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론
Idealism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고 해서 반드시 탁상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관념론도 그 말처럼 좋은 아이디어(idea)와 관련된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말하는 관념적 사고란 탁상공론처럼 현실적 조건과 무관하고 별로 실효성이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관념론의 의미와 역사를 보면 그런 오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념론은 말 그대로 관념(idea)을 중시하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가리키는데, 그 반대의 개념을 보면 의미를 더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관념론의 반대는 두 가지로, 존재론적으로는 유물론(materialism)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realism)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보는 관점이며, 실재론은 인식 대상이 우리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관념론은 그 두 가지의 반대, 즉 물질이 아니라 관념을 세계의 근본으로 간주하고 인식 대상이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유 방식이다.
관념을 근본으로 여긴다고 해서 물질을 완전히 도외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18세기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인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Esse est percipi)”이라는 극단적인 관념론을 주장하자, 당대의 인기 작가였던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은 버클리가 돌을 걷어차 보면 그 돌이 관념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고 빈정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관념론은 그런 천박한 비판에 무너질 만큼 허약한 사조가 아니다.
관념론의 기원은 멀리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Platon, BC 427~347)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의 배후에는 그 사물의 이데아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며, 개별 사물들은 그 이데아의 모사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수많은 꽃들은 꽃의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며, 우리가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선(善)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메시스). 이 이데아는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존재를 검증할 수 없으므로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현실 세계가 이데아 세계의 조잡한 모방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원론을 전개했다.
이런 관점이 후대로 이어져 중세에는 사물의 개별자와 별도로 보편자가 실재한다는 실재론이 등장했다. 이것은 신을 논증하는 문제와 함께 중세의 양대 철학적 쟁점을 이루었다. 관념론은 사물 자체 같은 것이 실재한다고 여기지 않고 인간은 단지 사물에 관한 관념만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실재론과 대립한다.
철학적 관념론이 특히 강세를 보인 시기는 18~19세기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시대였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인식 주체가 수동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상을 구성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으며, 헤겔(Hegel, 1770~1831)은 절대정신이라는 독보적인 관념이 세계와 역사의 기원이자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관념론을 토대로 근대 형이상학을 종합하고 완성했다. 그러므로 이후의 철학은 모두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현대 철학의 시작이다. 신학자였던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는 헤겔의 절대정신을 사실상 신의 부활이라고 간주하면서 헤겔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그 논지를 이어받아 헤겔의 보수성을 지적하고 그의 관념론을 유물론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의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립했다.
관념은 물질 앞에 무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관념의 힘으로 물질의 힘을 극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관념과 이념은 호환성이 있는 개념인데 - 영어 표기가 둘 다 똑같다 - 역사에서는 이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위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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