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날짜를 하루 미루다
‘가혹한 운명’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왠지 로미오 & 쥴리엣이 생각난다. 몸과 맘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만 정작 그러지 못할 때 ‘가혹한 운명’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 운명이 딱 그런 형상이다.
리모델링이 자꾸 발목을 잡다
좋아하는 연인이라도 있는데 가까이 할 수 없어서 그러나 하겠지만, 그런 건 아니다. 하긴 이미 이 글이 여행기 카테고리에 쓰여지고 있으니, 그렇게 착각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짓이겠지만 말이다.
왜 ‘가혹한 운명’이란 말을 쓰냐면 날짜가 또 다시 미뤄져서 그렇다. 원랜 18일, 그러니깐 이번 주 토요일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난 열심히 준비하고 갈 채비를 다 해놨는데 미루어지게 된 거다. 집이 이사가는 일만 아니라면 그냥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해야 할 부분도 엄연히 있으니 말이다.
벌써 몇 번을 미뤄온 터라 어머니도 이번에는 어렵게 부탁을 하셨다. 하긴 집안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니. 샷시 공사가 진즉 끝났어야 하는데 보름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다른 공사들도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래저래 시간만 보낸 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애가 타는 건 당연하다. 집의 짐들은 다 싸놨는데, 막상 이사 갈 집이 아직 공사 중이지 뭔가~ 이런 형용모순이여^^;;
떠나는 날을 하루 늦추다
어머님은 좀 더 늦출 수 없냐고 물어오셨다. 하지만 난 단호하게 말했다. 벌써 한 달 보름이란 시간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떠날 생각이 없었다면 학원강사도 그만 둘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떠난다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일도 그만두고 친구들에게 말해놓았는데, 어머니는 자꾸 이사 가는 것을 이야기하며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그러니 더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랬더니 어머니도 하루만 더 늦춰달라고 말씀하신다. 이 여행을 6월 전까진 마쳐야 한다. 6월부턴 임용고시반 신청 기간이기 때문인데, 들어가게 된다면 열심히 공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늦춰지면 간략하게 하는 흉내만 내고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된다. 아예 이사가 다 끝날 때까지 있어 달라는 것은 무리였지만 하루 늦춰달라는 것은 괜찮았기에 승낙했다.
이런 게 바로 가혹한 운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제삼자가 보면 참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고 생각할 거다. 물론 나도 전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맘껏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하려고 맘먹었던 것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잘 안다. 이 상황도 다신 오지 않을 어떤 기대감이 가득 찬 순간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은 답답하고 머리는 아무 것도 없이 텅텅 빈 것 같은 걸 어쩌랴. 이 기분은 딱 군대에서 백일휴가 날짜를 받았는데, 그 날짜를 하루 남겨두고 백일휴가가 일주일 연기 되었다고 통보 받는 것과 같다. 이 기분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하루가 24시간은 커녕 48시간으로 늘어난 것 같은 그 착잡함이란~
▲ 전주천에 있는 정자인 한벽당과 전라선이 지나는 한벽굴의 모습(사진 - 한겨레신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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