리킨다.
희문(希文)
송(宋) 나라 때의 현상(賢相) 범중엄(范仲淹)의 자이다. 그는 특히 기절(氣節)을 숭상하였고, 위엄과 병략(兵略) 또한 뛰어나서, 그가 변방을 지킬 적에는 오랑캐들이 그를 용도노자(龍圖老子)라 호칭하였고, 또한 “소범노자(小范老子)의 가슴 속에는 수만(數萬)의 갑병(甲兵)이 들어 있다.”며 서로 경계하기까지 했었다. 『송사(宋史)』 卷三百十四
희문우락(希文憂樂)
희문(希文)은 송 나라 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자인데 그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其必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라 하였다.
희반(戲斑)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떤다는 말로, 늙은 모친을 봉양하는 것을 가리킨다.
희백(希白)
송(宋) 담주(潭州) 사람. 순화각첩(淳化閣帖)을 모각(摸刻)하여 담주 군재(郡齋)에 두었으므로 순화첩(淳化帖)을 담본(潭本)이라 하였다.
희백(羲伯)
요(堯) 임금 때 천문(天文)ㆍ역상(曆象)을 맡은 관리.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이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시어, 넓은 하늘을 받들어 따르게 하다.” 한 주에 “희씨는 곧 희백이다.” 하였다.
희사점촉화(喜事占燭華)
촛불 심지에 꽃이 피면 재물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두보(杜甫) 시 “燈火何太喜”의 주석에 보인다.
희생(犧牲)
희(犧)나 생(牲)은 모두 제사 지낼 때 사람 대신에 썼던 소나 양 등의 살아 있는 짐승을 말한다. 기독교의 구약에 자주 나오는 희생제사란 바로 살아 있는 소나 양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제사에 바쳐지는 희생물인 소나 양이 주인 대신에 바쳐지는 것처럼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내놓는 것을 말한다.
희수(喜壽)
77세. 喜를 초서로 쓴 글자를 위에서부터 보면 ‘七十七’이기 때문이다.
희수(稀壽)
오래 살다 수(壽)자는 연세가 높은 경우에 사용하는데, 70세를 희수(稀壽)라 한다.
희신보(喜神譜)
희신(喜神)은 신태(神態)를 말한다. 송 나라 때 속어(俗語)에 화상(畫像)을 희신이라 하였다. 송백인(宋伯仁)의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가 있는데 그 안에 매화의 각종 형태를 그렸기 때문에 이른 것이다.
희씨(姬氏)
주(周) 나라 성씨이다.
희씨(犧氏)
태양의 신인 희화(曦和)로, 여기서는 태양을 가리킨다.
희아(羲娥)
해를 몬다는 신인 희화(羲和)와 달에 산다고 하는 항아(姮娥)로, 전하여 세월을 말한다.
희안지(希顔志)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희망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희양(曦陽)
광양(光陽)의 고호이다.
희양(餼羊)
매월 초하루에 조상의 사당에 제사지낼 때 희생으로 쓰는 양.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자공이 고삭례(告朔禮)에 쓰는 희양을 없애려고 하자, 공자(孔子)께서 ‘사(賜; 자공의 이름)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하였다. 여기서는 곧 벼루가 낡아 쓸모는 없으나 평소에 애용하던 정을 생각하여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뜻이다.
희어(羲馭)
해를 말한다. 고대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동부 바닷가 지역으로 해가 뜨는 곳이라 하였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嵎夷)에 머물게 하니 양곡(暘谷)이란 곳인데, 나오는 해를 공경히 맞이하였다.” 하였다.
희어(羲馭)
희화(羲和)가 해를 몬다(馭)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해를 지칭한다. 희화는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해를 모는 신이다.
희언(希言)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말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23장에서 나온 말이다.
희와(義媧)
희와는 복희씨(伏羲氏)와 여와씨(女媧氏)의 병칭으로, 이들이 부부 관계를 맺어 인류를 탄생시켰다는 중국의 신화가 있다. 『회남자(淮南子)』 「람명훈(覽冥訓)」
희와(希窩)
현덕승(玄德升)의 호이다.
희우(犧牛)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에 “그대도 희생용 소(犧牛)를 알고 있겠지. 비단옷에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이다가 태묘(太廟)로 끌고 들어가나니,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하였다.
희우정(喜雨亭)
본디 양화도(楊花渡) 동쪽 언덕에 있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정자인데, 이것을 바로 성종(成宗) 때에 와서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집을 고쳐 짓고 이름을 망원정(望遠亭)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성종은 매년 농사 때마다 여기에 거둥하여 농사일을 관찰했다고 한다.
희우표(喜雨表)
단비[甘雨]를 기뻐하여 올리는 표문(表文)을 말한다.
희원야기잠(希元夜氣箴)
희원(希元)은 송의 학자 진덕수(眞德秀)를 말한다. 그의 밤기운의 청신한 마음, 즉 물욕에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을 길러야 한다는 뜻을 경계한 야기잠이 유명하다. 『서산문집(西山文集)』 卷三十三 「夜氣箴」
희이(希夷)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14장에 “보아도 안 보이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안 들리는 것을 희(希)라 한다.” 하였다. 인간 세상이 아닌 명계(冥界)를 가리킨다.
희이(希夷)
송(宋)의 진박(陳博)을 말한다. 진박이 오대(五代) 시절에 화산(華山)에 숨어살면서 도를 닦고 벽곡(辟穀)을 하여 한번 잠이 들면 1백여 일을 깨지 않고 계속 잤는데, 후에 송(宋)의 태조(太祖)가 등극하자 그제야 웃으면서 이제야 세상이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종(太宗)은 그에게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는 호를 내렸다. 『송사(宋史)』 卷四百五十七
희자(喜子)
거미(蜘蛛)의 별칭인데, 거미가 내려오면 기다리는 사람이 온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희절극(喜折屐)
매우 기뻐한다는 뜻이다. 『진서(晋書)』 「사안전(謝安傳)」에 “사안은 그의 조카 사현(謝玄)이 부견(苻堅)을 격파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혀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두던 바둑을 계속하다가, 바둑을 끝내고 안으로 들어갈 적에야 속으로 얼마나 기뻤던지 나막신의 굽이 부러지는 줄도 몰랐다.” 하였다.
희주(姬周)
① 주(周) 나라 무왕(武王)과 성왕(成王)을 보좌했던 주공(周公)을 가리킨다. 주공의 성(姓)이 희씨(姬氏)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② 희성(姬姓)인 주 문왕(周文王)을 말한다.
희준(犧樽)
소의 형상으로 만든 종묘(宗廟)의 제기(祭器).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백 년 된 나무를 깎아 술 그릇(犧樽)을 만들고 거기에 청황(靑黃)으로 꾸민 다음, 나머지 토막들은 구덩이 속에 내버리는데, 희준과 그 토막들이 미추(美醜)의 차이는 있다 해도, 본성(本性)을 잃은 점에서는 똑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百年之木, 破爲犠尊, 靑黃而文之, 其斷在溝中. 比犠尊於溝中之斷, 則美惡有間矣, 其於失性一也. 跖與曾·史, 行義有間矣, 然其失性均也].”라는 말이 있다.
희지구만전(羲之九萬牋)
진(晋) 나라 왕희지(王羲之)가 회계내사(會稽內史)가 되었을 적에, 사안(謝安)이 가서 종이를 달라고 청하였더니, 고(庫)에 전지(牋紙)가 9만(萬) 장이 있었는데 모두 내 주었다.
희지적(羲之炙)
자신을 알아주어 우대함을 말한다. 왕희지가 주의(周顗)를 찾아 본 일이 있었는데, 의가 보고 기특히 여겨 당시 귀하게 여기던 우심적(牛心炙)을 자리에 있는 손님을 제쳐놓고 먼저 희지에게 먹였다. 이로 인하여 희지의 이름이 알려졌다. 『진서(晉書)』 「왕희지전(王羲之傳)」
희창(姬昌)
주(周) 나라 문왕(文王)을 가리킨다. 희는 주 나라의 성씨이고, 창은 문왕의 이름이다.
희채(戲彩)
노래자(老萊子)가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나이 많은 자식이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북당서초(北堂書鈔) 제129권에,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세에 부모가 아직 살아 있었으므로 항상 색동옷을 입고서 어린아이 시늉을 하면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하였다.
희편(羲鞭)
희화(羲和)는 해(日)가 탄 수레를 몰고 다니는 자. 이백(李白)의 「장가행(長歌行)」에, “큰 힘으로 하늘 땅이 돌아가는데 희화의 채찍 멎을 때가 없다네[大力運天地 羲和無停鞭].”하였다.
희헌(羲軒)
상고 시대의 성왕이었던 태호 복희씨(太昊伏羲氏)와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를 합칭한 말이다.
희헌(羲獻)
진(晉) 나라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와 그의 아들 헌지(獻之)를 말한다.
희홍(戲鴻)
① 명(明) 나라 동기창(董其昌)이 진(晉), 당(唐) 이래의 서법(書法)을 모각(摹刻)해서 16권으로 만든 서첩(書帖) 이름이다.
② 훌륭한 글씨를 말한다. 「서법요록(書法要錄)」에 “종요(鍾繇)의 글씨는 의기(意氣)가 넘쳐 마치 나는 기러기가 바다를 희롱하며, 춤추는 학이 하늘을 나는 것 같다.”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희화(羲和)
① 역사 속에서의 희화(羲和)란 장력지관(掌曆之官) 즉 일관(日官)이 된다. 하지만 신화 속에서의 희화는 태양을 수레에 태우고 달리는 태양의 어머니이다.
② 요(堯)의 시대에 희(羲)는 해를 맡은 벼슬이고 화(和)는 달을 맡은 벼슬이다.
③ 태양을 모는 마부 이름이다. 매일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에 태양을 싣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행하다가 해가 들어가는 우연(虞淵)이라는 곳에서 멈춰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④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요임금 때의 천문(天文)을 맡은 일관(日官)이다.
희화여자(羲和女子)해의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 희화국의 여자라 한다. 『산해경(山海經)』
희화편(羲和鞭)희화(羲和)는 해(日)가 탄 수레를 몰고 다니는 자. 이백(李白)의 「장가행(長歌行)」에, “큰 힘으로 하늘 땅이 돌아가는데 희화의 채찍 멎을 때가 없다네[大力運天地 羲和無停鞭].” 하였다.
희황(羲皇)
① 복희씨(伏羲氏) 이전 즉 태고(太古) 때의 희황상인(羲皇上人). 번잡한 세속을 버리고 뜻을 고상하게 가짐을 일컬은 말이다. 진(晉)의 도잠(陶潛)은 항상 말하기를 “월북창 아래 누워서 시원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이른다.” 하였다. 『진서(晉書)』 卷九十四 「도잠전(陶潛傳)」
② 희황상인(羲皇上人)의 준말로, 태고(太古) 때 사람을 일컬으며, 전하여 세상을 잊고 편히 숨어사는 사람을 말한다.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에 “도잠(陶潛)이, 여름에 한가히 북창 아래 누워 산들바람을 쐬면서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하였다.” 한다.
희황북창하(羲皇北窓下)
은거 생활이 매우 만족함을 말한다. 진(晉) 나라 때 고사(高士)인 도잠(陶潛)이 일찍이 “여름날 북쪽 창 아래 높이 드러누워 있을 때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 내가 스스로 희황상인(羲皇上人)이라 이르노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卷九十四
희황상인(羲皇上人)
진(晉) 나라 때의 은사(隱士) 도잠(陶潛)의 자호이다. 도잠이 북창(北窓) 아래 높이 누워서 희황상인이라 자칭한 데서 온 말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 “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이라 하였다. 도잠은 본디 음률(音律)을 몰랐으므로,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하나를 두고서 매양 친구들과 모여 술이 거나할 때면 이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거문고의 운취만 알면 되었지, 어찌 줄의 소리를 수고롭히랴[但識琴中趣 何勞絃上聲].”하였다. 『진서(晉書)』 卷九十四
희황시(羲皇時)
희황(羲皇)은 복희씨(伏羲氏)로, 태고의 시대를 말한다.
희황인(羲皇人)물욕의 속박이 없는 태고 시대의 백성이란 뜻이다. 도잠(陶潛)이 여름철에 한가로이 북창(北窓) 아래 누워 있다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바로 희황 이전의 사람이다.” 했다.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
희희(嘻嘻)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모양, 즐거워 웃는 소리
희힐설천비(羲頡洩天秘)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였다는 말이다. 복희는 팔괘(八卦)를 그어 서계(書契)를 만들었고, 황제(黃帝)의 신하였던 창힐은 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창작하였다고 한다. 공안국(孔安國), 「상서서(尙書序)」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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